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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동심과 본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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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유작 기증 특별전 3월까지 전시 연장

'태양이 가득한 날'(사진=연세대박물관 제공)

 


"태양이 가득한 날 새가 반갑게 날아오고 우리집 멍멍이는 게을러서 즐겁다"

웃는 얼굴의 태양과 지붕 위의 새, 멍멍이.
파스텔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

누가 봐도 유치원생의 작품인 듯 싶지만 마광수 교수의 작품이다.

"예수는 어른들도 그렇게 되어야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천국'은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에 아니라, 살아있을 때 갖게 되는 '마음의 천국'을 가리킨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동심(童心)의 본질은 선(善)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본능에 솔직한 데 있다."
(소년 광수의 발상, 서문당, 2011, 103쪽)

(왼쪽부터)'인생은 팽이치기', '어려운 철학책'(사진=연세대박물관 제공)

 


'어려운 책은 못쓴 책', '어려운 철학책을 보느니 차라리 만화를 보는게 낫다'
'인생은 팽이치기', '눈치보지 말자'

한 눈에 들어오는 재밌는 그림과 글귀들도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왼쪽부터)'사랑은 날아갔네', '사랑이 도망가버린 날'(사진=연세대박물관 제공)

 


'사랑은 날아갔네', '사랑이 도망가버린 날'

"나도 평생에 실연당한 일이 많다. 제일 슬프고 기막혔던 경우는, 어떤 '이별의 암시'도 주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내 곁에서 떠나버리는 일이었다. '실연의 절차', '이별의 절차'라도 있어야 실연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좀 덜어질 것 같다."
(소년 광수의 발상, 서문당, 2011, 121쪽)

한번쯤 실연당한 사람이라면 너무도 와닿는 글귀와 그림.

'사랑이 도망가버린 날'의 실연당한 자의 처진 눈꼬리와 위로 꼭 다문 입은 그의 상실감과 괴로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왼쪽부터)'아프리카의 여왕''어둠 속의 키스'(1993)(사진=연세대박물관 제공)

 


"나는 문학창작을 할 때도 ‘야(野)한 것’에 중점을 두지만 그림을 그릴 때도 역시 ‘야한 것’에 중점을 둔다.

야하다는 것은 섹시하다는 의미보다는 타고난 자연의 성정(性情)에 솔직한 것을 뜻한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아이들은 벌거벗고 있어도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성경>대로라면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기 이전에 아담과 이브가 갖고 있던 심리생태라고 할 수 있다. 도덕과 윤리를 뛰어넘는 순수한 본능의 세계, 그런 세계가 곧 야한 세계요 야한 마음이다. 나는 어렸을 때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 여름에 냇가에 나가 놀 때는 팬티 한 장 안 걸친 나체 상태로 뛰어놀았다. 그런 티 없는 어린 시절이었기에 내가 이른바 ‘야한 문학’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2011년 마광수 개인전 '소년, 광수' 도록 중에서 )

대표작인 '어둠 속의 키스'와 'Kiss me quick' 등 키스 연작도 눈길을 끈다.

연세대학교 박물관은 이 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낸 작가 마광수(1951∼2017) 2주기를 맞아 지난해 9월 마련한 특별전 '마광수가 그리고 쓰다'를 오는 3월 31일까지 연장했다.

특별전은 문인 마광수가 아니라 화가 마광수에 중점을 뒀다.

마광수의 유족은 지난해 7월 미술품 60여점과 소장품을 모교에 기증했고, 박물관은 그중 그림 30여 점을 공개했다.

이번에 새로 추가 전시된 '꽃', '아프리카의 여왕', '가발을 쓴 여인' 등 유화와 석판화 등 13점은 전시실 바깥쪽 공간에 따로 마련됐다.

전시회를 보러온 타 대학생 이문용(27)씨는 "글귀와 생각이 스며든 그림이 이해할 만한 수준이면서도 가볍지 않다"며 "성적인 욕망 등 개인에 집중된 분인줄 알았는데 사회적 차원에서도 생각이 깊은 분인줄 알게 됐다. 책도 읽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마 교수는 죽은 뒤 잊혀져 버리든지 조롱어린 비아냥을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전시회를 보고 난 청년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폭넒게 알게 됐다며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되었지만
윤동주처럼 훌륭한 시인으로 기억되긴 어렵겠고
아예 잊혀져 버리고 말든지 조롱어린 비아냥 받으며
변태, 색마, 미친 말 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칭송을 받든 욕을 얻어먹든
죽어 없어진 나에게는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저 나는 윤회하지 않고 꺼져버리기를 바랄뿐
(시선, 페이퍼로드, 2017,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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