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일부 위원들을 해촉하고 새로운 진용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경사노위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노사정 협의체'라는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경사노위 위촉직 위원 12명에 대한 해촉 건의에 대해 문성현 위원장을 제외한 11명의 사의를 받아들였다.
지난 3월 탄력근로제 개편안 의결을 반대하며 계층별 대표 3명이 본위원회 보이콧에 나서면서 반년째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던 경사노위는 지난 7월 '6인 대표자회의'를 통해 '전원 사퇴' 초강수를 선택하면서 결국 전면 개편의 길을 걷게 됐다.
문재인정부 초기만 해도 경사노위는 노동계로부터 외면받던 노사정위원회를 대신해 사회적 대화의 폭을 넓히겠다며 야심차게 추진됐던 핵심 노동 공약으로 꼽혔다.
정부는 '촛불 정권'을 자임하며 진보적인 정책 변화를 약속했고, 집권 초 신경전이 펼쳐지기는 했지만 양대지침 폐기 등 정부의 진일보한 태도에 노사정 대화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하지만 고용 지표가 급격히 악화되고 정부의 경제·노동정책이 보수화되면서 경사노위 출범의 첫 단추부터 쉽게 꿰이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등을 강행했고, 집권 후 급격히 보수화된 노동정책에 민주노총이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양대노총 가운데 한 축을 잃은 경사노위는 이 과정에서 출범에만 1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고, 경사노위의 위상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출범 이후에도 정치권의 '국회 일정'에 밀려 중장기 과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보다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ILO 핵심협약 비준 등 노사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을 서둘러 논의하기에 급급했다.
특히 탄력근로제 논란에서는 결국 계층별 대표 설득에 실패하면서 소수계층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경사노위 출범 취지도 퇴색했다.
무엇보다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와 결정체계 개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ILO 핵심협약 비준 등 주요 노동 정책 사안마다 정치권이 미리 결론을 내려두고,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강행 처리하겠다고 압박했던 정부의 태도야말로 사회적 대화가 힘을 잃게 한 근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2기 경사노위에서는 무리한 합의 대신 협의기구라는 애초 취지대로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은 "민주노총 불참 당시부터 나온 얘기가 '합의를 강요하지 말라'는 요구"라며 "애초 협의체로 유지하자고 얘기했는데, 정작 정부는 입법 보조기구라는 과거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2기 경사노위에 대해서는 "이미 동력을 많이 잃었기 때문에 과거 노사정위처럼 식물기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무리한 합의를 강요하기보다는 노사정이 서로 상대방의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는 대화채널 수준으로 비중을 두고, 공감대를 찾을 때 비로소 합의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에는 경사노위의 합의가 입법 과정의 유력한 배경으로 사용하려는 정치권의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한 측면이 있다"며 "정치권에서 합의 요구가 오더라도 적절하게 끊어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