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어머니회' 핼러윈 분장, 당신은 웃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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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트위터 캡처)

 

# 온 가족들이 녹색어머니회 활동에 동원돼요. 저뿐만 아니라 애들 아빠, 삼촌, 고모까지. 제가 '워킹맘'이라 어쩔 수 없이 가족들한테 부탁하는 거죠. "너희도 학부모 되면 할 거니까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해"라고 웃으면서 부탁하지만 사실 마음은 불편해요.

# 저는 녹색어머니회 활동이 '열정페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해요. '자녀볼모페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내 자녀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 엄마들의 시간, 노동력을 무료로 제공해야 하는 거잖아요. 과거 엄마들이 대부분 전업주부였던 시절에나 가능하던 구태스러운 구조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건데, 지금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6일 트위터에서는 '녹색어머니회 핼러윈데이 분장'이 네티즌들의 주목을 끌었다. 사진에는젊은 남성들이 이태원에서 일명 '뽀글머리' 가발을 쓰고 녹색어머니회 코스튬을 입은 채로 교통 정리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네티즌들은 "오늘 이태원 최고의 코스튬은 녹색어머니회다", "아이디어가 너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며 사진을 공유하고 있다. 이 사진은 트위터에서만 현재 2만여건 공유됐다.

그런데 SNS를 달구고 있는 이 사진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다. 사진에서는 녹색어머니회가 우스꽝스럽게 표현됐지만, 현실 속 녹색어머니회는 엄마들 사이 부담과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30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에 4학년 자녀를 보내고 있는 이순주(56)씨는 이번 학기 처음으로 녹색어머니회 활동에 나섰다. 이씨는 "워킹맘이라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녹색어머니회 활동에 참여한다. 남편, 동생, 사위까지 동원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선생님도 뵐 겸 학교에 왔다"고 밝혔다.

녹색어머니회 분장 사진을 본 이씨는 "녹색어머니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엄마들이 본다면 씁쓸해할 것 같다"고 말하며 한 일화를 전했다.

원래 이씨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선 방과 후 청소가 엄마들의 몫이었다. 청소에 참여하지 못하는 엄마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학부모가 학교 일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녀가 차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결국 학교는 청소하는 인력을 따로 고용하기로 했다. 이씨는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이 속상해한다. 본인 때문에 아이들이 차별 받을 까봐 두려워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키우고 있는 A(35)씨도 녹색어머니회 분장 사진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A씨는 "이러한 놀이문화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묘사할 때만큼은 보다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학기초마다 엄마들 사이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학교에서 각 반마다 학부모 몇 명 이상이 학교 일에 참여해야 한다는 할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A씨는 "엄마들끼리 그 일을 분배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학교 일에 덜 참여하는 워킹맘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학교에서 인력을 학부모로부터 충당하려 하니까 전업모는 전업모대로, 취업모는 취업모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부모 가정이라 항상 일을 해야 한다고 밝힌 A씨는 "녹색어머니회 말고도 마미캅, 도서관 사서 등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의존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며 "노동력을 행정에 편입시키지 않고 학부모에게 의존하는 것 자체가 일∙가정 양립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선생님들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한 선생님은 "학기초마다 부담이 된다. 어떻게든 녹색어머니회가 꾸려지긴 하겠지만 혹시 학부모들이 동참해주지 않으면 어떡할까 불안하긴 하다"고 밝혔다.

교육부 학부모지원팀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고충은 잘 알고 있다"며 "교육부에서도 학교에 학부모의 참여를 강제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정부나 지자체가 녹색어머니회의 대안으로 실버 봉사단을 투입해보기도 했지만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지 않은 곳도 많았다. 학부모의 입장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교육부도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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