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기 모여 앉아 따끈따끈하게 놀아보십시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쌀쌀해지는 날씨가 겨울을 재촉하는 요즘, 추위를 잠시나마 잊게 만들 따뜻한 봄바람이 분다. 12일 개막하는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얘기다.
개막을 하루 앞둔 11일 열린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시연회에서 확인한 공연은 한 마디로 화끈했다.
무대와 더욱 가까워진 객석은 배우와 관객이 쉬이 소통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고, 배우들이 전하는 에너지는 생생하게 관객에 전달된다.
더불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신나는 춤사위와 흥겨운 음악은 물론 요소요소 적절하게 녹아든 풍자와 해학 코드는 절정의 몰입감을 선사하며, 관객의 웃음과 박수를 절로 이끌어 낸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는 국립극장의 '한국형 송구영신 공연'으로 '심청이 온다'(2014, 2017), '춘향이 온다'(2015), '놀보가 온다'(2016)에 이은 마당놀이 시리즈 네번째 작품이다.
판소리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지난해 초연을 올렸고, 당시 객석 점유율 98.7%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기생 추월의 유혹에 넘어가 가산을 몽땅 탕진한 한량남 춘풍을 어머니 김씨 부인과 몸종 오목이가 합심해 혼쭐을 내고 그를 위기에서 구해내 가정을 되살린다는 내용이 줄거리다.
공연 시작 전 '엿 사먹기'와 '길놀이' 그리고 새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고사'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춘풍이 온다'는 이내 등장한 '꼭두쇠'의 진행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대에 오른 꼭두쇠는 공연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관객들에 먼저 설명한다. 하지만 연이어 일어서서 "이 이야기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두 여배우에 관객들은 의아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주색잡기(酒色雜技)에 빠진 방탕한 이춘풍을 소재로 이야기를 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널리 알리고 바로 잡기 위함'이라는 꼭두쇠의 설명에 관객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마당놀이는 본격 문을 연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원작인 '이충푼전'은 조선 말기 봉건사회의 여러 문제가 드러나고, 시대상이 변화할 무렵 지어진 세태소설이다. 춘풍의 방탕함을 여성의 지혜로 질책하고 바로잡으며 남성 중심의 사회가 갖는 허구성을 폭로하고 여성의 가치와 능력을 조명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역시 마찬가지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 '오목이'와 '김씨부인'을 전면에 내세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의 이야기를 극대화했다.
반면 주인공 '춘풍(春風)'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그대로 봄바람 처럼 살랑거리며 줏대 없고 방탕한 인물로 그려진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공연 모습 (사진=국립극장 제공)
이 같이 대비되는 캐릭터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함께 관객들에 웃음을 전한다.
마당놀이에 빼놓을 수 없는 묘미는 현실을 꼬집는 풍자와 유쾌한 해학이다. '춘풍이 온다' 역시 앞서 언급한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풍자 외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부조리와 갈등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취업청탁과 고용세습, 특활비, 29만원, 알츠하이머, 사모님펀드, 기생이력 조작 등 극 중간중간 녹아 든 사이다 같은 풍자는 관객들에 통쾌함 마저 안긴다.
작품은 또 마당놀이가 고전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 역시 철저히 깨부순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속사포 처럼 랩을 쏟아붓고, 별풍선, 팔로워, 팬카페 등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한 소재를 적절하게 녹여 재미를 더했다. 이를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마당놀이의 문턱을 낮췄다.
결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선징악'이 아닌 '개과천선'을 통해 용서의 메시지를 남기고 점점 메말라 가는 현대 사회 가정에 '정(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는 12일부터 2020년 1월 2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