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좌우가 갈린 생선에서 이념의 양극단을 보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한국화가 중앙대 김선두 교수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3월1일까지

김선두, '마른 도미', 178x158cm, 2019(사진=학고재 제공)

 

지난 여름 전남 해남의 전통시장에서 '마른 도미'를 만났다.

한때는 바다를 헤엄치고 다녔을 생명은 배가 갈린 채 넓게 펼쳐져 도미의 좌우 얼굴은 마치 괴물처럼 보인다. 이념의 차이를 상징하듯 붉은빛과 푸른빛 두 눈의 색깔도 다르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3월 1일까지 전시 중인 한국화가 김선두(62)의 작품 '마른 도미'다.

작가는 "하나의 몸이 벌어져 등을 맞대고 대립한다. 한 몸을 유지하며 대칭을 이룰 땐 생명체였으나, 양극단을 향해 찢어지면 죽은 몸이 된다"며 "극단만 남은 우리 사회같다"고 말했다.

'마른 도미'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는 그는 "신념이 강한 사람이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더라"며 "정치도 그렇고 말싸움과 보복 등 타협이 안되는 주장들만 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며 굉장히 괴물처럼 보이는 것을 꼬집은 것"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생명력 있는 도미는 배가 붙어 있어 움직이며 말랑말랑한 아가미로 숨을 쉬지만 배가 갈라진 도미는 등을 대며 딱딱해지며 죽게 되는데 그 순간 생선에 없던, 사람 얼굴같은 몬스터의 얼굴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이념적 지형을 갖고 극단에 가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쏠려 정치가 타협의 예술이 되지 않는 게 안타깝다"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다. 작가는 "현대 미술은 일상의 깨달음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일상의 사물들이 구성되면서 이미지가 구성되며 하나의 속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부탄가스를 그린 '넘버원(No.1)'은 자신의 경험을 담아냈다.
김선두, 'No. 1', 116x91cm, 2019(사진=학고재 제공)

 



부탄가스 캔은 '국민 연료', '넘버원', '국내 최초' 등 온몸에 자랑을 쏟아낸다. 어느 날 작업실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부탄가스 캔을 발견하고 "명품은 내면이 꽉 차 그냥 빛이 나 다 알게 된다"며 "굳이 자기자랑을 할 필요가 없는데 이렇게 같은 말을 늘어놓은 것이 나와 같아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빠는 자기 자랑, 잔소리가 심하다"고 얘기하던 아들 및 퇴임식에서 자기 얘기만 하던 지인을 떠올리며 그렸다.

'느린 풍경' 연작은 어느 비 오는 여름날 꽉 막힌 서울 시내 도로 위의 차 안에 있다 불현듯 떠오른 깨달음에서 비롯됐다. 작가는 "차가 움직이지 못하니 평소 안 보이던 간판들이 보였다. 속도를 줄여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도 한때 유명화가가 되겠다는 욕심에 앞만 보고 달리느라 바쁘게 살아왔지만 이게 '잘 사는 삶일까' 회의가 들었다. 내 삶의 속도를 줄이면 인간미 있고,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풍경의 한가운데 반사경이 그려져 있는데 차를 운전하다 굽은 길을 만나면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듯,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는 의미다.

학고재 갤러리에는 김 작가의 작품세계인 '느림과 포용의 미학'을 담은 장지화 16점, 유화 3점이 전시됐다. 그는 바탕 작업 없이 색을 50번 넘게 중첩해 우려내는 '장지화'로 일본, 중국의 채색화와 구별된 독자적 화풍을 발전시킨 작가로 꼽힌다.
김선두 작가가 작품 '포구는 반달'을 설명하고 있다.(사진=학고재 제공)

 



전시된 작품 가운데 '유혹 1' 등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화랑미술제에 출품됐다.

김선두는 1958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한국화과를 졸업(학·석사)하고 중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설가 김훈의 '남한산성' 표지를 그렸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 오원 장승업의 그림 대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호암미술관(서울)·성곡미술관(서울)에 소장돼 있다.

올해 대학에서 안식년을 맞은 작가는 오는 5월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0

0

오늘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