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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빛나는 여배우,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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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현장]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공식 기자회견
공통 언어 없는 프랑스 배우들과의 작업 방식부터 영화를 만드는 이유까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시아 프리미어로 공개된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프랑스 영화계의 대스타 파비안느가 자서전을 발표한 후 딸 뤼미에르가 찾아오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사진=㈜티캐스트 제공)

 

거장으로 불리는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연기란 과연 무엇인가'란 질문에서 이 영화가 시작됐다며, 본인에게 음양이 있다면 양(밝은 면)을 더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이하 부산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세계 영화미학의 최전선을 소개한다는 슬로건 아래 동시대 거장 감독들의 신작이나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을 상영하는 섹션이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가 출연한다. 일본에서는 오는 11일 개봉하고, 국내에서는 연말 개봉 예정이다.

다음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프랑스어 대사로 하도록 내용을 전달하고 이해시켜야 했는데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의사소통은… 제가 일본어밖에 못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을지 그것이 과제로 느껴지기도 했다. 뛰어난 통역사를 만나게 됐다. 5년 동안 함께 작업한 여성분인데 거의 6개월간 현장에 쭉 함께해주셨다. 거기서 도움받았던 부분이 컸다고 할 수 있고, 평소보다도 더 의식했던 게 있다. 직접 언어로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손편지를 써서 배우들에게 많이 전달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흔적이 남을 수 있게끔 배우들에게 전했다. 일본에서도 평소에 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외국에서 촬영하는 것인 만큼 분량을 늘려서 하게 됐다.

이게 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긴 한데,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10여 년 전에 배두나 배우와 같이 작업한 적이 있다. 공통 언어가 없었지만, 촬영을 진행할수록 언어가 필요 없었다. 서로 어떤 부분을 바라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결여됐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에 어떤 길로 나가야 할지 서로 보조를 맞출 수 있게 됐다, 언어 없이도.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달까. 그런 일들이 이번에도 현장에서 일어났다. 이런 것이 바로 영화 만드는 것의 재미가 아닐까. 언어를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 배우들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했나.

캐스팅에 대해서는 줄리엣 비노쉬와 십수 년 전부터 쭉 교분이 있었다. 언젠가 함께 영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줄리엣 비노쉬로부터 받았던 상황이었고, 이번에 거기에 보답할 수 있는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제가 플롯 상태로 건넸던 게 2015년 정도였다. 그 단계에서는 이미 제 노트 첫 페이지에 줄리엣 비노쉬, 까뜨린느 드뇌브, 에단 호크 세 배우가 있었다. 첫 구상 단계부터 있었던 거다. 제 꿈이 이뤄지는 형태로 이번 작품이 성사됐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는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등이 출연한다. (사진=㈜티캐스트 제공)

 

▶ 어린 배우들과도 원활히 소통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번에도 뤼미에르 딸 역할로 어린이가 나온다. 작업 과정은 어땠는지.

오디션을 통해서 그 소녀를 캐스팅했다. 일본에서 했던 것처럼 '할머니 집에 놀러 갔다고 생각해 달라. 그런 이야기다'라고만 전했다. 촬영하면서는 평소 아이들에게 하듯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동시통역사분도 귓속말로 속삭였고, '속삭임 작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 원래는 학교에서 따돌림당하고 등교 거부하는 아이로 설정했는데, 그 아이(배우)는 기가 세고 승부 근성도 강한 여자아이더라. 여름방학이 막 끝나는 시점이어서 여름방학 때 어디 다녀왔는지 물어봤더니, 아주 성가시고 귀찮다는 듯 '아까 저 아줌마(의상 피팅 관계자)에게 말했으니까 저 아줌마한테 물어보세요'라고 하더라. (웃음) 바다에 갔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배우 실제 모습에서) 도저히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캐릭터의 느낌을 받지 못했다. '굉장히 당찬 DNA를 할머니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았구나!'라고 생각해서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하게 됐다.

▶ 배우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오마주를 의도한 건 아니다. 까뜨린느 드뇌브가 영화사에서 빛나는, 현역 여배우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다면적으로 생생하게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게 저한테는 가장 큰 과제였다.

▶ 영화 속 파비안느는 뤼미에르의 엄마이지만, 파비안느가 촬영하는 영화에서는 오히려 딸이 된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

영화에는 굉장히 다양한 딸과 엄마가 나온다. 상황이 역전되기도 하고 연기하다가도 연기를 안 하기도 하며, 라이벌이 등장하기도 하고 정원에서 들려오는 손녀 목소리를 딸 목소리로 착각하기도 한다. 다양한 장소에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해 보고 싶다는 게 처음부터 있던 콘셉트였다. 까뜨린느 드뇌브의 단면, 측면 곳곳을 조명함으로써 다면적으로 묘사해 보고 싶었다. 어떨 땐 할머니이고 또 어머니이자 여배우, 딸인 모습을 다층적으로 그려보고자 했다.

▶ 그동안 내놓은 작품을 보면 항상 '가족'을 테마로 하는 것 같은데 의도한 건가.

이번엔 가족 드라마라기보다 '연기란 과연 무엇인가'에서 시작한 영화다.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게 처음 시작부터 있었고, 그 여배우를 중심으로 놓고 여배우가 되지 않은 딸의 존재와 젊어서 세상을 떠나게 된 라이벌, 이 두 여성을 등장시킴으로써, 세 인물 가운데 있는 한 명(파비안느), 그런 축으로 영화를 그리고자 했다.

▶ 영화의 주제로 '진실'을 내세운 이유는.

사실 이 이야기는 거짓과 허구가 뒤섞인 '진실'이라는 자서전을 쓴 어머니가 있다. (한편으로) 딸도 자기 자신을 속인, 진실이라고 할 수 없던 과거의 역사가 있다. 자기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생각이었다. 딸의 입장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일주일을 통해 본인이 생각해 온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 서로 연기하기도 하고 마법을 쓰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가 도달하고 싶었던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가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

지난해 열린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 촬영 현장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유리 역의 배우 사사키 미유 (사진=㈜티캐스트 제공)

 

▶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어떤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했나.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제가) 어둡고 무거운 영화만 만들어왔다는 자각은 없다. 그런데 제 영화를 보고 그런 인상을 받는 분이 많은 것 같다. (한 사람의) 어머니이자 딸이자 아내이자 이런 다각적인 매력을 끌어내고 싶다는 연출가로서의 생각이 있었다. 제 안에도 음과 양의 면이 있지만 이번엔 양에 집중했다. 이번 영화는 보고 난 후 독후감(감상)이 '밝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 새로운 곳에서 촬영하면서 새로운 풍경을 담았다. 어떤 점을 신경 썼는지.

우선 제가 살고 있지 않은 곳, 생활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촬영하면서 신경 쓰고 주의한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에펠탑 앞에서 촬영한다든지 개선문을 등장시킨다든지 그림엽서에서 줄곧 봐왔던 풍경에 등장인물을 걷게 하거나 이런 건 피하도록 했다. 일상적인 풍경들, 그 동네에서 사는 모습을 그려낼 수 있게 신경 썼다.

어려우면서 동시에 재미있던 게 있다. 제가 선택한, 로케 장소가 됐던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 집이 되게 넓었다, 일본에서 촬영하면 어느 정도 집의 장소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여기는) 부엌까지의 거리, 계단과의 거리 이런 걸 느낄 수 없었다. 시나리오를 완성시키기 전에 이틀 밤 그 집에 직접 묵으면서 대본을 손에 들고 대사를 읽으며 집 안 구석구석을 다녔다. 실제로 걷다 보니 대사 분량이 너무 짧아서 (다 움직이기도 전에) 일찍 끝나버리더라. 집이 넓다 보니까. 집안에서의 이동 거리가 일본에서 찍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소감이 궁금하다.

평소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일본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의식하지는 않는다. 프랑스에서 영화 찍으면서도 프랑스 영화를 찍는다는 의식은 없었다. 아무튼 항상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하는 게 사실이다. 동시대 아시아 감독,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 이창동 감독 등 이런 동시대에 영화 만들고 있는 아시아의 동지들, 벗들 이분들 작품에서 늘 자극받고 영감받아왔다. 저 또한 그들에게 보여드렸을 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25년간 영화 만들어왔다. 그래서 제 의식 근저에는 아시아영화인이라는 게 있다고 본다.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다.

▶ 영화를 계속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제가 왜 영화를 만들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제가 이번에 일본 밖으로 나가서 프랑스, 미국 분들과 작업했고 이렇게 뛰어난 영화제에 초청받고 참여하게 됐다. 영화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영화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제가 소속된 국가나 공동체보다 훨씬 더 크고 풍부한 '영화'라는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어떤 내셔널리즘과는 전혀 무관한 지점에서, 영화를 통해 서로 같은 가치관 공유하고 이어지고 연대할 수 있는 경지나 심경을 느꼈을 때 정말로 행복하다. 그런 시간을 거쳐오며, 영화 만드는 사람이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느낀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전양준 집행위원장과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로 부국제를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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