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루 앞에 선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사진=연합뉴스)
서준(59)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의례용 도장인 어보(御寶)와 인장 전문가로 통한다.
외국으로 유출돼 미국으로 흘러간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가 2017년 7월 2일 대통령 전용기에 실려 돌아올 때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김연수 당시 국립고궁박물관장(현 국립무형유산원장)과 함께 어보를 운반한 인물이 서 연구사다.
최근 경복궁 경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서 연구사는 전시실에 있는 어보를 보다가 "숙종과 영조, 정조 시기까지만 해도 어보가 멋있는데, 이후에는 조잡해지는 경향이 있다"며 "어보 제작에도 쇠해가는 국운이 반영된 듯하다"고 강조했다.
안동대 민속학과를 졸업한 서 연구사는 1986년 9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입사했다. 그때 취업에 다리를 놓아준 인물이 민속학자인 고(故) 장철수 안동대 교수였다. 장 교수가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내 제자 하나 써"라고 말해 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에서 일용직으로 업무를 했다. 이렇게 시작한 공직 생활이 내년이면 끝난다. 그는 다음 달 1일 현직에서 물러나 6개월 공로연수를 마지막으로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난다.
"제가 운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안동 촌놈이고 민속학을 공부했는데,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 왕실 유물을 실컷 만졌잖아요. 전생에 내시였는지도 몰라요. 33년간 낮에는 경복궁 안에 있었으니까요. 지금까지 행복하게 일했습니다."
서 연구사는 문화재연구소에서 2002년까지 15년 정도 근무했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발간,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경상북도 유교문화권 조사·연구 등을 수행했다. 그중 역점 사업은 국가무형문화재를 영상으로 촬영하는 기록화였다. 1년에 100일 넘게 출장을 다니며 전승자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그는 "예천 통명농요는 영화진흥위원장을 지낸 유길촌 씨가 감독을 맡았는데, 편집하기로 한 날 갑자기 좋지 않은 일이 생겨 대신 편집을 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통명농요편에 애착이 있고, 완성도도 높은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 연구사는 민속학 전공자로서 연구소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미련이 남는 점도 있다고 했다. 1960년대 시작한 민속종합조사를 다시 한번 진행해 문화변동론 측면에서 변화를 짚어보고자 했으나, 안타깝게도 사업이 재개되지 않았다. 또 무형문화재별로 이른바 '민속지도'를 만드는 꿈도 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의 문화재 인생 2막은 국립고궁박물관(궁중유물전시관 후신)에서 펼쳐졌다. 문화재연구소가 대전 이전 작업을 하던 2002년에 당시 강순형 궁중유물전시관장이 근무를 제안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고궁박물관에 전시된 물시계 자격루 복원과 어보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서 연구사가 꼽는 주요 '업적'이다. 세종과 장영실 이야기를 다룬 영화 '천문' 제작에 조언하기도 한 그는 자격루 복원에 얽힌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자격루(自擊漏)는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등이 왕명을 받아 만들었다는 물시계로, 물이 흐르는 원리를 이용해 시간을 알리도록 설계했다.
서 연구사는 "경복궁 복원과 맞물려 자격루를 약 570년 만에 다시 제작하기로 했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다"며 "담당자가 갑자기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 용역을 담당한 남문현 건국대 교수팀이 만든 자격루가 작동하지 않는 일도 벌어져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 교수가 전통에 사로잡혀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기교를 많이 부렸다"고 주장하면서 "기계 제작에 능했던 정봉룡 선생이란 분과 자격루를 뜯어서 몇 달 동안 재조립했다"고 덧붙였다.
2007년 11월 공개된 자격루는 지금도 잘 작동한다. 서 연구사는 "자격루에는 세종의 혼이 깃들어 있다"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15세기에 조선만큼 발달한 과학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그의 관심은 어보와 국새, 어책(御冊·세자, 세자빈 책봉과 비, 빈의 직위 하사 시에 대나무나 옥에 새긴 교서)에 집중됐다. 때마침 고종 황제 어새와 성종비 공혜왕후 어보 등이 외국에서 돌아왔다.
서 연구사는 "수장고에서 잠자던 어보와 어책을 하나하나 꺼내 연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며 "조선시대에 어보와 어책을 보관한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에서 벌어진 춤과 음악인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니 어보와 어책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구서 '조선왕실의 어보'와 '조선왕조 어책'을 발간한 그의 바람대로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은 2017년 10월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일종의 세계유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거잖아요. 등재 소식을 알고 춤추고 싶었습니다. 정말 좋더라고요."
서 연구사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불탄 줄 알았던 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이 2017년 경매에 나오고, 150년 넘게 행방을 몰랐던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이 프랑스에서 지난해에 돌아온 점을 언급하면서 외국에서 조선왕실 유물이 더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30년 넘게 문화재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그는 학예연구사다. 상위 직급인 학예연구관이 되지 못했다.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감정이 있지 않을까.
"학예관이 됐다면 어보나 어책을 조사하지 못했을 거예요. 아무래도 공부하기 힘들거든요. 저는 박물관에서 전시 기획자뿐만 아니라 유물을 정리하는 사람도 핵심 인력이라고 생각해요. 유물 관리가 제 적성에 맞아서 18년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서 연구사는 국내 다른 박물관과 비교했을 때 고궁박물관 수장고가 가장 깨끗하다고 자부했다. 기회가 닿는다면 자신의 특기를 살려 박물관 수장고를 정리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작은 박물관을 찾아가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유물을 분류하고 배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