(사진=연합뉴스)
부풀린 자산으로 국내 시장에 상장해 2000억원대 투자자 피해를 일으킨 '중국 고섬사태'에서 상장을 주관한 증권사에도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7일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였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공동주관사로서 중국고섬의 현금과 자산에 대한 확인절차를 수행하지 않는 등 현저히 부실한 실사를 했다"며 "중국고섬이 제출한 증권신고서상의 거짓기재를 '방지'하지 못한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고섬공고유한공사(중국고섬)는 2010년 국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위해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과 한화투자증권을 공동주관사로 삼고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증권신고서에는 1000억원 이상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가진 것처럼 기재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중국 대기업의 코스피 상장에 국내 대표 증권사 두 곳까지 보증인격으로 나서면서 순식간에 2100억원 규모의 공모자금이 모였다. 그러나 2011년 1월 상장 후 2개월 만에 서류와는 달리 실상은 심각한 현금부족 상태인 것이 드러나면서 거래가 정지됐고 결국 2013년 10월 상장폐지됐다.
금융당국은 상장주관사인 대우증권과 한화투자증권에 대해 각각 20억원씩 과징금을 부과했다. 당시 법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었다.
이에 대해 한화투자증권은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을 따랐을 뿐"이라며 과징금이 부당하다고 취소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인수가격 결정 등은 대표주관사인 대우증권이 수행했고 한화투자증권은 증권을 배당받기만 한 인수인에 불과하다"며 책임이 없음을 인정했다. 2심도 한화투자증권의 손을 들어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발행시장은 증권의 가치평가가 어렵고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투자자들은 시장의 '문지기(Gatekeeper)' 기능을 하는 인수인의 평판을 신뢰하며 이를 통해 공모 성공 가능성도 갈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수인(증권사)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행인(회사)이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에 허위·거짓 기재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한 때에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증권신고서의 거짓기재 등에 관해 주관사에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본 첫 사례다. 그간 모호했던 인수인의 기능과 의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발행시장의 '문지기'로서 투자자 보호의무와 책임을 강조했다.
한편 대우증권 역시 금융위의 과징금이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제기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