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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봉준호들 반지하에 가둔 '97% 독과점'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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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 구조개선 선언' 영화인 1325명 서명
'겸업 제한' '독과점 금지' '독립영화 지원' 방점
"21대 국회서 반드시 법제화되도록 노력하겠다"

봉준호 감독(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 4관왕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에 던졌던 아름답고 뼈아픈 수상 소감입니다. 모든 한국 영화인들은 봉 감독의 쾌거에 환호와 찬사를 보내면서, '97% 독과점의 장벽'에 갇힌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을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제2, 제3의 봉준호는 나올 것인가?"

'영화산업 구조개선 법제화 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이 17일부터 25일 정오까지 벌인 불균형한 영화산업 구조 개선 서명운동에 1325명이 참여했다. 당초 준비모임은 26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세를 감안해 이를 취소하고 보도자료로 대체했다.

준비모임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영화인들의 바람을 각 당에 전달해 당론 채택을 요청하고, 대표들과의 면담을 진행하는 등 21대 국회에서 세 가지 요구사항이 반드시 법제화될 수 있도록 서명에 참여한 영화인들과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세 가지 요구사항은 △대기업의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제한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금지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다. 영화인들이 서명한 '영화산업 구조개선 요구 영화인 선언'에서는 위 세 가지를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대기업의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제한

CJ·롯데·메가박스의 멀티플렉스 3사는 현재 한국 극장 입장료 매출의 9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3사는 배급업을 겸하면서 한국영화 배급시장까지 장악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성장해가던 2000년대 초중반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입니다.

배급사는 영화가 제작될 수 있도록 제작비를 투자하고 완성된 영화를 극장에 유통하여 매출을 회수합니다. 그렇게 회수한 돈은 영화에 재투자되면서, 제작자, 창작자, 배우, 기술진, 스태프의 처우를 개선하는 기준선이 됩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극장과 결합된 배급사들이 부당하게 극장을 살찌우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극장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부율을 조정하고, 무료초대권을 남발하여 영화의 매출을 갉아먹고, 상영관 내 상품광고수익을 독식하고,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광고홍보비를 배급사에 떠넘기는 등 그들의 불공정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조화로운 산업이었다면 배급사가 이러한 극장의 폭주를 견제하면서 더 많은 이익을 남겼을 겁니다. 그 돈은 영화제작으로 환원되었을 것이고요. 그러나 상영과 배급을 겸영하는 그룹 차원에서는 극장체인이 더 많은 돈을 벌도록 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래서 계열 배급사들은 극장의 폭주를 견제하는 역할을 방기하고 있고, 이러한 방기로 인해 미래의 봉준호들이 반지하를 탈출하는 데 쓰일 자금이 착착 극장으로 흡인되고 있는 겁니다.

1인치 자막의 장벽에 갇혀 있다고 비판받는 미국은 이미 1948년 배급·상영업 겸업을 금지(파라마운트 판례)했습니다. 당시 판례는 지금도 유효하여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겸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도 제119조 제2항(경제민주화)에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겸업 제한'을 요구합니다. 예컨대, 배급업을 겸하는 극장체인은 일정 시장점유율 이상의 극장을 경영할 수 없도록 하는 겁니다. '겸업 제한'을 통해 '97% 독과점의 장벽'을 해체하면, 배급사는 배급사다워져 극장의 폭주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극장도 극장다워져 개별극장을 찾는 관객의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겁니다.

◇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금지

극장들은 단기간에 관객이 몰리는 영화를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스크린 독과점 행태는 도를 지나쳤습니다. 지난해 한 인기 영화의 경우, 무려 81%의 상영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날 상영작은 총 106편이었습니다만, 한 영화가 상영횟수의 81%를 독점한 겁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도 스크린에 걸릴 기회조차 얻기 힘든 미래의 봉준호들은 씁쓸하고 허기진 반지하를 탈출할 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프랑스는 '영화영상법'과 '편성협약'을 통해 8개 이상 스크린을 보유한 극장에서는 영화 한 편이 일일 상영횟수의 30%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고, 15~27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한 영화에 일일 최다 4개 스크린만 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다양한 영화가 다양한 기호의 관객들과 만나는 것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크린 상한제'를 통해 대형영화는 영화의 질에 비례하여 관객들의 선택을 받도록 하고, 소형영화에게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관객의 영화향유권은 더욱 확장되게 됩니다. 스크린 독과점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젠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

독립·예술영화는 영화의 모태입니다. 독립·예술영화의 제작·상영이 활성화되어, 건강한 영화산업생태계를 만듦과 동시에 관객의 영화향유권도 확장되어야 합니다. 개봉된 독립·예술영화는 전체 개봉 편수의 9.5%에 달하지만, 관객점유율은 0.5%에 불과합니다.

오늘과 같은 환경이었다면 2000년에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제작의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의 봉준호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영화법' 개정을 통해, 멀티플렉스에 독립·예술영화상영관을 지정하여 해당 상영관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정한 독립·예술영화를 연간 영화 상영일수의 '100분의 60' 이상 상영하도록 하고, 국가는 해당 상영관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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