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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열두 번째 용의자', 단순 추리극 예상하면 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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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10일 개봉한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사진=㈜영화사 진 제공) 확대이미지

 

※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에서 공개된 제목은 '남산 시인 살인사건'이었다. 개봉을 앞두고서는 '열두 번째 용의자'로 바뀌었다. 제목과 포스터만 보면 유명 시인의 살인사건을 주제로 누가 범인인지 밝히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전에 방점을 찍은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열두 번째 용의자'(감독 고명성)는 단순한 추리극이 아니다. 이 점이 관객에게는 '기대 밖 반가움'일 수도, '기대 밖 당황스러움'일 수도 있을 것 같다.

1953년, 전쟁이 끝난 시기 오리엔타르 다방에서 벌어지는 '시인 백두환 살인사건 진범 찾기'가 '열두 번째 용의자'의 얼개다. 문인들이 즐겨 드나드는 오리엔타르 다방에는 그날도 시인, 화가, 소설가, 대학교수 등 여러 명이 자리를 잡고 자기의 시간을 보낸다.

비극적 정서에 취해 '멋진 자살'을 소재로 이야기할 만큼 어찌 보면 한가로운 오리엔타르 다방에 긴장감을 갖고 들어오는 인물은 박인성(김동영 분)이다. 누가 봐도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자리에 앉은 그는 왠지 수상쩍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부터가.

조용하던 다방을 들썩이게 한 건 지난밤 대폿집에서 시인 백두환이 살해당했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화가 우병홍(정지순 분)의 말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 남자가 나타난다. 중절모를 쓰고 수트를 잘 차려입은 수사관 김기채(김상경 분). 백두환 살인사건을 수사 중이라며 다방 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집한다.

촉망받던 시인이 왜 갑자기 살해된 것인지 다방 안의 사람이 말을 보태고, 김기채가 등장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초중반까지는 긴장감이 그리 팽팽하지 못하다. 왜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흥미를 충분히 돋우지 못한다. 오히려 각자의 캐릭터를 하나씩 보여주느라 장황한 설명이 길어지는 느낌이다.

김기채가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들어보고 정보를 모으면서 다방 안 사람들이 백두환과 어떤 연이 있었는지 조금씩 드러난다. 그 퍼즐 조각이 차근차근 맞춰지면서 이야기는 좀 더 또렷해진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오를 때는 역시, 김기채가 본색을 드러낼 때다.

육군 소속 수사관이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공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잃지 않았던 그가 '빨갱이'라면 치를 떨며 윽박지르고 협박하고 물리적 폭행을 가할 때, '열두 번째 용의자'는 비로소 작품의 장르와 메시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상냥한 듯 정중한 듯 모든 이들에게 존대하며 귀 기울여 듣는 듯했던 김기채는 갑자기 완전히 딴판인 모습을 노출한다. 공산주의자 색출을 인생 제1의 목표로 한 것처럼. 3년 전 밥 먹은 게 다인데도 사촌 형이 이북 사람이라는 것을 트집 잡고, 사회주의론을 공부한 교수에게는 "당신의 부역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렀는지 아시죠? 학생들이 다 빨갱이가 되면 곤란하잖아요"라며 주먹질을 서슴지 않는다.

김기채는 "빨갱이는 그냥 빨갱이야", "그래도 여기가 빨갱이 소굴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등 빨갱이를 향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빨갱이가 정확히 무엇인지 영화는 말하지 않지만, 김기채는 소탕해야 할 목표물로 빨갱이를 겨누고 심지어 자신이 매우 애국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내가 진짜 애국자"라고 말할 때는 제 감정을 못 이기고 실성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다.

고 감독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지난날의 역사를 되새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될 줄 모르고 일제에 부역했던 김기채가 전후에는 멀끔하게 육군으로 탈바꿈하고, 증오의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빨갱이는 나쁜 것'이라고 반복하는 모습에서 신념의 탈을 쓴 광기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아찔하게 알려준다.

시인 살인사건에 접근하는 수사관 김기채 역의 김상경은, 그동안 자주 볼 수 없었던 악인을 연기하며 섬뜩함을 선사한다. 그가 등장하고 나서야 느슨했던 극이 쫀쫀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허성태가 맡은 미스터리하고도 과묵한 다방 주인 노석현 역은 뒤로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니 시선을 떼지 않길 바란다.

전후 혼란기의 무기력한 지식인을 연기한 김동영의 연기는 괜찮지만,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가 워낙 훌륭해서인지 특별히 깊은 인상이 남진 않았다. 박선영이 맡은 다방 마담은 수많은 남성 캐릭터에 낀 여성 캐릭터라서 이렇다 할 특징과 서사가 없어서 아쉬웠다. 다방 안 모든 남자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정' 캐릭터도 궁금증을 가질 만한 매력을 느낄 순 없었다.

인물의 대사를 통해 꽤 직접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직설적인 영화. 추리극보다는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역사물에 가깝다.

10일 개봉, 상영시간 101분 41초, 12세 이상 관람가, 한국, 미스터리·스릴러.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는 한 유명 시인의 살인사건을 통해 시대의 비극을 밝히는 심리 추적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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