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0 V-리그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남녀부 13개 팀의 선택을 받은 선수들의 모습. 하지만 이들 중 절반은 기량 미달, 부상 등의 이유로 현재 V-리그를 떠났다.(사진=한국배구연맹)
[노컷발리뷰]는 배구(Volleyball)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CBS노컷뉴스의 시선(View)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발로 뛰었던 배구의 여러 현장을 다시 본다(Review)는 의미도 담았습니다. 코트 안팎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배구 이야기를 [노컷발리뷰]를 통해 전달하겠습니다.신인 드래프트와 외국인 트라이아웃 & 드래프트. V-리그가 새 시즌을 시작하기 전 치르는 이 두 행사는 ‘한해 농사’라고 불리는 성적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외국인 선수 선발의 성공률은 썩 높지 않은 편이다.
기존 선수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신인 드래프트의 성공률은 제외하더라도 V-리그 대부분 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외국인 선수 선발 성공률은 절반 수준이다. 2019~2020시즌만 하더라도 남녀부 13개 팀 가운데 부상이 아닌 경기력 문제로 선발 선수를 교체한 팀이 남자부 7개 팀 가운데 3팀, 여자부 6개 팀 가운데 3팀이나 된다.
외국인 선수 영입을 위해서는 객관적인 기록과 성적 등이 기반이 되는 ‘정량적’ 평가와 주변의 평가와 추천, 면접 등을 바탕으로 하는 ‘정성적’ 평가가 기준이다. 정성적 평가보다 정량적 평가가 우선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V-리그의 현실은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현행 트라이아웃 & 드래프트에서는 스카우팅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V-리그 현실상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정성적’ 평가가 ‘정량적’ 평가에 우선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모든 팀에 공통적으로 제공되는 자료와 면접 기회 외에 변별력을 더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한 탓에 현장에서 감독의 직관에 외국인 선수의 선발을 맡긴 팀도 있다. 그러다 보니 사실상 열린 경쟁과도 같은 공개 선발에서 경쟁 팀에 뒤처지는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다.
종목은 다르지만 전 세계적인 스카우팅 시스템이 발달한 축구의 경우 이미 동영상과 선수의 기록을 함께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와이스카웃’이라는 이름의 해당 프로그램은 영상을 기반으로 해 인공지능(AI)을 통해 경기 출전 선수의 기록과 기량을 살필 수 있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발리 매트릭스'는 동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전력분석 프로그램이다. 현재 시장 점유율 90%가 넘는 '데이터 발리'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프로그램이라면 발리 매트릭스는 인공지능과 동영상을 통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사진=발리 매트릭스 화면 갈무리)
배구에도 같은 방식의 전력분석 프로그램이 사용되고 있다. 스포츠 퍼포먼스 플랫폼 ‘hudl‘이 운영하는 ‘발리 매트릭스’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 사용 중이다.
배구계에서 전력분석 프로그램의 주류는 ‘데이터 발리’라는 프로그램이다. 시장 점유율이 90%를 넘을 정도로 업계 독점적 지위를 자랑한다. ‘발리 매트릭스’는 후발주자다.
최근 CBS노컷뉴스와 만난 ‘hudl‘의 한국 담당자인 진현민 매니저는 “데이터 발리와 발리 매트릭스는 전혀 다른 제품이다. 대체재의 개념보다는 보완재의 개념”이라며 “데이터 발리는 전문 인력이 전력분석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발리 매트릭스는 누구나 원하는 자료를 확인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13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남자부 5라운드 OK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의 경기를 ‘발리 매트릭스’를 통해 전문가의 도움 없이 직접 확인했다.
총 2시간 31분 32초의 영상이 업로드된 이 경기에서 두 팀의 총 액션은 1348개. 이 가운데 ‘OK저축은행’, ‘이민규’, ‘서브’라는 3개의 검색어 설정으로 이 경기에서 이민규가 시도한 16개의 서브 동작을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인터넷 검색을 하듯 세 번의 클릭으로 원하는 장면을 간추렸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장면을 확인하는 것뿐 아니라 간추려진 자료를 이메일 등을 통해 간편하게 공유하는 기능도 있었다.
2020 도쿄올림픽 본선행에 성공한 여자 배구대표팀뿐 아니라 남자 배구대표팀도 발리 매트릭스를 활용했다. V-리그 남녀부 13개 팀도 기존 데이터 발리와 함께 발리 매트릭스를 활용하는 팀이 많아지는 추세다.(사진=국제배구연맹)
이탈리아에서 만든 전력분석 프로그램 ‘데이터 발리’는 팀이 원하는 전술에 맞춰 정보를 입력해 결과를 얻고, 이를 다시 해석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제한된 인원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과를 얻어야 하는 만큼 주로 자기 팀 분석에 쓰이는 편이다.
미국에서 만든 ‘발리 매트릭스’는 영상을 업로드하면 24시간 이내에 AI가 자동으로 분석해 팀별, 선수별, 동작별로 정보를 분류한다. 사용이 간단한 편이라 자기 팀 분석뿐 아니라 상대팀 분석도 손쉽게 할 수 있다. 마치 PC로, 휴대전화로, 태블릿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이용하듯 간단하게 영상을 기반으로 한 분석이 가능하다.
덕분에 최근 2020 도쿄올림픽 대륙별 예선을 치른 한국 남녀 배구대표팀도 ‘발리 매트릭스’를 활용했다.
진현민 hudl 매니저는 “V-리그는 팀 당 외국인 선수가 한 명뿐이라 발리 매트릭스가 더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서 “이탈리아와 폴란드,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등 세계 주요리그의 고객이 있는 만큼 외국인 선수를 선발할 때 구체적인 추가 자료의 확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데이터가 무기인 시대다. 하지만 한국 프로스포츠는 여전히 전력분석 등 데이터의 수집과 활용에 약점이 있다”며 역설적으로 이를 통해 한국 배구시장이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발리 매트릭스’는 최근 V-리그에 도입돼 남녀부 1팀씩 활용하고 있다. 추가로 V-리그 내 복수의 팀이 계약을 맺고 새 시즌 준비에 활용할 예정이다. 더욱 치열해진 정보력 싸움을 예고했다. 차별화된 정보력 싸움의 첫 번째 무대는 오는 5월로 예정된 2020~2021 V-리그 남녀부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 드래프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