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에서 ‘경찰총장’ 으로 불리며 승리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윤 모 총경.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윤모(49) 총경에 대해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로 내사중인 경찰이 금융감독원에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달라고 요청한 지 2주가 지났지만, 금감원은 본격적인 조사도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이 관련 의뢰를 받은 시점은 공교롭게도 윤 총경이 검찰에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된 직후였다. 금감원이 사안 조사에 소극적이었던 배경에는 검찰 수사를 의식한 측면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 금감원, '윤 총경' 특별조사국 배당했지만…"조사 의무 없다"30일 경찰과 금감원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11일 '미공개정보 이용 여부에 대한 심리분석 의뢰'라는 제목의 공문을 금감원에 보냈다.
해당 공문은 윤 총경의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요청이 담겼다. 윤 총경이 특수잉크 제조업체인 녹원씨엔아이(옛 큐브스) 전 대표 정모(45)씨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받아 큐브스 주식 수천만원을 매입한 의혹과 관련된 내용이다.
해당 의뢰를 넘겨받은 금감원은 며칠 뒤 '특별조사국'에 사안을 배당했다. 주가 조작 등 자본시장 범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특수 조사 부서다. 하지만 조사는 아직까지도 본격화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구체적인 조사 진행 상황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경찰 의뢰에 대한 조사 착수는 의무사항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윤 총경 기소 직전, '봐주기' 비판 속 공 넘겨…시점도 책임도 부담
시점과 책임. 금감원이 이번 사안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배경으로 분석된다.
우선 시점이 문제였다. 경찰이 금감원에 윤 총경 관련 의뢰를 보낸 건 이달 11일이다. 그런데 윤 총경은 바로 전날인 지난 10일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윤 총경의 영장 청구 혐의에는 자본시장법 위반도 포함됐었다.
검찰의 구속 수사 기한(20일)을 고려하면 이달 말까지 윤 총경의 기소가 확실시됐던 상황. 금감원이 그전에 법 위반 여부를 결론내리더라도 판단이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있어 조사 자체를 꺼린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는 책임 소지다.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며 수개월간 윤 총경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도 직권남용 등 가벼운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윤 총경이 사건 무마를 대가로 옛 큐브스 대표 정씨로부터 뇌물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찾아내 구속했다.
윤 총경이 정씨로부터 미공개정보를 듣고 큐브스 주식을 샀다는 의혹도 검찰 수사 단계에서 공론화된 혐의다. 이런 이유로 경찰은 '부실 수사', '제 식구 봐주기' 등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런 가운데 금감원이 조사 결과를 내놓을 경우, 윤 총경의 주식 거래 의혹에 대한 '판단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금감원이 된다. 부실 수사 비판을 받던 경찰에 쏠리던 관심이 자연스레 금감원으로 흐를 위험도 있어, '무대응'이 최선책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 범죄 수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윤 총경이 검찰에서 구속까지 된 마당에 금감원이 나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지금은 재판에 넘겨져 금감원은 손을 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경찰 공문을 보면 '심리분석'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금감원은 심리를 하는 곳이 아니다. 심리는 한국거래소가 한다"며 "금감원 입장에서는 '거래소에 갈 게 왜 여기로 왔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 경찰 "자본시장법 위반 판단 어려워…할 수 있는 것 하겠다는 것"
경찰은 윤 총경의 '수상한 주식거래'를 두고 판단을 유보하거나 무마시킨 게 아니라 전문기관인 금감원의 판단을 기다렸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내사 과정에서 윤 총경이 해당 주식 투자를 통해 이익이 아니라 손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며 "통상적인 미공개정보 이용 사건과 달랐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려워 전문 기관인 금감원에 의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의 기소를 코앞에 두고 금감원에 판단을 요청한 배경에 대해 이 관계자는 "우리는 검찰에서 윤 총경 관련해 어떤 사항을 수사하는지 모른다. 어떤 부분이 겹치고 중복되는지 파악이 안 되고 있다"며 "(검찰과 별도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윤 총경을 구속기한 하루 전인 29일 기소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는 윤 총경의 '미공개정보 이용 주식투자' 혐의가 포함됐다.
이에따라 경찰도 윤 총경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내사를 계속 이어갈지 검토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경찰 내부에서는 혐의가 겹치면 자체 내사는 중단하는 것이 맞다는 기류도 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