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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밭 들어서 잊힌 '청산리대첩' 최대 격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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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 연대기 ③] 유적지 어랑촌 일대에 너른 인삼밭
"독립운동사 유일무이한 사건 일어난 곳…당혹스럽다"
항일전쟁 격전지 '북간도'…"한인사회, 병참기지 역할"
일제에 눈엣가시'기독교'…"보복 만행·불령선인 낙인"

역사학자 심용환 교수가 인삼밭으로 변한, 1920년 청산리대첩 최대 격전지로 알려진 중국 지린(吉林)성 옌벤(延邊)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시 어랑촌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아… 그냥… 진짜 삼밭이네, 삼밭…."

중국 지린(吉林)성 옌벤(延邊) 조선족자치주 허룽(和龍)시 어랑촌에 도착한 역사학자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을 잊지 못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너른 인삼밭이 들어선 이곳 어랑촌 일대는, 지난 1920년 10월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연합부대와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가 일본 정예부대를 대파한 청산리대첩 최대 격전지다.

현장을 둘러본 심용환 교수는 "누가 여기를 청산리 어랑촌이라고 생각하겠나"라며 "독립운동사의 유일무이한 사건이 일어난 곳인데 '이렇게 있어도 되나'라는 당혹스러움이 있다. 기분이 말할 수 없이 묘하다"고 토로했다.

그 시기 북간도에서는 종교와 사상을 떠나 많은 한인 젊은이들이 일본 군대와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굉일 한신대학교 명예교수는 '간민회의 활동과 그 역사적 의의'라는 글에서 "북간도의 집거구에는 다수의 한인들이 거주했고 그 땅을 개척한 새 민족 공동체가 형성됐다"며 "북간도 한인사회가 독립운동 세력의 병참기지, 인적·물적 공급원이며 군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있었다"고 분석했다.

당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上海), 충칭(重慶) 등에 있었고, 군사정부는 지린(吉林), 베이징(北京) 등지에 자리잡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맞닿아 있기에 국내 진공이 가능했던 북간도와 연해주는 항일독립전쟁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서굉일 교수는 "1910년대는 무장 독립투쟁을 준비하는 시기였다면 3·1운동을 기점으로 청산리전쟁, 봉오동전투 등 수없는 국내 진공이 이뤄졌다"며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30년대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해방에 이르기까지 한인 독립운동가들은 중국과 협력해 독립전쟁을 계승했다"고 설명했다.

◇ 북간도 한인들 '보급부대' 역할…협력 없었다면 청산리대첩 불가능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청산리대첩에 앞서 같은 해 6월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부대가 북간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기습한 뒤 봉오동으로 유인해 격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봉오동전투다.

일본군 입장에서 봉오동전투는 독립군이 기습한 탓에 졌다고 하더라도, 청산리대첩의 경우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일제가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출병시킨 일본군 정예부대를 독립군 부대가 10여 회에 걸친 전면전 끝에 대파했던 까닭이다.

청산리대첩은 그 지역에 사는 한인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를 간과한 점 역시 일본군의 패배 요인 가운데 중요한 하나로 꼽힌다.

정규군이 아니었던 독립군은 보급부대를 둘 수 없었다. 식량 등 보급품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던 것이다. 이를 보완해 준 이들이 지역민들이었다. 독립군이 전투를 벌이는 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독립군에게 주먹밥 등을 만들어 줬고,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발감개 등도 제공했다.

서굉일 교수는 "실제적으로 청산리·봉오동·대전자령 전투 등 독립전쟁을 일으켜 승리를 이끈 곳은 북간도였다"며 "그 배후에는 간민회라는 이주 한인 사회 조직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일제의 모진 탄압을 피해 북간도로 대거 이주했던 한인들이 그곳을 항일 무장투쟁 거점으로 키우고, 청산리대첩 등 독립전쟁에서 함께 싸웠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북간도 한인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기독교의 공 역시 컸다. 서 교수는 "청산리 그 70리 계곡에는 다 교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장은평교회, 구세동교회"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민주화운동 거목인 고 문익환·동환 목사의 부친으로, 북간도 명동촌 지도자였던 문재린(1896~1985) 목사의 생전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문재린 목사는 "거기 교회라는 곳은 독립군이 오면 최선을 다해 먹을 것을 대접하고 여러 가지 편의, 숙소를 배정했다"며 "그리고 동네에서 전부 음식 해다 날라서는 내려오고, 부인들이 산에 가서 나물 캐 온 걸로 산채(반찬) 해서 (독립군에 제공했다)"고 전했다.

◇ 일제 '장암동 학살' 등 보복 만행…"민족이 당할 고난을 교회가"

중국 지린성 용정시 장암동에 있는 '장암동참안유지'(獐岩洞慘案遺址) 비석. 1920년 10월 말 이곳에서 일본군이 양민 36명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스틸컷(사진=CBS 제공)

 

북간도 일대에서 항일 독립전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값진 성과를 쌓아가자, 일본군은 보복 만행을 벌이며 이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청산리대첩 직후인 1920년 10월 말 지린성 용정시 장암동에서 일본군이 양민 36명을 죽인 '장암동 학살사건'이 그러했다. 당시 일본군은 장암동 주민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불태워 죽였다. 더욱이 다 타지 않은 시신들은 파내어 또 태웠다.

현재 장암동 학살 현장에는 '장암동참안유지'(獐岩洞慘案遺址) 비석이 들어서 있다. 이 비석에 세겨진 '일본 침략군은 경신년대참안을 벌일 때인 1920년 10월 말 이곳에서 무고한 청장년 36명을 이중 학살해서 천고에 용서받지 못할 죄행을 저질렀다'는 글귀는 그때의 참상을 오롯이 전하고 있다.

이제는 허허벌판이 된 그 학살터에 선 심용환 교수는 "땅은 아무 말도 없고, 기억은 희미해져 간다"며 "이런 말 밖에는 안 떠오른다"고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장암동에서 멀지 않던 명동촌에도 일본군의 마수가 뻗쳤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 시기 '간도 대통령'으로 불리던 북간도 한인 사회 리더로 명동촌을 개척한 김약연이 타지에 나가 있던 상황에서, 문재린 목사를 비롯한 마을 지도자 5명이 일본군에 스스로 잡혀갔다.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후 문재린 목사를 포함해 3명은 석방됐으나 나머지 지도자는 안타깝게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명동촌 주민들은 일제에게는 눈엣가시였던 기독교인이 대다수였던지라 보복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용정 일본 총영사가 자국 외무대신 앞으로 보낸 '북간도 불령선인(일제에 저항하는 조선인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던 말) 보고' 문서에는 김약연을 비롯한 북간도 기독교 세력을 불령선인으로 낙인 찍고 있다.

당시 일본군이 독립군 육성 기지와도 같던 명동촌 명동학교를 불태운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독립운동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려 했던 셈이다. 일제의 이러한 보복만행 탓에 기독교 독립운동 구심점은 명동촌을 떠나갔다. 다른 계열 독립운동 세력 역시 탄압을 피해 러시아나 중국 내륙으로 옮겼고, 일부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무장투쟁을 이어갔다.

이덕주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는 "고국을 떠난 디아스포라(집단이주자)는 종교를 매개로 공동체를 형성해 나간다"며 "(1920년 일제가 벌인) '경신대토벌' 때 일본군들이 집중적으로 독립군들을 추적해 가다 보니 그게 다 교회와 연결돼 있었다. 민족이 당할 고난을 교회가 (대신) 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고 만주 북간도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를 삶의 터전으로 일구면서 민족운동과 기독교를 결합시킨 남다른 문화를 뿌리내리죠. 이는 당대 항일 독립운동은 물론 해방 뒤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에도 뚜렷한 영향을 미칩니다. 10월 17일 개봉을 앞둔 다큐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를 바탕으로 북간도와 그곳 사람들의 숨겨진 가치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나라 잃은 그들에게 '북간도'는 약속의 땅이었다
② 1백년 전 만주서 '간도 대통령'으로 불리운 한국인
③ 인삼밭 들어서 잊힌 '청산리대첩' 최대 격전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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