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미국이 방위비분담금과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 보호협정·GSOMIA) 종료와 관련해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북한은 금강산 관광시설 철회를 최후통첩하는 등 한국 외교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특히 다음주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지소미아 종료일이 몰리면서 미국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 18~19일 방위비 분담금 협상 앞두고 美 증액 압박오는 18일~19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3차 회의를 앞두고 미국은 SMA틀을 벗어난 증액 파상공세를 펴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은 15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1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회의 종료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말까지 대한민국의 분담금이 늘어난 상태로 11차 SMA를 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지출한 분담금 90%는 한국에 그대로 들어가는 예산이다"며 "한국은 부유한 국가이므로 조금 더 부담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조금 더 부담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은 "조금 더"라고 말했지만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분담금을 50억달러(약 6조원)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특히 협상채널이나 SCM의 공식 의제가 아닌데도 에스퍼 장관이 공식 기자회견 자리에서 분담금 증액 요구를 밝힘에 따라 다음주 3차 회의부터 증액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도 "한일은 아주 부자 나라인데 왜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가? 이건 전형적 미국인의 질문들"이라며 방위비 분담금 압박 발언을 내놓았었다.
미국측이 주한미군 운용비용으로 거론하고 있는 연간 50억달러는 주한미군의 인건비와 전략자산 전개비용 등이 모두 망라된 액수로 이는 현행 SMA의 틀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SMA는 시설과 부지는 한국이 무상공여하고 주한미군 운용유지비는 전액 미국이 부담하도록 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의 예외조치로서 1991년 맺어진 협정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부담해온 분담금은 지금까지 '미군 주둔경비'라는 취지에 맞게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3개 항목에 걸쳐 사용돼 왔다.
주한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순환배치는 한반도 방어를 넘어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에 SMA의 틀을 넘어 이에 대한 비용까지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이 미국 내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 美, 23일 0시 종료되는 지소미아 유지 압박일본의 무역보복조치에 대한 맞대응 카드로 정부가 지난 8월 종료를 선언한 지소미아는 23일 0시 종료를 앞두고 되레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형국이다.
한일갈등에 대한 미국의 중재역할을 기대한 측면이 있지만 미국은 지소미아 유지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마크 내퍼 부차관보 등이 방한해 지소미아 연장을 촉구한데 이어 이번주에는 SCM 참석차 방한한 미 군수뇌부들도 압박을 가했다.
에스퍼 국방장관은 "전시상황을 생각했을 때 한미일이 효과적, 적시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중요하다"며 "양측의 이견들을 좁힐 수 있도록 촉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지소미아의 만료나 한일관계의 계속된 갈등 경색으로부터 득 보는 나라는 중국과 북한"이라며 지소미아가 북한은 물론 중국 견제용임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청와대는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는 한 지소미아 종료를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23일 0시 지소미아 종료는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 에스퍼 국방장관 접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에스퍼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지소미아와 관련해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에 대해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동맹과 무관하다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하고 있지만 미국은 지소미아를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 태평양 전략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의 상징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안보이익이 훼손당했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에 따라 지소미아 종료 이후 미국의 대응에 따라선 한미동맹 관리에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제기된다.
◇ 北은 美에 손짓, 南에는 금강산시설 철거 최후통첩이런 가운데 북한은 미국을 향해선 비핵화 실무협상에 나서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남한에 대해선 금강산관광시설 철거와 관련 최후통첩을 보낸 사실을 밝혀 정부를 더 곤혹스럽게 몰아가고 있다.
북한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이달 실시 예정인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의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고 밝히자 즉시 이를 비핵화 협상 재개의 명분으로 활용했다.
북미 실무협상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와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위원장은 14일 밤 2시간 간격으로 잇따라 담화를 발표하고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영철 위원장은 "조미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는 미국측의 긍정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한다"고 환영했고, 김명길 대사는 "임의의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미국과 마주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명길 대사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로부터 다음 달 다시 협상하자는 제안을 받은 사실도 공개했다.
비록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를 거듭 요구하긴 했지만, 북미 양측이 모두 의지를 보이면서 12월 북미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에 대해선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금강산 남측시설 철거에 대해 남측에 지난 11일 "일방적으로 철거를 단행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밝혔다.
통신은 "사대의식에 쩌들은 남쪽의 위정자들","미국이 무서워 10여년이나 방치해 두고 나 앉아있던 남조선 당국", "가련하다고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철면피하다 해야 하겠는가"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냉담한 반응은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의 '오지랖 넓은 중재자' 발언 이후 증폭돼 왔다.
남한의 역할을 믿고 북미협상 진전을 기대해왔지만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큰 폭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하노이 노딜의 충격을 받은데다, 이후에도 남한이 한미동맹과 대북제재를 우선시하면서 불신에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미대화 진전 여부에 관계없이 남북미 관계에서 남한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한일간 강제징용 판결, 수출규제 조치 해법은 요원이낙연 총리의 일왕 즉위식 참석을 계기로 실낱 같은 돌파구가 기대되기도 했던 한일관계는 원점으로 돌아선 상황이다.
15일 도쿄에서 열린 양국 외교당국간 국장급 협의는 강제징용 판결 해법 등을 놓고 양측의 입장만 확인하는 선에 그쳤다.
일본측은 지소미아와 관련해 한국측의 현명한 대응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측은 수출규제조치가 부당한 보복임을 지적하면서 조속한 철회를 촉구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본측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조기 시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관계는 이에따라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조치 착수와 일본의 추가 보복 등 악재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