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숱한 의혹과 문제제기에도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논란과 우려 속에서도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조 후보자와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제기에도 임명이 단행된 것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문재인 정부의 슬로건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또 국무위원의 후보자 아내가 검찰에 기소까지 된 상황에서도 임명이 강행된 선례를 남기게 됐고, 조 후보자의 최대 과제인 권력기관 개혁 역시 검찰수사로 흔들릴 위험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 '적폐청산' 외치던 촛불정권의 '조로남불'문재인 정부의 출범 일성은 '적폐청산'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난 공직사회의 비위와 도덕적 안일함을 청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 나아가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검찰을 통해 모두 법의 심판대에 세우면서 문재인 정부는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정권 출범 초반 국정 지지도가 80%에 육박한 것도 이런 적폐청산의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심복'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2017년 5월 대선 직후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페이스북에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고 강조했던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점을 드러낸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인사검증대에 올랐던 조 장관은 딸 장학금 수령·논문 제1저자 등재 논란, 동양대 총장 표창 위조 의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허위 인턴증명서 의혹, 조국 후보자가 투자한 사모펀드의 수상한 투자와 자금운용 문제 등 제기된 상태.
조 장관 임명에 대한 반대여론도 찬성보다 높은 상황이 최근 계속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층이었던 '2030세대'가 촛불집회 등 등을 돌리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진보 성향의 매체로 평가받는 언론에서도 사설이나 칼럼에서 조 장관을 둘러싼 문제제기와 의혹들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어떤 학부모는 자기 자식만을 위한 최상급 스펙을 뚝딱 만들어줄 수 있다"며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조 후보자와 문재인 정부가 최근 보여줬던 행보는 위선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권의 도덕성과 권력운용의 정당성에 치명상을 입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자료사진)
◇ 조국 아내 檢기소에도…또하나의 나쁜 선례 탄생검찰이 조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기소한 상황 속에서도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것은 정치권의 나쁜 선례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 교수는 자신의 딸 조모 씨가 동양대 총장이 수여하는 표창장을 받는 받는 과정에서 해당 문서를 위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조 후보자의 딸이 어머니 정씨가 교수로 근무하는 동양대에서 총장 표창장(봉사상)을 받고, 이를 2014년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원서에 '수상 및 표창 실적'으로 기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공정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3월까지만 해도 '국민 눈높이'를 이유로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철회했고, 최정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사퇴했다.
조 전 후보자는 국가연구비로 아들들이 유학 중인 미국 도시를 여러 차례 방문한 사실과 해적 학술단체에 참석한 것 등이 논란이 됐고, 최 전 후보자는 자신의 집을 딸 부부에게 분산 증여한 뒤 월세 임대차 계약을 맺어 꼼수로 다주택 신분을 감추려 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조·최 전 후보자의 낙마 이유와 조 장관에 대한 문제제기를 비교했을 때 조 장관을 둘러싼 논란과 의혹들이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장관에 임명된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맞지 않아 보인다.
용인대 최창렬 교양학부 교수는 "예전 같은 상황에서 국무위원 후보자가 이 정도 문제제기와 비판이 나왔으면 사퇴를 안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앞으로 민주당이 야당이 됐을 때 어떤 후보에 대해서도 낙마나 지명철회 얘기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선례가 생긴다는 것은 결국 인사청문회 등 인사검증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라며 "제도 개선을 외치는 정부에서 제도를 무력화하는 일을 벌이는 게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檢 칼날 위 조국, 檢개혁 성공할까
조 장관이 검찰개혁에 성공할지에 대해서도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제도 개혁을 통해 '적폐청산'을 완수한다는 국정과제도 흔들리는 셈이다.
검찰이 조 후보자 주변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하고, 아내 정 교수를 기소까지하면서 검찰과 문재인 정부가 정면으로 맞붙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 임명 직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을 좌절시키는 기득권과 불합리의 원천이 되는 제도까지 개혁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조 장관 아내와 주변이 검찰수사의 대상이 된 이상 동력이 약할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 조 장관을 수사가 '빈손'으로 끝날 경우 따라올 후폭풍을 염려하기 때문에 강경한 수사원칙을 고수할 공산이 크다.
조 장관 주변 수사에서 계속해서 비위 혐의 등이 나올 경우, 조 장관의 검찰개혁에 차질이 빚어지고, 나아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군다나 조 장관 임명에 자유한국당 등 야권이 강도 높게 반발하고 있어, 법제화가 필요한 검찰 개혁을 공언대로 관철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명지대 신율 정치학과 교수는 "검찰의 반발을 뚫고 개혁을 이뤄내려면 가장 뒷받침 돼야 하는 게 국민적 지지"라며 "조 장관 아내와 그 주변에 대한 수사가 계속 진행되는 상황에서 조 장관의 검찰개혁 드라이브가 얼만큼 동력을 얻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우리들은 남들보다 선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우리는 선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괜찮다'는 발상이라면, 언제든지 국민 눈높이와 괴리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