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방송화면 캡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서 4관왕에 오르며 한국 영화사는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과 세계 영화사를 다시 썼다.
10일(한국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편집상·미술상·국제영화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등 총 4개 부문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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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 선택한 '아카데미'…'최초'의 기록 세워나간 봉준호와 '기생충'아카데미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4관왕을 안기며 아카데미는 '변화'를 선택했다. 봉 감독이 지난해 10월 7일 미국 영화 매체 '벌처'(Vulture) 인터뷰에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소감을 밝히며 "오스카는 국제 영화제가 아니다. 그건 매우 지역적인(로컬) 영화제일 뿐"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세계 영화의 중심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히는 '오스카(아카데미 시상식)'가 가진 한계를 꼬집은 것이다.
그간 아카데미는 외국어 영화에 있어 큰 장벽이었다. 이번 시상식에서 봉 감독은 각종 '최초'의 타이틀을 가져가며 아카데미의 한계를 깼고, 세계 영화사의 대기록을 남겼다.
아카데미의 한국 영화 최초로 6개 부문에 후보로 오른 '기생충'은 비(非)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했다.
지난 1938년 제1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외국어 영화 '거대한 환상'(프랑스)을 시작으로 △1969년 'Z'(프랑스·알제리) △1972년 '이민자들'(스웨덴) △1973년 '외침과 속삭임'(스웨덴) △1995년 '일 포스티노'(이탈리아) △1998년 '인생은 아름다워'(이탈리아) △2000년 '와호장룡'(중국 외) △2012년 '아무르'(프랑스 외) △2018년 '로마'(멕시코) 등 9편의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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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수상하기는 101년 역사상 처음이며, 아시아 영화가 각본상을 탄 것도 92년 오스카 역사상 '기생충'이 최초다. 외국어 영화로는 2003년 '그녀에게'의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이후 17년 만의 수상이다.
또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것도 1955년 미국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 이후 65년 만이다. '기생충'은 지난해 5월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또한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 이전부터 미국의 4대 조합상으로 불리는 '미국감독조합(DGA)' '미국배우조합(SAG)' '미국작가조합(WGA)' '미국제작자조합(PGA)'을 모두 휩쓴 것은 물론, 57개 해외 영화제에서 주요 영화상 55개 상을 받으며 일찌감치 '오스카' 수상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감독상을 받은 후 봉준호 감독은 "어릴 때 항상 가슴에 새긴 말 있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책에서 읽은 것이지만 그 말을 한 분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라며 거장을 향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카데미 감독상은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할리우드 제작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 '브로크 백 마운틴'(2005)을 통해 아시아 감독으로서 수상한 사례는 있지만, 순수 아시아 영화로 감독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 봉 감독이 최초다.
◇ '기생충'의 라이벌 '1917' 3관왕…'조커'·'원스 어폰 어…'·'포드 V 페라리' 2관왕'기생충'의 강력한 라이벌로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 부문에서 경합을 벌인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기생충'과 달리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향효과상 등 기술적인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1917'은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장면을 나눠 찍은 후 마치 하나의 장면으로 보이게 이어붙인 기법)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두 영국 병사가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아군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하루 동안의 사투를 현장감 넘치게 그려냈다.
'1917'은 지난 2일(이하 현지 시간)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린 제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7관왕에 오르며 '기생충'을 위협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의 지표라 할 수 있는 미국감독조합(Directors Guild of America·DGA) 감독상과 지난 12일 진행한 제25회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감독상·촬영상·편집상을 샘 멘데스 감독이 가져가며 '1917'의 수상이 유력한 듯 보였으나, 아카데미는 '변화'를 택했다.
또 다른 유력 후보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는 남우조연상(브래드 피트)과 미술상을,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남우주연상(호아킨 피닉스)과 음악상을, '포드 V 페라리'(제임스 맨골드)는 편집상과 음향편집상을 받으며 각각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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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래드 피트, 생애 첫 오스카 남우조연상…'부재의 기억', 아쉽게 수상 불발특히 배우 브래드 피트는 톰 행크스('어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안소니 홉킨스('두 교황'), 알 파치노('아이리시맨'), 조 페시('아이리시맨') 등 쟁쟁한 후보를 제치고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로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가장 독창적이고, 절대적으로 영화산업에 필요한 사람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덕분"이라며 "나는 뒤를 잘 돌아보지 않지만, 이제는 돌아보게 됐다. 많은 사람이 함께한 덕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남우주연상은 지난해 DC 시리즈의 캐릭터인 조커로 분해 눈을 뗄 수 없는 연기로 극찬을 받은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받았다. 그는 안토니오 반데라스(페인 앤 글로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아담 드라이버(결혼 이야기), 조나단 프라이스(두 교황)와 함께 후보에 올랐다. 그는 "이 영화가 내 삶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영화가 없다면 내 인생이 어찌 됐을지 모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우주연상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역 배우 주디 갈랜드 일대기를 다룬 '주디'의 주인공 러네이 젤위거에게 돌아갔다. 신시아 에리보(해리엇), 스칼렛 요한슨(결혼 이야기), 시얼샤 로넌(작은 아씨들), 샤를리즈 테론(밤쉘) 등 내로라하는 후보들을 제친 러네이 젤위거는 "주디 갈랜드는 살아 있는 동안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지금 우리가 기리며 충분히 축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갈랜드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승준 감독의 29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
수상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세월호 참사를 다룬 이승준 감독의 29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를 기억하고, 이야기할 기회를 만든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감독은 세월호 유가족인 단원고 장준형 군 어머니 오현주 씨, 김건우 군 어머니 김미나 씨와 시상식에 함께 참석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명찰을 목에 걸고 카메라 앞에 섰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정식 명칭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상'이다. 1927년 설립된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주관으로 전년도에 발표된 미국 영화와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영화를 대상으로 우수한 작품과 그 밖의 업적에 대해 시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