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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파 장애인 당구선수 이강우의 ‘행복한 당구’

‘두 팔 없는 당구선수’ 충북대표 이강우 선수가 16일 오전 서울 강서구 마곡실내배드민턴장에서 열린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남자 3구단식 BIS 선수부 32강에 출전해 경기를 치르고 있다. 황진환기자

 

"두 팔 없어도 당구만 잘 칩니다"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당구 남자 3쿠션 단식 경기가 열린 16일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마곡실내배드민턴장. 이곳에서 만난 충북대표 이강우(49)는 유일하게 두 팔이 없는 출전 선수였다.

장애인체전이지만 대회장의 분위기는 여느 일반인 당구대회와 다르지 않았다. 확연한 차이는 휠체어를 타고 경기하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가 바로 이강우다.

전국 17개 시도에서 출전한 당구 선수 176명 가운데 이 씨는 유일하게 양손이 없이 출전했다. 조금 더 상세히 소개하자면 이 씨의 왼팔에는 의수 중에서도 장식의수, 오른팔에는 작업의수가 장착되어 있다.

육상 등 기록 종목은 장애 등급을 세분화해서 경기하는 것과 달리 당구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장애 기준을 결정한다. 휠체어 탑승 유무가 유일한 등급 기준이다. 휠체어를 타지 않는 이 씨는 두 팔이 모두 필요한 종목인 당구에서 또 하나의 핸디캡을 안고 경쟁하는 셈이다.

‘두 팔 없는 당구선수’ 이강우 선수는 두 팔이 없는 만큼 큐는 오른팔에 착용한 작업의수로 쥐고 왼발을 당구대 위에 올려 공을 조준한다. 황진환기자

 

당구는 기본적으로 두 팔이 모두 필요한 종목이다. 한쪽 팔은 흔히 ‘큐걸이’라고 표현하는 지지를 위해, 또 다른 팔은 큐를 쥐고 정확하게 공을 치는 동작을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씨는 작업의수로 큐를 쥐고 왼발을 당구대 위에 올려 공을 겨냥한다. 이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 경기 후 만난 그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이 씨는 32강에서 ‘라이벌’을 만났다. 이날 상대한 인천 출신 이철근 선수는 최근 출전한 대회에서도 아쉽게 패했던 상대. 이례적으로 뜨거운 관심 속에 두 선수는 경기 초반 팽팽한 균형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철근의 초반 우세에 6-9까지 점수가 벌어졌다. 이강우가 막판 추격하며 9-9까지 만들었지만 총 40분의 경기 시간에서 종료 1분을 남기고 이철근이 2점을 달아나며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두 팔 없는 당구선수’ 충북대표 이강우 선수(왼쪽)는 휠체어 탑승 여부로 등급을 나누는 장애인 당구의 특성상 특히 더 힘든 싸움이 불가피하다. 황진환기자

 

2011년부터 장애인체전에 출전하고 있지만 전례 없는 큰 관심 탓에 경기 내내 상기된 얼굴로 굳은 표정을 지켰던 이 씨는 아쉬운 패배에도 밝게 웃었다. 자신의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상대의 승리를 축하했다. 그리고는 “내년에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선보였다.

많은 장애인 운동선수가 그러하듯 이 씨 역시 중도장애인이다. 한창 피가 끓던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해 대민지원을 나갔다가 두 팔을 잃었다. 실의에 빠졌던 그를 일으킨 것은 입대 전부터 즐겼던 당구였다.

사고가 나기 전 이 씨는 4구 기준 400점을 치던 실력파 동호인이었다. 사고 후 친구가 운영하는 당구장을 찾았던 그는 다시 당구를 치고 싶다는 생각에 일반 동호인보다 많은 훈련으로 빠르게 실력을 끌어올렸다. 지금도 일반 동호인과 실력을 겨뤄도 수준급 기량이라는 것이 동료들의 설명이다.

대회 첫 경기부터 유독 자신에게 강한 '라이벌'을 만난 이강우 선수(오른쪽)는 아쉬운 패배에도 환한 미소로 상대의 승리를 축하했다. 황진환기자

 

두 팔이 없는 장애, 그리고 제한적인 동작으로 인해 공의 위치에 따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만나지만 당구는 그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분명한 이유다.

현재 이강우 씨는 충북 진천에 공장을 둔 반도체사업체 에이티세미콘 소속으로 활약 중이다. 장애인 운동선수 취업사업 덕에 이 씨는 에이티세미콘의 직원으로 고용돼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동시에 당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을 보는 시선이 예전과 비교해 많이 좋아졌다”는 이 씨는 여전히 사회 진출을 주저하는 장애인에게 스포츠를 통한 취미 생활을 권유했다.

“여전히 휠체어를 타는 분들이나 장애가 심한 분들은 외부 활동이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장애인을 보는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더 많은 장애인이 외부 활동을 해야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한 이 씨는 “취미 생활을 하니까 집 밖으로 나오게 되고 많이 활동하게 된다. 쉬운 종목을 시작으로 해서 점차 자신에게 맞는 종목을 찾는 방법을 추천한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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