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랭킹 뉴스

전쟁 같은 삶 속에서도 인간을 지탱하는 힘은?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노컷 리뷰] 연극 '환상동화'(2019, 연출 김동연)

연극 '환상동화' (사진=스토리피 제공)

 

단 하나를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일 때가 있다. 마치 신의 장난처럼 말이다. 모든 것을 잃고도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는 가치를 꿈꾸며 나아간다. '사랑'을 통해 살아갈 이유를 찾기도 한다.

김동연 연출의 대학로 데뷔작인 연극 '환상동화'는 전쟁과 예술,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광대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각각 인간의 파괴 본능이 극대화된 '전쟁',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창조하는 '예술', 세상을 눈부시게 만드는 '사랑'을 대변한다. 세 광대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주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셋의 의견이 팽팽해 결국 세 가지 요소가 모두 들어 있는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그렇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소리를 잃어버린 피아니스트 한스와 시력을 잃어버린 무용수 마리의 사랑 이야기가 탄생한다.

연극 '환상동화' (사진=스토리피 제공)

 

세 광대의 놀이판은 희극과 비극이 함께하는 인간의 삶 그 자체다. 광대들은 자신을 '신'이라 칭한다. 때때로 사람들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희·비극이 교차하는 삶을 두고 '신의 장난'이라 표현하는데, 광대들이 들려주는 '환상동화'는 신의 장난과도 같다.

전쟁으로 인해 청력을 잃은 피아니스트, 시력을 잃은 무용수는 눈 혹은 귀 단 하나를 잃었지만 모든 것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파괴가 창조를 중단시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는 극 중 대사처럼 한스와 마리는 전쟁터 한가운데서도 끊임없이 희망을 창조해내고, 사랑을 마음에 품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사랑이 있었기에 빛이나 소리가 없는 세상이지만, 답답함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들의 모습은 전쟁 같은 현실에서도 전쟁이 그칠 미래를 꿈꾸고,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은 '환상동화'라는 제목처럼 한 편의 동화를 보는 듯하다. 공들여 만든 '팝업 북'(pop up book·책장을 폈을 때 장면이 묘사된 그림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책)처럼 무용, 음악, 마임, 마술 등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져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특한 것은 연극이지만 마치 소설처럼 문어체 말하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한 편의 소설을 전쟁과 예술,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닌 세 명의 광대가 '전기수'(傳奇叟·조선 후기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낭독가)가 되어 읽어주는 형식이다. 그들이 읽어주는 소설 속 주인공이 살아 움직인다. 그렇기에 배우들이 문어체 대사 안에 감정을 담아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극 '환상동화' (사진=스토리피 제공)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연극이 가진 '액자식 구성'이다. 세 광대의 이야기가 갖는 기본 틀은 피아니스트 한스와 무용수 마리의 사랑 이야기다. 둘의 사랑 이야기가 진행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등장하고, 왕자와 공주가 주인공인 동화도 등장한다. 삽입된 두 이야기는 포화가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사랑을 쌓아나가는 한스와 마리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설명한다.

소설의 화법을 지닌 연극이면서도 다양한 장르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실험적인 연극인 만큼 '환상동화'는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여야 하는 배우들로서는 도전의 무대처럼 보인다. 세 광대의 말이 곧 극의 전개가 되는 만큼 대사를 주고받는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느냐도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가 된다.

영상매체와 달리 연극이 가진 매력은 관객과 교감하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극 중간중간 현시대를 반영한 '유머'를 선보이는데, 이를 통해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극 '환상동화'(2019, 연출 김동연), 100분, 2019년 12월 21일~2020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
연극 '환상동화' (사진=스토리피 제공)

 

0

0

오늘의 기자

실시간 랭킹 뉴스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