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연합뉴스)
대법원의 '전자법정'사업 입찰 과정에서 전직 법원 직원이 운영하는 특정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법원 공무원들이 2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공모자들 중 언론에 제보한 '내부 고발자'는 선고유예를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1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강모 전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 과장 등 14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진행했다.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법원행정처 전산직 공무원들이 전자법정 관련장비 도입과정에서 장비 공급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는 등 법원 내·외부에 크나큰 충격을 준 사건"이라며 "피고인들은 법원 전산직 공무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나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법원 일반직 공무원들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줬다"고 꾸짖었다.
다만 "어떤 조직이라도 건강하고 투명하려면 이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내부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돼야 하고 그 부패방지를 위한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다"며 "법원도 그 예외가 될 수 없고 '내부 고발자'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강 전 과장에게 1심보다 2년 줄어든 징역 8년에 벌금 7억2천만원과 추징금 3억5천만원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손모 전 사이버안전과장 역시 원심보다 2년 적은 징역 8년과 벌금 5억2천만원, 추징금 1억8천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실무담당자였던 강 전 과장에 대해 "법원 전산직 공무원으로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점에서 공무원의 공정성과 사회 일반의 신뢰를 현저하게 훼손해 엄벌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다만 전산분야 공무원으로서 재판업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법원의 재판과 관련된 신뢰를 훼손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1심과 다른 양형사유를 밝혔다.
이어 "진술 증거는 모두 추측에 의한 것이고 피고인이 이런 입찰방해 범행에 직접 공모·가담했다는 증거는 인정되지 않는다"며 입찰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 전 과장의 혐의에 대해선 "법원행정처 전산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뇌물을 수수하고 뇌물 공여자들에게 업무상 비밀인 법원 내부정보를 유출해 수주하게 하는 등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면서도 "피고인은 수사단계부터 범행을 전부 인정, 반성하고 있고 피고인이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된 특별한 하자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감형사유를 설명했다.
또 이들에게 지난 2011년부터 약 7년간 수억대 뇌물 및 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 법원 공무원 출신 납품업체 남모 대표에 대해서도 "수사과정에서 협조한 점, 실제로 납품한 제품에는 하자가 없는 점, 횡령 피해액 상당부분이 회복된 점 등을 고려했다"며 1심보다 2년 줄어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남씨와 공모해 범행에 가담한 업체 관계자들에게는 원심과 같은 징역형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을 언론에 제보한 납품업체 직원 이모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범죄행위를 언론에 제보해 기사화할 수 있도록 했고 이를 매개로 국회의원실과 소통하면서 '입찰비리'가 공론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 법원행정처 감사와 수사가 시작됐다"며 "이 사건의 공범이긴 하나 공범이기 때문에 내부비리를 알 수 있었고 제보도 할 수 있었다"고 참작사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내부 고발자는 범행에 가담했기 때문에 착한 사람만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내부고발도 가능했다"며 "내부 고발자는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하고 형사재판 양형에서도 그 취지를 충분히 참작해야 우리 사회가 좀 더 깨끗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1월 법원 내 정보화사업 관련감사를 진행하면서 남 대표의 업체가 20여년간 해당사업을 독점하고 입찰시 특혜를 제공받은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의뢰했다.
강 전 과장 등 법원 공무원들은 남 대표의 회사가 법원 내 실물화상기 도입 등 약 400억원대 사업을 따내는 대가로 남 대표 등으로부터 6억9천만여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