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학교 공간이 재발견되고 있다. 학교 교육 연구는 많았지만, 정작 학교 공간의 관심은 최근에야 본격화되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등의 해외 학교는 사용자 중심의 학교 공간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학교는 복도부터 옥상까지 다양한 공간을 사용하며 국내 학교가 놓치는 공간들을 활용하고 있다.
◇ 영국, 공간으로 학교 폭력 줄이고 급식실 공간 활용하고
캐피털 시티 아카데미는 곳곳에 투명한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운동장 안에서도 교실을 볼 수 있도록 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좌측) 복도에서도 교실 안을 볼 수 있도록(가운데) 교실 문이 창으로 제작됐다. 계단을 오르는 곳(우측)에도 투명한 창으로 설계돼 보이지 않는 공간을 최소화 했다. (사진=정재림 기자)
"좁은 복도나 계단을 지나가면 학생들은 움츠러드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 공간이 코너로 막혀 있으면 아이들이 따돌림을 당하거나, 폭력을 부르는 공간으로 변하게 되죠."
폴 칼호벤(Paul Kalkhoven) 포스터앤파트너스(Foster + Partners) 기술 설계 책임자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대한 생각을 밝히며 학교 공간을 더 열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포스터앤파트너스가 설계한 캐피털시티 아카데미(Capital city academy)를 가보면 보이지 않는 공간이 드물다. 운동장 밖에서 교실 안을 바라보도록 유리로 설계 됐고 일부 교실 문은 창문으로 제작됐다. 그뿐만 아니라 계단을 올라가는 공간에도 벽 대신 창으로 대신했다.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사용되지 않는 공간을 최소화 한 것이다.
칼호벤 책임자는 "선생님들이 학생들 간의 갈등 문제를 살펴볼 수 있도록 건축학적인 관점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라며 "학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압박해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를 보완하기보다 자연스럽게 건축을 통해 사회적 컨트롤을 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리지 아카데미는 급식실 공간을 활용했다. 요리 조리를 해야만 하는 국내 사정과는 거리가 있지만, 급식실을 또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본 데 그 의의가 있다. 사진은 밖에서 바라본 브리지 아카데미 전경과 1층 급식실. (사진=정재림 기자)
급식실 공간을 활용한 학교도 있다. 브리지 아카데미(Bridge academy)는 1층 공간이 시간마다 달라진다. 학생 사물함이 있는 이 공간은 오전에는 학생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때로는 회의실로 사용하며 급식실을 또 하나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브리지 아카데미 관계자는 "(급식실을 1층에 놓게 된 것은) 학교에서 직접 정했다"라며 "현실적으로 한 번에 볼 수 있고 실용적인 면을 추구하다 보니 이같은 공간이 들어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 선생님이 양보했다…독일 학교 공간들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시에 위치한 하인리치 헤르츠 슐레(Heinrich-Hertz Schule)는 전기 공학에 특화된 직업학교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이스터 고등학교와 같다. 헤르츠 슐레 학교 전경(좌측)을 보면 갈색 부분이 5년 동안 리모델링 하면서 만든 공간이다. 공사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로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이 학교 휴식공간(우측)은 교사들이 공간을 양보해 더 크게 지어졌다. (사진=정재림 기자)
하인리치 헤르츠 슐레에도 특별한 공간이 있다. 5년 동안 진행된 '리모델링'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2014년부터 2020년 8월까지 진행되는 '리모델링'은 학생들이 학교 교장에게 건의를 하면 학교 측이 이를 정리해 시와 조율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휴식 공간이 필요하게 됐다. 하지만 한정된 면적 안에서 공간을 새로 늘리기란 어려움이 따랐다. 이 때, 교사들이 나섰다. 교사들이 자신들의 업무 공간을 양보하고 나선 것.
세인트 안드레아스 회너 (StD Andreas Horner) 하인리히 헤르츠 슐레 교장은 "처음에는 반대하는 교사들도 있었지만, 대다수 교사는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리모델링 이후 학생들은 만족해 하며 공부에 대한 열정 또한 보이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교사가 공간을 양보한 학교는 또 있다.
커튼으로 공간을 연출한 ASW(좌측). 이 안에서 수업이 진행된다. ASW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무실 공간을 양보하면서 학생들을 위한 독서실 공간(우측)이 마련됐다. 1인당 1책상을 받은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며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있다. (사진=정재림 기자)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작은 마을 부튀싱엔에 위치한 '알레마넨슐레 부튀싱엔(Alemannenschule Wutoschingen·이하 ASW)'는 교실 벽을 허물었다. 대신 그 공간에는 커튼이 자리한다. 반 개념이 없는 이 학교만의 독특한 공간이다. 같은 학년 수업일 경우 학생들은 커튼만 젖히면 언제든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스테판 루파너(Stefan Ruppaner) ASW 교장은 "선생님들이 새로 (오픈 공간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지만, 학생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기로 뜻을 모으게 된 것"이라며 "학생들과 같이 수업하는 방식이다 보니 학생들이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염두에 두고 학교를 지었다"고 말했다.
◇ 옥상에 수영장과 텃밭 마련한 일본 학교
나카무라 마키에(中村真纪絵) 주오구 교육위원회 감독관은 "일본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영 교육을 받는다. 인근 초등학교에도 지하에 수영장이 있지만, (옥상에) 수영장이 있으면 수영복 입은 모습을 노출하지 않아도 돼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좌측부터 사진은 하루미 중학교 수영장. 하카타 초등학교 옥상. (사진=정재림 기자)
안전상 옥상 공간을 활용하지 않은 국내 학교와는 달리 일본 학교는 옥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 도쿄 주오구에 위치한 하루미 중학교 옥상(6층)에는 수영장이 마련돼 있다. 돔으로 이뤄진 천장에는 개폐식으로 돼 있어 언제든지 열고 닫을 수 있다.
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수영 교육 의무화가 자리한다. 이 때문에 일본 학교 지하 또는 옥상에는 수영장이 마련돼 있다.
후쿠오카에 위치한 하카타 초등학교 또한 옥상에 수영장을 만들었다. 이 학교를 설계한 구도 가즈미(工騰和美) 건축가는 옥상에 수영장을 만든 이유에 대해 "학교 부지가 부족하다 보니 수영장이 (자연스레) 옥상으로 올라오게 된 것"이라며 "옥상에 유동적으로 잔디구장을 만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우라카와 히로무(浦川宣)하카타 초등학교 교장도 "아이들이 옥상에서 공을 사용하는 곳만 금지할 뿐 다른 제약을 두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시키 초등학교. 이 학교 옥상은 텃밭으로 조성됐다. 학생들은 옥상에서 자연 실습 교육을 받는다. (사진=정재림 기자)
옥상에 텃밭을 만든 학교도 있다. 시키 초등학교 학생들은 옥상에 채소를 직접 심는다. 가꾼 채소는 후에 급식 재료로도 쓰이게 된다.
사카구치 에이지(坂口栄二)시키 초등학교 교장은 "생활 과목에 식물을 키우는 교육이 있는 데 이를 직접 체험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라며 "다른 학년뿐만 아니라 인근 보육원에서도 이곳에 와 텃밭을 가꾸고 있다"고 밝혔다.
※건국이래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숱하게 바뀌었다. 사회변화와 시대요구에 부응한 결과다. 하지만 학교건축은 1940년대나 2019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네모 반듯한 교실, 바뀌지 않은 책걸상, 붉은색 계통의 외관 등 천편일률이다. 이유는 뭘까? 이로 인한 문제는 뭘까? 선진국과는 어떻게 다를까? 교육부는 앞으로 5년간 9조원을 학교공간 혁신에 투입한다. 학교건축 무엇이 문제인지 CBS노컷뉴스가 총 11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편집자주] 글 게재 순서 |
①우리나라 학교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②"학교 갇혀서 공부하는 곳 아냐" 지역과 함께하는 영국 학교 ③'낙오자는 없다'…건물에 교육철학 반영한 독일 ASW ④ "학교가 오고 싶어요"…비결은 '사용자 참여 설계' ⑤ "보이지 않는 공간, 폭력 부른다"…몰랐던 학교 공간들 (계속)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