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마무리 투수 고우석(사진 오른쪽)과 포수 유강남이 9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4대2 승리를 마무리짓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상하게 잠은 잘 오더라구요"
LG 트윈스의 마무리 투수 고우석(21)은 최근 악몽같은 현실을 경험했다.
2019 KBO 준플레이오프 키움 히어로즈와의 1차전에서 박병호에게 던진 초구가 끝내기 홈런으로 이어졌다. 2차전에서는 9회말 2사 3루에서 1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서건창에게 동점 적시타를 맞았다.
계속된 2차전 9회말 2사 만루에서 박병호가 다시 타석에 섰다. 류중일 감독은 "고우석을 두번 죽이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수 교체를 선택했다. 마무리 투수로서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 그러나 고우석은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고우석은 "비록 블론세이브를 했지만 승부하고 싶은 게 투수의 마음이다. 그런데 내가 감독 입장이었어도 투수를 내렸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우석은 2차전 이후 잠시 인터넷을 끊었다. 이유를 묻자 "욕이 너무 많아서"라고 답하며 웃었다.
9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홈 3차전을 앞두고 다시 휴대폰을 만졌다. 온라인 기사로 고우석을 여전히 신뢰한다는 류중일 LG 감독의 경기 전 인터뷰 내용을 봤다.
류중일 감독은 시리즈 내내 고우석과 따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3차전을 앞두고 "기사 나갈테니 그거 보고 알아서 하지 않을까. 선수들은 다 보니까"라며 웃었다.
마음이 통했다. 고우석은 변함없은 사령탑의 믿음을 확인했고 덕아웃에서 집중력을 유지한 채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먼저 2점을 내준 LG는 정주현의 적시타와 채은성의 솔로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복귀한 오지환이 역전 희생플라이를 날렸고 8회말에는 페게로의 솔로포가 터졌다.
LG가 4대2로 역전한 가운데 마지막 9회초가 시작됐다. 류중일 감독은 주저없이 고우석을 마운드에 올렸다.
고우석은 9회초 등판 지시를 받고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솔직히 내가 감독이었으면 오늘 9회에 나를 내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한경기가 남았으니까. 믿음을 주셔서 불안감 없이 경기를 준비할 수 있었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우석은 1,2차전 부진과 무관하게 늘 차분했다. 준플레이오프 초반 어떤 심정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이상하게 잠은 잘 오더라. 잘 잤다. 그동안 속이 뭔가 답답하고 그러지는 않았다"고 의연하게 답했다.
마음가짐과는 달리 이번에도 불안하게 출발했다. 볼넷과 몸 맞은 공으로 무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이어 이지영이 희생번트를 성공했다. 동점주자 2명이 득점권 위치로 진루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제구가 불안했던 고우석에게는 아마도 아웃카운트 1개가 소중했을 것이다.
대타 박동원의 잘 맞은 타구는 외야로 뻗어나갔다. 맞는 순간 고우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타구는 중견수 정면으로 향했다. 3루주자는 움직이지 못했다.
고우석은 박동원을 상대할 때 슬라이더를 4개 연속으로 던지기도 했다. 과감한 볼배합의 배경에는 고우석의 배짱이 있었다.
고우석은 "(포수) 유강남 형은 빠른 공 위주로, 잘 던질 수 있는 공 위주로 사인을 냈는데 오늘은 내 계획을 갖고 임하고 싶었다. 형이 내 요구를 잘 받아줬고 잘 막아줬다"고 말했다.
다음 타자 김혜성은 빗맞은 타구를 외야로 날렸다. 우익수가 여유있게 공을 잡았다. 고우석은 환하게 웃으며 승리의 기분을 만끽했다.
동료들도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3루수 김민성은 고우석이 이제야 웃는다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고우석은 "2패를 당할 때 내 지분이 너무 컸다"며 "오늘 이겨서 너무 기쁘고 4차전에 갈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과정은 불안했지만 고우석이 지킨 4대2 승리는 LG에게 의미가 컸다. LG는 2패 뒤 첫 승을 올리면서 벼랑 끝에서 탈출했다. 고우석이 자신감을 되찾는 것도 소득이었다.
고우석은 3차전이 끝난 뒤 지난 며칠동안 철저한 자기 객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가 심적으로 위축되거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다.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봤기 때문이다.
고우석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나도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내 제구가 부족했고 타자가 대응을 잘했다, 팀에는 미안하지만 (스스로) 납득할 수는 있었다. 3차전 때 꼭 기회가 한번 더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차)우찬이 형과 (임)찬규 형이 경기 상황과 볼카운트 상황을 보면서 정말 객관적으로 조언해주셨다. 그동안 확신이 없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확신이 생겼다. 조언이 없었다면 오늘 더 고전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고우석은 10일 같은 구장에서 열리는 4차전에도 등판하고 싶다고 했다. 만약 박병호와 다시 맞붙게 된다면? 고우석은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타자의 타이밍을 조금 더 봐야하고 (유)강남이 형이 잘 알테니 믿고 들어갈 것이다. 가장 자신있는 공으로 승부해야 할 것 같다"면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요즘 워낙 잘 맞아서 피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하며 웃었다. 자존심은 다음 문제, 고우석은 냉정하고 차분하게 자기 자신과 이번 시리즈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