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올해 8월 시행되는 개정 어선안전조업법(이하 어선법)이 안전을 이유로 서해5도 어민들의 조업을 과다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어민들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어민들은 이번에 시행되는 어선법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해5도 어민들에게만 형사처벌 조항을 적용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우려하고 있다.
19일 서해5도 어민 등에 따르면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선주협회 소속 어민들은 조만간 총회를 소집해 올해 8월28일부터 시행되는 어선법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서해5도 관련 시민단체인 '서해5도평화수역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도 어민들의 대응 방안이 나오는 대로 이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들이 개정된 어선법에서 반발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어민들의 조업활동을 군 당국이 통제하고 이를 어길 경우 최대 징역 1년의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개정된 어선법은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맞닿은 접경지역 인근 어장은 관할 군부대장이 통제하고,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당초 시행규칙에 있던 군부대가 어선 출·입항 신고를 관리한다는 규정을 법으로 명문화하고, 해양경찰과 지방정부가 했던 정선(배를 세우는) 명령 권한을 국방부에게도 부여했다. 군부대가 민간인들인 어민을 통제할 수 있도록 공식화한 셈이다.
무엇보다 어선법에서 위반시 행정처분뿐만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적용되는 지역은 전국에서 서해5도가 유일하다.
◇ 박근혜 정부 때 발의된 법안, 문재인 정부 때 통과돼어민들은 새 어선법이 시대착오적이고 지역 차별적이라는 입장이다. 역대 정권에서 군(軍)의 민간인 통제를 법으로 명문화한 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선법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미래통합당(당시 새누리당) 유기준(부산서·동)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당시 유 의원은 서해5도가 남북 대치상황과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등으로 사고위험이 크다며 이 법안을 제안했다.
어민들은 이 법안이 서해5도 어민들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발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서해5도 어민들은 중국어선 불법조업에 대응을 요구하며 2014년 11월 대청도 해상에서 대규모 해상시위를 벌였다. 2016년 6월에는 서해5도 어민들이 중국어선 불법조업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직접 중국어선 2척을 나포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어민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해상시위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통제하기 위해 고민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법안은 3년여간 국회에 계류돼 있다가 현 정부가 집권한 지난해 4월 제367회 국회 임시회 때 통과했다. 남북관계를 '대치 상황'으로 인식했던 전 정부 때 발의된 법안이 엉뚱하게도 평화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통과된 것이다.
이 법은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서해평화수역 조성을 위한 조치와 전면 배치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앞서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2월 서해5도 어장을 대폭 확대했다. 또 1964년부터 금지된 야간조업도 55년 만에 일출 전과 일몰 후 각 30분씩 총 1시간 늘려 허용했다. 국방부도 올해 1월 접경지역을 우선으로 여의도 26배에 달하는 면적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했다.
현 정부가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평화 분위기 정착을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는 동안 국회에서는 어민들의 생존권을 옥죄는 법을 통과시키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연평도 어민인 박태원 운동본부 상임대표는 "군이 민간인을 통제한다는 법안을 제정한 건 역대 정부 어디에도 없었다"며 "무엇보다 현 정권이 '평화가 경제'라는 기치로 남북평화를 강조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밀접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인 국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데 배신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 "법 오·남용되지 않아야" 국회도 우려지적이러한 우려는 당시 국회에서도 나왔다. 지난해 4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소위 제1차 회의록을 보면 더불어민주당 손금주(전남 나주·화순) 국회의원은 "어민을 보호하겠다는 제정법을 만들면서 어민들을 형사처벌하는 규정을 꼭 넣어야 하느냐"며 "앞으로 남북공동어로구역이 제정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NLL을 경계로 어민들을 처벌하겠다는 의도냐"고 질의한 바 있다.
당시 김양수 해양수산부 차관은 "모든 행정처분을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고 아주 특수한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가능하다"고 해명하자, 손 의원은 "법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개정된 어선법은 어민들이 법을 준수한다면 그만큼 기회를 줄 수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제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