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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해치지않아', 내가 해봐서 아는데-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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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15일 개봉하는 영화 '해치지않아'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에 야심 차게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 변호사 태수(안재홍 분)와 팔려 간 동물 대신 동물로 근무하게 된 직원들의 기상천외한 미션을 그렸다. 안재홍은 태수와 북극곰을, 강소라는 소원과 사자를, 박영규는 서 원장과 기린을, 김성오는 건욱과 고릴라를, 전여빈은 해경과 나무늘보를 연기했다. (사진=디씨지플러스, 어바웃필름 제공)

 

변호사 배지는 반짝일지 몰라도, 그 배지를 단 태수(안재홍 분)의 일상은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 겉은 법정 대리인이지만 실제로는 이사님 뒤치다꺼리하러 가는 길의 사소한 굴욕감, 임시 출입증을 갱신하지 못해 출입구에서 겪는 무안함, 대학 동기와 직설적인 입씨름을 하느라 싸해진 엘리베이터 안 공기 등이 태수의 현재를 보여준다.

자기 위치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싶다는 태수의 꿈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온다. 일자리를 잃고 회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이들을 온몸으로 막아내 황 대표(박혁권 분)의 눈에 띈 태수는, 다 망해가는 동물원 동산파크를 정상화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챌린징한"(도전할 만한) 일을 잘 마무리하기만 하면 M&A 전문 변호사 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영화 '해치지않아'(감독 손재곤)는 새 원장으로 온 태수와, 기존 직원들이 동산파크를 지키기 위한 이야기다. 흔히 동물원에서 보길 바라는 동물은 빚을 갚느라 다 팔려나가고 '돈 안 되는 것'들만 남은 황폐한 이곳을 어떻게 살려낼까. 어둠 속에서 호랑이 모형을 보고 혼비백산한 후, 태수는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가짜일 리 없다'라는 주장을 강하게 펼치며 사람들에게 동물 흉내를 내게 한다.

동물 탈을 쓰고 동물인 척해야 하는 사람들. 이 기상천외한 상황이 웃음의 포인트다. 너무 힘들어서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치미는 순간 "선배, 방금 정말 고릴라 같았어요!"라는 거부할 수 없는 칭찬이 도착한다. '누가 속겠나' 싶은 말도 안 되는 판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산파크 직원들은 시간이 갈수록 이 일에 꽤 진지하게 임한다. 더 이상 사람도, 동물도 쫓겨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동물원의 '흥행'을 위해 시작한 '동물 연기' 덕분에, 동산파크의 태수, 소원(강소라 분), 서 원장(박영규 분), 건욱(김성오 분), 해경(전여빈 분)은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된 동물원 안 동물의 신세를 깨닫게 된다. 동물은 자기 몸이나 기분 상태와 무관하게 방문객의 즐거움을 최우선으로 하는 '서비스직'이라는 것을.

우리 깊숙이 있거나 바위 뒤에 숨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푸념이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소리로만 끝나면 양반이다.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돌멩이나 페트병을 던지는 자들도 있다. 야속한 건 여기에 특별한 악의도 없다는 점이다.

사람처럼 옷을 입고 벗으며 체온 조절을 할 수 없고, 방문객들의 눈을 피해 쉴 공간이 충분치 않아 한정된 장소에서 행동반경을 줄여야 하며, 수치심 때문이건 최소한의 존엄 때문이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신체 부위도 노출해야 한다.

동물원에서 일했던 만큼 동물을 향한 사랑은 지극했겠으나, 적어도 동물 흉내를 내는 데 가장 중요했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누군가는 출세를 원했고, 누군가는 죄책감으로 떠나지 못했고, 누군가는 생계를 잇고자 했다. 오로지 사람을 위해 '기능'하는 동물의 처지를 절감한 건 말 그대로 '엉겁결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들은 '척이라도 해 봐서' 동물이 놓인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셈이다. 인간과 동물 1인 2역을 몸으로 보여준 배우들 덕에, 관객인 나는 동물원의 모순과 동물권에 관해 돌아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명랑만화를 좋아했다던 손재곤 감독은 전작 '달콤, 살벌한 연인'과 '이층의 악당'에 이어 이번에도 코미디를 들고 나왔다. 참는다고 피해지는 게 아닌 웃음인데, 가끔은 까슬까슬하기도 쓰라리기도 하다는 점이 '해치지않아'의 매력이겠다. 동물 흉내 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몸개그는 기본이다. 번지르르해 보이는 무언가를 비틀 때, 아무도 악인이 되고자 하지 않았는데 가해와 피해가 발생하는 아이러니에서 나오는 웃음도 취향에 꼭 맞았다.

연기는 두루두루 잘해서 흠잡을 이가 없다. 이미 주류이거나, 주류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직업(변호사)인데도 현실에 발 디딘 짠내로 미워할 수만은 없게 하는 힘, '해치지않아'를 보며 안재홍의 강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장승조가 크게 골탕 먹이고 싶은 얄미움을 이렇게 잘 표현할지 몰랐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약해지고 마는 여리지만 응원해 주고 싶은 얼굴의 전여빈을 보는 새로움이 있다. 특별출연의 열연도 놓치지 말기 바란다.

제목만큼 무해하면서도 금세 휘발되지는 않는 코미디.

15일 개봉, 상영시간 117분 29초, 12세 이상 관람가, 한국, 코미디.

(사진=디씨지플러스, 어바웃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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