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 '국가범죄' 가해자들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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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청산 요원
"책임자들, 자숙 없이 곧바로 사회 지도층으로 복귀"
"청산 없이 불의한 권력 들어선다면 똑같은 일 반복"
"'블랙리스트는 곧 국가범죄'란 인식 확산 우선돼야"

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 마련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시국 선언 3주년 현장 대토론회' 자리에서 관련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제공)

 

박근혜 정권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권력의 국민 옥죄기가 재현되지 않으려면, 이를 실행한 관료 조직 내부 성찰이 먼저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성의 움직임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라는 비판이 들끓는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블랙위원회 정윤희 위원장은 "지난 9월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블랙리스트 피해자 현황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며 "블랙리스트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밝혀지지 않은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에 대한 재진상조사 필요성도 파악했다"고 전했다.

4일 서울 종로에 있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시국 선언 3주년 현장 대토론회 '블랙리스트 이후, 블랙리스트 운동' 모두발언을 통해서다.

정 위원장은 "피해자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블랙리스트 책임자들은 자숙의 시간 없이 곧바로 사회 지도층으로 복귀하고 있다"며 "송수근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이 계원예술대학 총장에 임명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사태는 블랙리스트 피해자를 넘어 교육 권리가 있는 학생들에게 2차 피해를 끼친 셈"이라고 질타했다.

다산인권센터 박진 상임활동가는 '인권 관점으로 본 블랙리스트 문제' 발제를 통해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뿐 아니라 불온한 명단을 작성해 관리한 문제는 사회 전방위적으로 나타났다. 피해도 광범위하고 가해 집단도 그만큼 넓었다"며 "가해 사실이 폭로되고 상흔은 깊어졌지만 이에 대한 청산은 제대로 되지 못한 상태로 피해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중에는 유명 문화예술인들도 포함돼 있지만, 실제 피해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에게 더욱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이 없다면, 다시 전 정권과 같은 불의한 권력이 자리를 차지하게 될 때,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무너지지 않은 검열의 벽은 더 견고해질 것이고, 우리에게 예술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그림에 그릴 수도 없는, 상상 너머의 소재로 그치고 말 것이다."

'노동계 블랙리스트. 여전히 존재한다'라는 주제를 발표한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최은실(노무사사무소 돌담) 노무사 역시 "블랙리스트가 실체이던 추측이던 간에, 블랙리스트는 노동조합 활동뿐만 아니라 각종 권리 주장 자체를 시도하는 것조차 가로 막는다"며 "산재도 웬만큼 큰 사고가 아니면 자기가 치료하고 말고, 임금도 큰 금액이 아니면 참고 만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시도 자체를 가로 막는다. 권리를 이야기할 힘을 빼앗아 간다"며 "아마 블랙리스트의 진정한 목적은 '노동의 권리를 알아도 침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 진단했다.

최 노무사는 "노동자들은 새 업체에 취업할 때 경력을 작성하는데, 회사들 중 다수가 이전 회사에 연락해서 왜 해당 노동자가 사직했는지를 묻는다. 이 때문에 취직이 어려운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이러한 관행도 사라져야 하며 규제돼야 한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폭넓은 인정과 타인의 취업을 방해하는 행위들에 대한 선언적 금지를 넘어 실질적인 처벌과 규제가 이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 "끝난 거 아냐?" "언제까지…" "해봤자 안 바뀐다"…피로감·무관심 켜켜이

4일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시국 선언 3주년 현장 대토론회 '블랙리스트 이후, 블랙리스트 운동'이 열리고 있다. (사진=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제공)

 

이날 현장 토론 첫 기조발제를 맡은 문화연대 시민자치문화센터 이원재 소장은, 현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끝난 거 아니었어?"(사회 일반), "언제까지…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정부),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해봤자 바뀌는 것 없다"(문화예술계).

이 소장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국가범죄의 심각성과 후속 활동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공유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청와대·국가정보원 등 권력과 위계 구조에 의한 국가범죄의 심각성을 회피하고, 문화예술인들 스스로는 블랙리스트 사태 전반에 대한 피로감과 무관심이 축적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운동의 향후 방향성에 대해 △의미 확산 △제도 개혁 △진상 규명 △주체 확장 △의제 다각화 등을 제안하면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후속 대응 활동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문화분야 주요 쟁점으로 논의되고 정책화 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고 당면과제를 지목했다.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은 이어진 기조발제 '블랙리스트 이후, 영화계 블랙리스트 청산을 위한 활동과 과제'를 통해 "아직까지도 블랙리스트 실행에 대해 사과는 물론 어떠한 의견도 표명하지 않고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모태펀드 등 블랙리스트 실행기관의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자 처벌, 피해자의 명예·피해 회복,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원 관장은 "블랙리스트가 국가범죄임을 대중에게 인식시킴으로써 블랙리스트에 의해 부당하게 명예를 훼손당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블랙리스트 같은 범죄가 시도되더라도 이에 저항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임을 공동체가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러한 문화적 구축이 수반돼야 블랙리스트 문제가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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