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E&A 곽신애 대표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기생충'(감독 봉준호)은 지난해 5월 21일(현지 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됐다. '놀랍다'는 반응과 호평 속, 한국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탔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은 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2015년 4월, 15장짜리 트리트먼트 버전으로 봤을 때부터 '기생충'이 마음에 들었다는 곽신애 바른손E&A 대표는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칸 진출은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국내 개봉일도 당연히 칸영화제 일정을 고려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E&A의 곽신애 대표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칸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두 상을 타는 성과를 직접 경험한 그의 소감은 어땠을까. 분명한 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리라고 미처 예상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 한국영화가 한 번도 받지 못한 상을 연달아 타다
'기생충'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미국배우조합상 앙상블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을 받으며 각종 상을 수집하고 있었다. 지난 9일(현지 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오스카 소 화이트'(Oscar_So_White)라는 비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백인·자국 중심주의로 도마 위에 올랐던 아카데미 시상식은 주요 부문 상을 모두 '기생충'에 몰아줬다.
칸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 중 어떤 것에 더 놀랐냐는 질문에 곽신애 대표는 "칸 때도 심사위원 상까지는 가시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일 마지막 상을 줘서 깜짝 놀랐다. 아카데미 때는 다들 한 개 이상은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감독상 부르는 순간 '작품상도 같이 받겠는데?' 싶더라"라며 "둘 다 되게 놀랐다. 한 번도 못 받아본 거라서"라고 답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의 유력한 후보였다. 하지만 다른 부문은 '수상 가능성 1위'까진 아니었다. 곽 대표는 '아무것도 안 주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다며 웃었지만, 이내 "어딜 가나, 무슨 시상식에 가도 ('기생충'이) 가장 핫한 테이블이었다. 가장 핫한 인물이었고. 우리 배우들만 보면 다 눈을 이렇게 뜨고 봤다. '분위기가 되게 이상해~' 했다. 되게 열띠다고. 우리 작품에 대한 반응은 너무 (잘) 알아서 국제장편영화상 외에 뭐라고 받긴 하겠지 했다"라고 밝혔다.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미술상, 편집상 등 총 6개 부문 후보였다. '기생충' 팀은 각자 어떤 상을 받을지 내기를 걸었다. 곽 대표는 송강호와 함께 '작품상'에 걸었다. "아니, (내가) 제작잔데 작품상 걸어야지!" 하면서. 물론 '정말' 작품상을 받으리라고 확신하진 못했다.
"내기에 걸었다는 거지, '우리가 받을 거야'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이걸 받게 된다면 아카데미의 변화가 확인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변화한 건지 아닌진 모르지만, '1917'이 받으면 아카데미 전통에 부합하는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받겠다!'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제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저한테 '네가 받아야 돼'라고 했어요. 심지어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른 작품 PD가 '네가 마지막 상(작품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했죠. '왜 이런 말을 하지?' 싶었어요. ('기생충'이 받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오스카가) '소 화이트'라든가 보수성이라든가 과거 지향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거에 대해서 '아, 이렇게 좋은 작품이 나왔는데 이때 아니면 언제?' 했던 것 같아요."
지난 9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 (사진=㈜바른손E&A 제공)
작품상 수상소감을 다시 한번 부탁한다는 말에 곽 대표는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이 결정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라며 "변화에 대한 선택, 그게 되게 존경스러웠다"라고 밝혔다. 이어, "오스카는 (어떤 영화에) 힘과 명성 얹어주는 상이기 때문에 미국 산업 내에 있지 않은 영화에 그 힘을 실어주는 게 쉽지 않은 거라고 봤다"라고 덧붙였다.
"본질적으로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지에 대해 제 생각과 같았기 때문에 되게 우정이 느껴졌어요.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업에 종사하는 사람끼리 공감대를 이루니 확 가까워진 것 같고요. 그동안은 그들과 섞여 있어도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아카데미상 수상 후) 결국 영화업을 하는 사람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같다고 느꼈어요."
◇ '기생충'의 수상은 이벤트다?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 이미 한국영화사로서 역사를 쓴 것이었다. 6개 중 4개 상을 받고 나니 이야기가 또 달라졌다. 어쩌면 '아카데미답지 않은 결정'이었고, 그래서 수상 결과는 더욱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기생충'이 다관왕 한 것을 하나의 이벤트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곽 대표는 "8천 명(아카데미 회원 수)이나 되는 분들이 각자 마음먹은 거라서…"라며 "제가 아주 주관적으로 느낀 건, 그들이 이 영화에 깜짝 놀랐고 감탄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봉하이브(Bong hive)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 정말 거대한 팬클럽 같았다. 감독님을 너무 좋아하고, 시상식에서 '기생충' 설명만 나와도 박수 치고 이런 식이었다. 너무 좋아했다, 우리를. 이 작품과 봉준호라는 예술가를 되게 사랑한다는 게 되게 선명하게 느껴졌다"라고 강조했다.
봉하이브란 봉준호 감독의 성인 '봉'과 벌집을 뜻하는 '하이브'의 합성어로, 벌집의 벌떼 같은 봉준호 감독의 강렬한 팬덤을 의미한다.
곽 대표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국제장편영화상과 각본상을 받고 '이제 상 다 받았다'라고 생각했다. 곽 대표는 "제가 그전에도 '우리가 작품상 받게 되면…' 이러면 감독님이 '김칫국 마시고 그러세요~' 이랬다"라며 "그럼 저는 '잠깐만요. 가능성이 0은 아니잖아요. 그럼 (수상소감) 순서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했다. 감독님은 별로 가능성을 안 갖고 계셨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봉 감독은 아카데미 수상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인 것 같냐고 하자, 곽 대표는 "칸 때도 '아무것도 못 받아 가면 욕먹겠지?'라고만 했다. 워낙 농담 잘하시고 말 재미있게 잘하시지 않나. '계란은 안 맞겠구나' 그런 멘트를 했다. (아카데미 이후엔) '아, 의무를 개운하게 끝냈다!' 이런 느낌이라고 저는 해석했다. 들뜨거나 흥분한 건 아닌 듯했다"라고 전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작품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하고 있는 곽신애 대표의 모습. 사진 가운데, 마이크 앞에 서서 트로피를 들고 있는 인물이 곽 대표다. (사진=A.M.P.A.S.® 제공)
곽 대표는 상을 받고도 '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던 봉 감독에게 "감독님, 저는 알겠어요"라고 했단다. 봉 감독의 팬인 아카데미 회원들은 봉 감독 이름으로 오른 후보에 전부 투표한 것 같다는 게 곽 대표의 추측이다. 감독상, 각본상, 작품상도 다른 작품과 경합 중이었지 뚜렷한 선두가 없었기에.
"다 몬 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한 달 동안 느낀 거로는 (사람들이 봉 감독을) 너무 좋아하고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 했거든요. '당신은 너무 천재고, 당신 영화는 너무 훌륭해!' 이런(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얘기하거든요? (웃음) 그냥 좋다는 게 아니라 '흥분한' 애정이라는 말이죠! 우리가 시상식 다니면 만든 쪽과 비평하는 쪽을 만나게 되잖아요. ('기생충'을) 안 본 사람도 있겠지만, 저희는 '나, 네 번 봤다!' 하면서 본 횟수를 다 얘기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쿡 찌르면서 이정은 배우 소개해 달라고 한 배우도 있었고요. 국내에서 ('기생충'이 해외에서) 핫하다고 쓰면 (기사가) 설레발이라고들 하는데, (실제로는) 더 핫했어요."
◇ 오스카 캠페인 비용 100억설… "어디서 출발한 거죠?"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이 처음이었고, 작품을 알리는 '오스카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벌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여정에 함께한 곽 대표에게 '오스카 캠페인'에 관한 질문이 쏟아진 건 어쩌면 당연했다.
곽 대표는 본인 역시 처음에는 '이게 뭐 하는 과정일까?' 하고 고민했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겪고 나서 정리한 바는 이렇다. "자기(미국 영화) 산업을 선순환시키고 최대한의 붐업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시스템"이자 "올해 나온 영화 중에 우리 미래를 위해 힘을 실어줄 만한 영화"를 뽑는 자리라고.
곽 대표는 "오스카에서 상 받은 사람들은 명성과 힘을 얻고 주목받게 되지 않나. 그 전체 과정을 매년 거친다는 거다"라며 "저도 미국 영화 중에 기억나는 건 주로 텐트폴(특정 시즌을 겨냥해 만든 대작) 영화나 아카데미 영화더라"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아, 이게 영화산업 종주국이자 전 세계를 제패하는 미국이 스스로 산업을 키워나가는 방법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 참 대단하더라"라고 덧붙였다.
'오스카 레이스'는 봉 감독도 처음이었고, 역시나 녹록지 않았다. 곽 대표는 "감독님은 사람들 별로 잘 안 만난다. 사교에 시간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영화 보고 영화 만들고 영화 시나리오 쓰고 영화 만드는 사람과 얘기하면서 온 시간을 보낸다.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오스카 레이스를 보고) '아, 얘네들은 무슨 파티를 이렇게 좋아하나?' 하더라"라고 해 폭소가 터졌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의 배우 및 스태프가 지난 12일 오전 인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한진원 작가, 양진모 편집감독, 이하준 미술감독, 배우 이선균, 최우식, 박소담, 제작사 바른손필름 곽신애 대표, 송강호, 조여정, 박명훈, 장혜진. (사진=황진환 기자)
생전 겪어보지 않은 수많은 '파티 타임' 때문에 봉 감독이 초반에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는 게 곽 대표 설명이다. 곽 대표는 "이건 (감독이) 해야 하는 것이라는 책임감만 있고 그 동력은 도저히 못 찾았다면, 후반에는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에서 유일한 위안을 찾았던 것 같다"라며 "노아 바움백('결혼 이야기'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감독) 등 감독들과도 친해지고"라고 말했다.
곽 대표는 이날 'CJ 이미경 부회장의 지원 효과', '오스카 캠페인 비용 100억설'과 등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그분이) 식사를 하셨으면 얼마나 하셨을까? 그러면 영화가 애매해도 친한 사람이니까 찍어줄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라며 "부회장님이나 CJ 해외팀이나 오스카를 바라볼 때 저희보다 목표를 높게 잡은 것 있다"라고 말했다.
곽 대표는 "CJ 해외 쪽 실무진이 배급사와 전망을 상의했을 때 처음 세웠던 목표가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노미네이트였다. 불가능하다곤 생각 안 했지만, 그 계획 잡은 것부터가 기대와 비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 것 같다"라고 전했다.
여러 언론에서 보도돼 기정사실화된 '오스카 마케팅 비용 100억설'에 관해서도 곽 대표는 "캠페인 비용이라는 건 다 설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캠페인 비용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 그는 어떤 영화든 홍보비는 대부분 비슷하고 차이가 나는 건 광고비이고, 어느 상을 목표로 하느냐에 따라 스크리너를 보내는 대상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CJ 이미경 부회장 기여가 없다고 말할 순 없어요. 할리우드에 사니까 영화계 지인이 있을 거고, ('기생충' 인기) 확산을 좀 더 유연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부분이 있겠죠. 근데 이쪽을 너무 강조하면 이쪽(다른 쪽)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기사들 보면 너무 한쪽에 쏠린 게 많아서 좀 답답하더라고요. 100억설은 어디서 출발한 거지? 오스카 마케팅 비용 어디서 나온 거지? 싶어서요." <계속>
봉준호 감독(사진 가운데)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호명된 후, 참석자들이 박수 치는 모습 (사진=A.M.P.A.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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