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사진=봄아트프로젝트 제공)
"저는 음악이 좋아 미칠 것 같아요"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31)는 천상 음악가다. 뛰어난 음악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음악을 통해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창조하고 음악적 견문을 넓히기 위해 많은 도전을 이어나간다.
켄트 나가노, 마이클 스턴 등 유명 지휘자들과 협연하며 클래식을 쉽게 접하지 못하는 병원, 요양원, 학교를 찾아 자선 음악회를 진행했고, 클리블랜드에 '앙코르 챔버 뮤직 캠프'를 설립해 음악감독을 맡아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신문과 월간지에 글을 기고하며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표현하는 등 끊임없는 음악적 도전을 이어나가는 클래식 아티스트다.
각종 콩쿠르를 휩쓴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조진주는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1위 및 관중상(2006),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1위 및 오케스트라상(2010), 윤이상 국제 콩쿠르 2위(2011), 앨리스 숀펠드 국제콩쿠르 1위(2012)를 수상했다.
그는 특히 2014년 9월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 중 하나인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도 우승을 거머쥔다. 하지만 그는 3개월 뒤인 그해 12월, 세상에 더이상 콩쿠르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콩쿠르라는게 중독적인 부분이 있어요. 이겼을 때 짜릿해요. 사람들도 환상적인 기회들을 제공할 것처럼 얘기해요. 콩쿠르 프로모션 할때 마치 이거만 이기면 빅스타가 될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또 당시 계속 콩쿠르에 나가는 것이 나의 발전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탈피하고 다이어트 선언 하듯이 콩쿠르 중단을 선언했어요. 내가 안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녀야 안할 거 같아서요.(웃음)"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사진=봄아트프로젝트 제공)
5일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주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었지만 우승한 뒤에도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결선에 올라온 연주자 6명 중 5명이 한국인이었어요. 다 같이 커온 친구들이기도 해 (우승을 한 이후) 미안한 마음이 크더라구요. 그 친구들이 느낀 감정을 다 알고 어떤 고생하고 살아왔는지도 아니까요. 그런 미안한 감정이 커서 이제는 콩쿠르를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조진주는 그러면서 당시 콩쿠르와 관련한 일화를 소개했다. 결선에 올라온 6명이 모두 여자였는데 영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가 '어떻게 다 여자일 수 있느냐. 비리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써서 분노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반항심으로 2015년 열린 카네기홀 연주에 여성 작곡가의 곡으로만 구성해 연주를 했다.
이처럼 음악계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 인식은 만연해 있다. 남성 지휘자의 옆에는 여성 연주자를 앉힌다거나, 여성들의 복장이나 외모 등을 평가하기도 한다.
"음악계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은 수도 없이 많아요. 매일매일 있는 일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하시는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재는 변화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가부장적인 세계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것들이라 생각해요. 그래도 그럴수록 여성 연주자들이 강하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성 연주자도 힘들지만 남성 연주자도 힘들기 때문에 서로 다 동지애를 가지고 같이 가는게 좋을 것 같아요"조진주는 이러한 음악계의 상황에서 여성 연주자의 일반화된 복장인 드레스 대신 정장 바지를 입고 연주회에 나서는 등 톡톡 튀는 모습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다.
"바지는 그냥 편하고 싶어서 입었어요. 드레스 입는게 나이 먹을 수록 더 불편히지니까 편해지고 싶었어요. 정장바지를 입고 무대에 올라갔더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더라구요. 일단 움직이기가 너무 편하고 음악에 더 집중 할 수 있었고, 이제까지 드레스만 입어야 하는 줄 알고 '사기 당했다'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또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사람들에게 뚱뚱해 보일까, 옷이 내려가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한순간에 제거가 됐는데, 이게 바로 '억압'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언제나 당당한 소신을 밝히며 끊임없이 음악적 도전을 이어가는 조진주는 오는 1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 리사이틀 'VOICE Ⅱ: 지난 밤, 꿈속의 이야기'를 연다.
지난 2014년 조진주가 'VOICE Ⅰ'을 통해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며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희망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했다면, 이번 공연 'VOICE Ⅱ: 지난 밤, 꿈속의 이야기'는 치열하지만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걷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조진주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이타마르 골란과 함께한다. 골란은 정경화, 바딤 레핀, 막심 벤게로프 등 내로라 하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협연해 온 아티스트다. 조진주는 1부에서 골란과 함께 멘델스존과 슈만의 소나타를 연주하고, 2부에서는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소품집을 선보인다.
"소나타 2곡을 앞쪽에 배치하고 소품집을 많이 쓰는 건 사실 드문 형식이죠. 기교적인게 몰려 있고, 소품을 다 한꺼번에 배치한다는게 연주자한테는 부담이 되고 손이 많이 가고 준비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무서운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학술적으로 다가가고 나한테만 좋은 것 하는거 아닌가 생각하다가 '내가 음악과 사랑에 빠졌을 때는 언제일까?' 했을때 엄마랑 차를 타고 가면서 소품집 시디를 들은 기억이 났어요. 거기서 영감을 받아 제가 좋아하는 곡들을 하면서 음악적 소신을 지키고 또 관객들과도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실험적인 시도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어요" '실험적 시도'라고 조심스레 언급하긴 했지만, 그는 이번 공연에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이런 형식의 프로그램을 이번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시그니처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도 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음악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남겼다.
"음악을 들었을때 '죽어있다'고 느끼면 그건 표현에 실패한거에요. 클래식은 과거의 시공간을 지금으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지금 저희가 하는 일의 정수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고전 예술의 매력이나 가치는 흔들림이 없어요. 하지만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