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WBSC 프리미어 12 C조예선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호주를 4:0으로 꺾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환호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출발이 좋다. 한국 야구 대표팀 김경문 호가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대장정의 첫 단추를 잘 뀄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온 국제대회 첫 경기 징크스를 넘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6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C조 조별리그 호주와 1차전에서 5 대 0 완승을 거뒀다. 에이스 양현종이 6이닝 10탈삼진 1피안타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고, 김현수와 민병헌 등의 적시타로 점수를 뽑았다.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 한국 야구는 디펜딩 챔피언의 자존심을 지켰다. 2015년 첫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 미국 등 강팀들을 꺾고 초대 왕좌에 오른 바 있다.
다만 당시도 대표팀은 첫 경기는 패배를 안았다. 일본과 개막전에서 0 대 5 완패를 안았다. 물론 4강전에서 9회초 짜릿한 대역전승을 거두며 일본에 설욕했지만 불안한 출발이었다.
한국 야구는 최근 5년 동안 국제대회 1차전에서 고전했다. KBO 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된 대표팀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1차전에서 태국을 15 대 0으로 완파한 이후 국제대회 첫 경기에서 패배하는 징크스가 이어졌다.
앞서 언급한 2015년 프리미어12 1차전이 그랬고, 무엇보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차전이 뼈아팠다. 한 수 아래로 여긴 이스라엘과 1차전에서 1 대 2로 지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고, 네덜란드와 2차전에도 0 대 5 완패를 당하면서 예선 탈락했다.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도 악순환이 이어졌다. 대만과 1차전에서 실업리그 선수의 공에 당하며 1 대 2로 졌다. 물론 금메달은 따냈지만 대표팀은 병역 면탈 논란까지 더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결국 선동열 당시 감독이 사퇴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 서울라운드' 개막전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연장10회까지 접전 끝에 1대 2로 패배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고개숙인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프로 정예가 모두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도 1차전 패배를 안았다. 한국, 일본, 대만의 24세 이하 혹은 프로 3년 차 미만 선수들이 출전한 대회였는데 대표팀은 일본과 1차전에서 대접전 끝에 7 대 8로 졌다.
이번 프리미어12에서도 1차전의 중요성은 컸다. 특히 최근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대학 선수들이 주축이 된 대표팀이 4위에 그치면서 내년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행이 무산된 상황. 결국 한국 야구는 프리미어12에서 올림픽 개최국 일본을 제외하고 호주, 대만보다 높은 순위로 슈퍼라운드에 진출해야만 도쿄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때문에 김경문 감독도 호주와 1차전에서 필승을 수 차례 강조했다. 2017년 WBC의 사례에서 보듯 1차전 패배는 대회 전체를 꼬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대전하지 못한 낯선 외국 선수들과 경기라 예측하기 힘든 결과들이 나올 수 있는 까닭이다. 여기에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팀으로 상대 국가에는 챔피언 격파라는 강력한 동기 부여를 준다.
이런 가운데 호주전 승리로 대표팀은 부담을 적잖게 내려놓게 됐다. 7일 2차전 상대인 캐나다는 호주보다 전력이 좋은 팀으로 평가받는다. 만약 호주에 졌다면 캐나다전에서 선수들이 받는 압박감은 엄청났을 테지만 1차전에서 이기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대전할 수 있게 됐다.
김 감독도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첫 경기가 어떻게 보면 무거운 경기인데 역시 양현종이 마운드에서 든든한 모습을 보이면서 타자들이 분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는 호주보다 탄탄한 팀인 만큼 오늘 승리에 들뜰 필요 없다"면서 "내일이 가장 어려운 경기가 아닐까 싶은데 차분하게 준비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프리미어12의 첫 관문을 순조롭게 넘어선 한국 야구. 과연 1차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