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실주의 연극이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아픈 남편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어머니, 그런 부모님 곁을 지키는 철없는 아들의 보내는 일상이 중심인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연기 장인'들이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이목을 끄는 연극으로, 연기 인생 도합 115년의 신구와 손숙이 각각 아버지 역과 어머니 홍매 역을 맡아 관객과 만난다. 두 사람은 2013년 초연 때부터 작품과 함께해오고 있다.
손숙은 18일 진행된 프레스콜 기자간담회에서 "신구 선생님과는 오래 전 국립극단 시절부터 무대에 섰다"며 "그렇기에 특별히 호흡을 맞추려 하지 않아도 굉장히 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굉장히 아프고 슬픈 이야기라 초연 때는 너무 그 감정에 젖어있었던 같다"며 "네 번째로 작품에 임하면서는 그런 감정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작품을 들여다보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신구는 "동감이다"라고 맞장구치며 미소 지었다.
나머지 배역들의 구력도 만만치 않다. 다양한 작품에서 섬세한 감정 연기을 선보여 온 조달환이 아들 역으로 새롭게 합류했고, 지난 시즌 각각 푼수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며느리 역과 푸근하고 정 많은 이웃집 정씨 아저씨 역을 연기해 호평받았던 서은경과 최명경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
조달환은 "디지털에서 AI로, 4G에서 5G로, 4K에서 8K로 너무 빨리 넘어가고 있어서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런 가운데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현 시대와 확연한 차이가 있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있다는 점과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명경은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가 어머니,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같이 식사를 하고 따뜻하게 손 한 번 잡아드릴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서은경은 "저 역시 부모님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머니와 함께 자리하면 3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화가 나곤 한다"며 "많은 분이 저희 작품을 보시면서 가족을 생각하며 편안하게 눈물 흘리실 수 있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틱하거나 자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음에도 세밀한 감정 표현으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김광탁 작가가 실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의 일화를 바탕으로 쓴 촘촘한 이야기가 몰입도를 높이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관객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 기억과 망각의 경계, 과거와 현재의 경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품의 주요한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는 '웰-다잉'(Well-Dying)에 관해 신구는 "죽는 데 잘 죽고 잘 못 죽고가 있겠습니까"라면서도 "요즘 생명 연장을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데 그것보다는 (연극 속 이야기처럼) 자기가 호흡하던 곳에서 가족과 함께 이별하는 게 잘 죽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게 제 나름의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같은 물음에 손숙은 "병원에서 뭘 주렁주렁 달고 있고, 그것만 빼면 죽는 상황인데 빼지 못하는 경우는 아니었으면 한다는 생각"이라면서 "작품 속 어머니 역도 남편이 병원에서 죽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것이고, 가족과 함께 있다가 가길 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뒤이어 조달환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사는 게 좋을지 죽는 게 좋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나를 추억하고 싶다면, 좋았던 추억만 생각하라'는 유언을 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면서 "죽음은 늘 곁에 있으니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이 작품 속에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막을 연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3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한다. 기자간담회 말미 손숙은 "'코로나'(코로나19)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예매를 취소하시는 분들이 많아 공연장이 거의 초토화 된 상태다. 정부에서도 중소상인들까지는 관심을 가지는데 문화예술 쪽에는 아무도 관심을 안 두는 것 같아 굉장히 힘들다"면서 "저희는 배우니까 몇 분이 앉아있어도 공연하는 게 맞지만 속상한 게 사실이다.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임할 테니 많은 분이 도와주셨으면 한다"며 관심을 당부했다.
(사진=신시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