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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 참작 사유 알려주나…이재용에게 이례적 당부한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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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강력한 준법감시제도 필요하다" 주문
개인 유무죄 다투는 법정서 시스템 지적…부적절 '논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 종료 후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회장은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고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습니다.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합니까."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공여 혐의 등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재판부가 이례적인 당부의 말을 쏟아냈다. 대기업 내부의 준법감시 부재와 재벌경영의 폐해 등을 꾸짖는 정의로운 언어였지만 형사재판에서 나오기엔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오늘 공판을 마치기 전에 몇가지 사항 덧붙이고자 한다"며 "이번 재판 진행이나 재판결과와는 무관함을 먼저 분명히 해둡니다"라고 운을 뗐다.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의 수사와 재판을 위해 많은 국가적 자원이 투입됐다"며 "그러나 다음 몇 가지 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이 이런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부장판사는 "첫째로 실효적이고 실질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며 "삼성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피고인들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씨도 이런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는 하급기관의 비리만이 아니라 고위직 임원과 기업총수의 비리행위도 방지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연방양형기준 8장과 그에 따라 미국 대기업들이 시행하는 실효적인 감시제도를 참고하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는 이번 사건이 대기업 집단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는 점을 언급했다. 재벌 체제는 과도한 경제력 집중 현상과 일감 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로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국가 경제가 혁신형 경제모델로 도약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 부장판사는 "엄중한 시기에 재벌 총수는 재벌체제의 폐혜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데 기여해야 한다"며 "혁신기업의 메카로 탈바꿈한 이스라엘의 최근 경험을 참고하라"고 말했다.

이어 정 부장판사는 "이재용 피고인에게 당부드린다"며 "어떠한 재판결과에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심리에 임해달다"며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1993년 51세에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같은 나이가 된 이 부회장은 어떤 혁신안을 보여줄 것인지 묻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후 정 부장판사의 추가 발언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강력한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고 삼성이 국가경제에 기여할 이벤트를 찾는다면 양형에서 고려하겠다는 노골적인 신호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소재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판사는 피고인의 범죄혐의를 따질 뿐 전지전능한 심판자가 아니"라며 "특히 재판장과 피고인이 매우 수직적 관계인 형사법정에서 하기엔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내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런 점을 양형에서 고려하겠다는 힌트를 준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을 정도"라고 비판했다.

해당 변호사는 "적극적인 뇌물공여 혐의가 있는 이 부회장 등 삼성 임원들 개인의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에서 준법감시제도나 재벌체제 등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며 "재판부가 논점 흐리기를 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부회장은 이날 정 부장판사가 말하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모습이었지만 별도로 입장을 말하진 않았다. 이 부회장 측은 이번 파기환송심에서 유·무죄에 대해서는 다투지 않고 형량을 줄이는 데 집중해 최대한 실형을 피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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