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513조 5천억 원 규모의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 시정연설에서 대학입시의 공정성 확대를 위한 방편으로 '정시 확대'를 언급하면서 때 아닌 논란에 휩싸인 모습이다.
당정 간의 대책이나 조율이 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문 대통령의 언급으로 정시확대가 불필요하게 강조되는 듯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여당 내 교육공정성특위는 23일 정기회의를 갖고 대통령의 정시확대 발언을 어디까지 고려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교육부 관계자와 전문가 위원들 사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한 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을 받자 이날 회의에서도 정시확대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고, 일부 위원들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미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 때 정시를 30% 이상 반영하도록 지난해 각 대학에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정시 확대 발언에 따라 당정이 정시 반영 최소기준이 30%를 넘겨야 할 지 고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시 확대 발언 이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발언이 달라지면서 혼선을 빚는 듯한 모습도 연출됐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정부 간 엇박자 논란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유 부총리는 대통령의 발언 이전까지 줄곧 국정감사장 등 공개석상에서 '당장 정시확대는 없다'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 직후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쏠림이 심각한 대학들, 서울·수도권 일부 대학에 대해 정시모집 수능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당정청이 함께 협의해왔다"고 말이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당정은 현재까지 서울 주요 사립대를 중심으로 입시제도 비율이 학생부종합전형에 너무 쏠린 나머지 공정성을 해치는 상황까지 왔다고 보고 대책을 강구해왔다. 정시 확대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것도 한 이유다.
이에 따라 당정은 서울 주요 사립대에 한해서라도 40%정도까지의 정시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공정성 보완과 정시확대는 세트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며 "정시로 100% 회귀하자는 게 아닌 (학종과 정시를)적절하게 균형을 맞춰주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수능 비율 올리는 것도 목표치를 정하거나, 비율을 올리는 등 여러가지 선택이 있을 수 있다"며 "11월 중 교육부의 발표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택지를 열어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교육계에서도 사교육 심화와 대학 서열화 문제 등으로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던 정시 확대를 제대로된 조율 없이 성급하게 언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조국 정국'에서 대입 공정성 문제가 불거지자 민감한 입시제도 문제를 두고 정치 논리로 너무 성급하게 의제화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당장 정의당은 정부 여당의 혼선에 대해 "교육부총리가 정시 확대는 없다고 일축했었는데 갑자기 말이 바뀌었다"며 "조국 장관 논란으로 깎여나간 지지율 회복에만 급급해서, 제대로 준비 없이 교육 제도를 건드리는 일은 정부로서 최악의 선택이자, 당사자들에게 대혼란만 일으키는 갑작스런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전국 시·교육감협의회 회장을 맡은 김승환 전북교육감과 대입제도개선연구단장인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이날 '정시 확대가 가져올 학교교육과정 파행을 우려한다'는 제목의 성명서까지 냈다. 특히 김 교육감은 "정부의 갈지자 정책이 혼란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이날 '정시 확대'에 대해 "몇 퍼센트까지 확대할지 비율이 정해진 것은 없다"며 "앞으로 논의가 계속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