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김보라-이옥섭-한가람이 펼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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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목할 여성 감독 ④·끝]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성평등소위원회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개봉작 감독 성별을 조사한 결과 여성 감독은 평균 9.7%에 그쳤다. 여성 감독은 여전히 '소수'이며, 한 작품과 다음 작품의 사이도 남성 감독보다 길고, 상업영화에 안착하는 경우가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이 너무 오래된 탓에, 여성 감독은 너무 쉽게 '여성 감독'이라는 틀 안에 묶이고 만다. 그래서 이 기획은 '여성 감독'이라는 범주보다는 '지금 주목할'에 방점을 찍고자 했다. '보희와 녹양' 안주영 감독, '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 '우리집' 윤가은 감독, '벌새' 김보라 감독, '메기' 이옥섭 감독, '아워 바디' 한가람 감독 등 관객들에게 자기 세계를 펼쳐보인 여섯 명의 '신예' 여성 감독을 들여다본다. 그들이 연출한 작품, 각자 가진 고유한 개성, 앞으로 펼치고자 하는 작품 세계에 관해. [편집자 주]

CBS노컷뉴스는 영화 '보희와 녹양'(5월 29일), '밤의 문이 열린다'(8월 15일), '우리집'(8월 22일), '벌새'(8월 29일), '메기'(9월 26일), '아워 바디'(9월 26일) 개봉을 앞두고 안주영, 유은정, 윤가은, 김보라, 이옥섭, 한가람 감독을 1대1로 만났다. 이번 편에서는 김보라, 이옥섭, 한가람 감독이 들려준 그들의 '과거-현재-미래'를 전한다. 대면 인터뷰와 서면 인터뷰, 언론 시사회, GV, 포럼, 특별전 등 직접 취재한 행사에서의 발언을 참고해,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모두의 답변을 받지 못한 문항이 더러 있다.

왼쪽부터 '벌새' 김보라 감독, '메기' 이옥섭 감독, '아워 바디' 한가람 감독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엣나인필름 제공)

 

▶ 영화를 시작한 계기는.

김보라 감독(이하 김보라) : 저는 예술고등학교에서 연극영화 전공했다. 별 생각 없이 예고에 갔다. 인문계에 너무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어서. 동국대 영화영상학과에서 첫 단편 만들었을 때 되게 기뻤던 기억이 있다. 저를 보여줬고 그게 본질로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는 걸 처음 느꼈고 그게 되게 행복했다. 나를 설명하지 않고 카메라 뒤에서 영화로서 내 본질을 전달할 수 있구나, 그게 커다란 기쁨이었고 그게 영화 만들게 된 동기 같다.

이옥섭 감독(이하 이옥섭) :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다가 소설책을 읽었다. 문소리 선배님 영화를 계속 봤고. 스무살을 제일 아름다운 때라고 하는데 저는 맨날 방 안에서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그때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봤는데 그게 너무… 좋다기보다, 끝을 보여주는 느낌? 꿈을 좇아가는데 그 끝은 남들이 보기에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 어, 저럴 수 있다고? 어차피 난 가진 게 없잖아. 저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표정이 밝지 않을 수도 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보고 결심하게 됐다. 나 진짜 영화 해 봐야지, 하고 숙대입구역에 아그로라는 청소년 영화 동아리에 갔다. 청소년이 만 23세까지여서 (웃음) 지원해서 영화 3개 만들고 스태프도 많이 했다. 그때 만난 친구들이 지금 제 조감독도 해 준다. 거기서 영화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렇게 영화를 전공하게 됐다. 그 시간이 저한테는 너무 소중하고, 어떤 이야기를 써서 누군가가 깜짝 놀랐으면 좋겠다, 선물 준비하는 느낌처럼… 그때 그걸 알게 됐고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저한테는 너무 재밌었다. 사람들도 너무 좋고.

한가람 감독(이하 한가람) : 20대에는 영화 감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지만, 영화를 처음 시작하게 된 출발점은 중학교 3학년 때인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가 굉장한 영화 팬이셨는데 직장에 다니시면서 텔레비전에 방영하는 영화를 꼭 비디오에 녹화해 두셨고 낮에 홀로 있을 때면 하루종일 영화를 봤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도 신작이 들어오면 우리 집으로 가장 먼저 전화를 할 정도였다. 중학생 때 텔레비전에서 캠코더로 영화 찍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친구와 함께 우리도 해 보자고 나서게 됐다. 청소년 센터를 다니면서 기본적인 카메라 작동법과 시나리오 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고, 그 이후 2년 동안 내 영화를 만들기도 하고, 다른 친구의 영화를 촬영해 주기도 하고, 그 영화로 여러 청소년 영화제를 돌면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또래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일을 아직도 갖고 있는데, 지금 봐도 영화에 대한 태도가 무척 진지하다. 겨우 열여섯, 열일곱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지금 돌이켜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바빴고 가장 열심히 살았고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을 앞두고는 결국 영화과에 진학하지 못했다. 나라는 사람은 영화감독이 될 만한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영화를 잘 만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에 계속 실패하면서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동안, 순전히 취미 생활로 시나리오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작은 계기와 기회들이 모여서 결국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서른 살이 훌쩍 넘어 들어가게 되었다.

▶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지, 하는 방향성이 있나.

김보라 : 한국 사회에서는 여자들의 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차별을 당하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가족에게서 받은 차별이나 (일상의) 성희롱은 안 당해 본 적이 없지 않나. 이 사회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그런 서사를 말하지 않아 왔는데, 여성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서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얘기되지 않는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미 시장에 나와있는 얘기를 똑같이는 안 할 것 같다. 여성의 눈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하겠다. 어떤 한 사람이 삶을 정말 제대로 살다 보면 당연히 자신에게 오는 억압을 성찰하게 되지 않나. '매트릭스' 네오가 자기가 살고 있던 세계가 완전히 가짜라는 걸 깨닫는 것처럼. '모든 게 좋아. 이 사회는 행복해. 지금으로도 충분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창작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아름다움을 보는 건 좋지만 개선하고 나아가야 하고 들여다봐야 하는 곪은 상처를 제대로 보지 않는 이상, 아름다움은 박제된 조화 같은 아름다움이라고 본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고, 아무도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을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저는 (제 영화가) 되게 서늘하고 세밀하지만 따뜻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제 의도가 닿았다고 생각한다. 애정과 사랑 없이는 비판할 수 없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만이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쪽부터 김보라 감독의 단편 '리코더 시험', 이옥섭 감독의 단편 '4학년 보경이', 한가람 감독의 단편 '장례난민'

 

이옥섭 : (영화 말고) 또 다른 게 좋아지면 가차없이 다른 걸 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영화가 제일 재미있고 언제나 낯설다. 늘 '그때 어떻게 썼지?' 한다. 쌓이지 않아서 좋은 것 같다. 익숙해지면 지루해지는 것 같으니까. 되게 싫증을 잘 낸다. 뭘 하든 간에. 인간관계에서도. 2009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딱 10년째인데, 영화가 내일 싫어질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좋다. 그래서 지금 마음으로는 꾸준히 계속 찍고 싶다.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구분을 두지 않고.

한가람 : 영화아카데미에 면접을 볼 때도 앞으로 하고 싶은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해서 입학을 못할 뻔 했다. 머릿속에 뭔가 있긴 있는데 말로 풀어내는 재주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어떤 영화를 보시고 카톡이 왔는데, 너도 저렇게 좋은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 영화는 좋은 영화였다. 좋은 영화라는 것이 참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그때 엄마가 말했던 '좋은'의 의미는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내 현재 상황에 대해 위로를 받는다든지,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든지. 관객들이 재밌어 하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으로 재미를 느끼게 되는 부분은 한 인물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헤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한 소설가가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의 실패담이고 결국 이것이 읽는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내게도 이야기란 그런 것 같다. 영화 안에서 한 인물의 희로애락을 바짝 붙어서 관찰하다보면 그 과정 속에서 무언가 얻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저 사람도 저렇게 살아가니까, 나도 이렇게 저렇게 잘 살아갈 수 있겠지, 보고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좀 놓이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 영화를 만들며 잃고 싶지 않은 마음가짐이 있다면.

이옥섭 : 영화를 만들면서 계속 되뇌는 것이 있다. 스스로 속이지 말 것.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 것.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계속 경계할 것.

한가람 : 우선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계속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고 만들어 본 경험도 많지 않기 때문에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스태프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생각한 것은 작은 씨앗에 불과했는데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 더해져 영화가 점점 성장해가는 것을 느꼈다. 시나리오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어떻게 이미지로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준 동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계속해서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 차기작 계획은.

김보라 : 저는 다음 작품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될지는 신의 뜻에 맡기려고 한다. 정말로 하게 되면 기쁜 마음으로 들어갈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옥섭 : 지금 붙잡고 있는 시나리오 '사랑의 카운셀러'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 주저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뭐라도 택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아마도 더 좋은 게 있을까 봐 자꾸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 같다. 재밌어서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사랑의 카운셀러'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나오는 끔찍한 영화가 될 것이다.

한가람 : 뚜렷한 계획은 없다. '아워 바디'는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 과정에 지원하기 직전에 쓴 시나리오였다. 장편 과정을 졸업하고나서는 아카데미 입학 전부터 써 오던 이야기를 4년이 지나 끝냈다. 그 시나리오가 차기작이 되어도 좋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기회를 또 얻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구상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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