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반데케이부스 (사진=배덕훈 기자)
80년대 후반 유럽 무용계의 판도를 바꿔놓았던 '현대무용의 이단아' 빔 반데케이부스가 '억압'을 주제로 한 작품 '덫의 도시'(Trap Town)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빔 반데케이부스가 창단한 무용단 울티마 베스의 '덫의 도시'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이하 시댄스)의 개막작으로 초청돼 2일 축제의 막을 연다.
이날 개막공연에 앞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라운지에서 만난 빔 반데케이부스는 '덫의 도시'에 대해 "다양한 억압에 대한 신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며 "영상과 안무 등으로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얽혀져 있는 복합적인 도시와 '억압'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고 설명했다.
빔 반데케이부스는 1980년대 후반부터 벨기에를 현대무용의 성지로 이끌었던 무용계의 조류를 뜻하는 '벨기에 인베이전'의 대표주자로도 불린다. 그는 또 안무가와 사진작가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왔다.
빔 반데케이부스는 종종 고대 신화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이것을 작품 속에 녹여 그려낸다.
지난 2003년 첫 내한 당시 파격적인 비주얼로 한국 관객들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인 '블러쉬(Blush)' 역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번 '덫의 도시'는 '블러쉬'의 연장선상에서 태어난 작품으로 또 다른 신화인 고대 그리스의 '안티고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태고부터 시작된 인간의 갈등과 불가해한 재앙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려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한 구조인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울티마 베스 '덫의 도시' ⓒDanny Willems
빔 반데케이부스는 "실질적으로 한국에서의 억압과 유럽에서의 억압은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 맥락이 달라도 억압을 이해할 수 있게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며 "작품안에는 사회적 계층의 억압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 등 다른 여러가지 억압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억압이라는 것은 어떤 억압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종류의 억압이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다"면서 "억압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작품에서도 간단한 방식으로 억압이 생겨난다"고 밝혔다.
이어 "유럽에서도 난민 반응을 봐도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긴장감들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며 긴장감은 이기심과 공포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러한 공포심이 억압 관계를 야기한다"고 부연했다.
작품은 다양한 억압을 다루지만 기존에 사회의 억압된 관계를 그대로 다루지 않는다. 예컨데 인종차별 같은 경우 억압의 대상이 된 흑인은 작품 속에서 억압을 하는 사람으로도 연출된다.
젠더 부분도 마찬가지다. 작품 속 그려진 도시의 시장 아들 역은 여성이 연기하며 젠더에 대한 구분을 두지 않았다.
빔 반데케이부스는 "실제로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덫에 걸려있는 상황이 존재한다. 영화 '기생충' 역시 그런 내용을 다뤘다"며 "억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동시대의 모습을 그리기 보다 단순화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덫의 도시'를 시작으로 문을 여는 시댄스는 올해 '폭력'을 주제로 관객들을 마주한다. 신체적 폭력만이 아닌 섹슈얼리티, 젠더, 고정관념, 이데올로기, 인종차별, 관계, 흑백논리 등 다양한 키워드의 폭력을 다룬 작품을 선보인다.
이종호 시댄스 예술감독은 "전세계 모든 예술이 순수한 예술로 있기 보다는 사회·정치적인 숨은 의미하고 연결되는 추세"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무용이라는 장르는 언어를 잘 쓰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이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약간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은 훌륭한 안무가와 댄서를 가졌음에도 사회·정치적인 주제 의식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며 "무용이라는 예술도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국내 안무가에게도 자극을 주고 싶고, 일반 관객들에게도 무용이 단순히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것도 주제 삼는다 보여주고 싶어 이러한 주제를 택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작년엔 '난민', 올해는 '폭력'을 주제로 하고 내년에는 '수치심'(Shame)을 다뤄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예술감독은 민간 축제인 시댄스의 지원과 관련해 정부에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이 예술감독은 "정부가 민간이 하는 축제를 사적인 축제로 구분하는 것 같다. 특히 예술 축제는 과시성 행사도 아닌데 거기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전적으로 없다"며 "예술 축제도 한 나라의 문화 인프라인데 너무 축제를 가볍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부터라도 우리나라의 예술 축제 육성 정책 같은 것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