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룡 경찰청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민갑룡 경찰청장은 18일 피의사실 공표 문제와 관련해 "수사사건의 내용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걸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는 결국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 과제"라고 말했다.
민 청장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수사기관 피의사실 공표 관행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이 밝혔다. 그는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고, 논의되는 내용들을 국민에게 알려 다수가 공감하는 일정한 기준을 형성해 나가는, 어렵고 긴 숙의 과정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의 이 같은 발언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에 무게를 두고 '훈령 개정'을 추진 중인 법무부의 최근 입장과는 다소 결이 다른 것이다.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는 피의사실이 공표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권력형 비리 감시 등 국민 알 권리 차원에서는 공표를 일부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 충돌하는 만큼 정부가 일방 주도할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견해에 가깝다.
민 청장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 무죄추정의 원칙,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자유 등 다양한 법익들 가운데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조화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기에 더욱 심도 있게 검토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민 청장의 이런 발언은 최근 수사 관련 정보라면 무조건적으로 '쉬쉬'할 수밖에 없는 경찰 내부의 답답한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 6월 울산지검은 약사면허증 위조 사건을 언론에 설명한 경찰들을 피의사실 공표죄로 입건했다.
이에 더해 법무부가 관련 훈령 개정까지 추진하자 경찰에서는 불이익을 당할까봐 일단 입을 닫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경찰은 피의사실 공표 행위에 대한 처벌 내용이 명시된 형법 126조에 알 권리 충족을 위한 '처벌 예외조항'을 두는 쪽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논란과 내부 불안을 차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토론자로 나선 윤승영 경찰청 수사기획과장도 같은 맥락에서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를 개정하여 예외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런 경찰의 입장과 관련, 함께 토론자로 나선 한지혁 법무부 형사기획과 검사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공감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오늘 이 자리를 비롯해서 앞으로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 수렴해 법무 검찰 소속 공무원이 준수해야 할 실효적 규정을 마련하고, 국회 등 입법 논의 과정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는 이날 당정 협의를 갖고 피의사실 공표 제한을 핵심으로 하는 공보준칙(훈령) 개정을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수사가 끝난 뒤 적용하기로 했다. 이번 훈령 개정 추진의 의도가 수사 중인 검찰의 입을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각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