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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 드라마는 만개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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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지난 21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사진=팬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1월 9일, KBS2 새 수목드라마 '왜그래 풍상씨'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풍상 역을 맡은 유준상은 "이렇게 환경적으로 정확하게 시간 분배해서 만드는 작품은 아마 드물 것"이라며 진형욱 PD와 스태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 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지 질문했다.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는 웃음기를 띠고 '노동 환경'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의 노동 환경을 묻는 게 웃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의아했다. 진 PD와 유준상이 차분히 대답을 이어가지 않았더라면, 혼자 멋쩍어하는 시간이 제법 길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해만 해도 사망(넷플릭스 '킹덤',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부상(SBS '황후의 품격'), 계약서 미작성('사자'), 임금 미지급 사태(웹드라마 '품위 있는 여군의 삽질 로맨스),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인한 고발(OCN '플레이어', '프리스트', tvN '나인룸', '손 더 게스트')이 일어났다. 한편에선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어떻게 자리잡게 할지 지혜를 모으는 와중에, 많은 수의 드라마 현장은 마치 딴 나라 얘기라는 듯 하루 20시간 넘는 촬영을 이어갔다.

지난 21일 종영한 KBS2 '동백꽃 필 무렵'도 초장시간 노동이 드러난 드라마 중 하나였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이하 노조)에 따르면, '동백꽃 필 무렵'은 표준근로계약서 대신 업무위탁계약을 맺었고, 가장 길게 찍을 땐 하루 21시간 노동(10월 4일)을 하기도 했다. 노조가 제작사 팬엔터테인멘터트에 요구한 교섭안은 '1일 14시간 노동'(휴게시간 2시간 미포함)이었다. 평상시 하루 촬영 시간이 그 이상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조의 폭로가 나온 시점은 총 40부작(하루에 2부씩)인 드라마 17~18회 방송을 앞뒀을 때였다. 이미 중반 가까이 촬영이 진행됐을 때 비로소 열악한 노동 환경 실태를 알린 셈이다. 제작사와 노조가 교섭을 이뤄 노사 협약을 맺은 때는 지난 12일이었다. 드라마 종영을 불과 일주일 남짓 남기고서야 스태프들의 요구가 일부 반영된 협약서가 나왔다.

'동백꽃 필 무렵'은 편견에 갇힌 맹수 동백을, "사랑하면 다 돼!"라는 무조건적인 응원과 지지로 깨우는 촌므파탈 황용식의 폭격형 로맨스이자, 동백과 용식을 둘러싼 이들이 "사랑 같은 소리 하네"를 외치는 생활 밀착형 치정 로맨스다. 동백 역 공효진, 용식 역 강하늘을 비롯해 김지석, 손담비, 오정세, 염혜란, 이정은, 고두심, 지이수, 아역 김강훈 등 배우들의 호연, '백희가 돌아왔다', '쌈, 마이웨이'를 쓴 임상춘 작가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탄탄한 대본,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분위기를 잘 살린 연출 등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인생 드라마', '올해의 드라마' 등의 호평이 뒤따랐다.

시청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은 '동백꽃 필 무렵'이었기에 촬영 현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의외'이고 '실망'이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휴머니즘'을 바탕에 둔 따뜻한 뉘앙스의 드라마가 정작 스태프들에게는 매정해 논란이 된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인생을 바둑에 빗대며 각자 성실히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그린 '미생', 노량진 강사들과 공무원 준비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공감형 드라마 '혼술남녀',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치유해가는 '나의 아저씨' 등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현장의 초고강도 노동은 오랜 시간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 '희생'은커녕,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고생'이나 '열정'쯤으로 취급됐다. 아침에 촬영을 시작해 이튿날 동트는 걸 보고 돌아왔다는 경험담 정도는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 에피소드로 소비됐다. 그렇게까지 공을 들였기에 좋은 작품이 나왔다는 식으로, 마무리는 꼭 훈훈하게 지어졌다.

지난 2017년 4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참석자가 "드라마 현장이 바뀌기를 또다시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요구합니다"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지금은 다르다. 작품성이 모든 것을 무마할 수 있는 최종병기였던 시대는 지났다. 시청자들도 드라마 '안'의 훌륭함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작품뿐 아니라 촬영 현장의 윤리와 노동자 안전에도 함께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보탠다. 한때 '예민폐'(지나치게 예민해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로 여겨졌던 이 같은 인식은 차츰 확산되고 있다.

물론 최근 작품일수록 드라마 현장의 노동 조건이 나아지고 있다. '동백꽃 필 무렵'도 과거 30시간 가까이 촬영했던 다른 작품들보다는 하루·주당 노동시간이 확실히 감소했다. 뒤늦긴 했으나 노조와 양보하고 협력해 협약을 맺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그동안 드라마 현장의 노동 착취 실태를 고발하고 적극적으로 시정을 요구해 온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와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쪽도 스태프들의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진행 중'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구나 그간 노동 환경을 낫게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주체들은 소극적이었다. 방송사는 제작사 등 외주업체에 책임을 돌렸고, 제작사는 낡은 관행을 고집했다. 정부의 주 52시간 근로 정책 시행, 노조와 센터 등 당사자 단체의 탄생 이후 스태프들의 노동 실태·요구 공론화에 기댄 부분이 많다. 문제 제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자진해서' 시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차영훈 PD는 28일 열린 '동백꽃 필 무렵' 종영 기자간담회에서 "스태프 처우 문제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다"라며 "더 개선해야 하지만 지금 방송 상황에서는 나름 진일보한 현장이라고 자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더 나은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애쓴 공은 분명 박수받을 일이다.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체적인 편성과 관련된 부분,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비슷한 일은 반복될 것"(한빛센터 관계자), "전체적인 시간이 줄긴 하는데, 그것이 아직도 노동자의 건강권을 해치는 범위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방송스태프지부)라는 지적도 함께 새긴다면 더 좋을 것이다.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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