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5일 오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자유한국당 의원 및 당직자들이 패스트트랙 법안접수를 시도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경호처 직원들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발생한 여야 충돌을 수사하는 경찰이 고심에 잠겼다. 수사가 본격화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경찰의 소환 요구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때문이다. 수사의 정석대로면 체포영장 등 강제수사를 검토해야하지만 국내외 복잡한 정국 속에 정치 공세에 휘말릴까 말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양새다.
◇ 여당 비판에도 경찰서에 '노쇼' 하는 한국당, 경찰 고심 깊어져지금까지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해 소환을 요구한 국회의원은 모두 50명이다. 패스트트랙에 얽힌 의원들은 109명에 이른다. 정당별로는 한국당이 49명으로 가장 많고, 민주당 40명, 바른미래당 6명, 정의당 3명, 문희상 국회의장(무소속) 등이다.
이중 현재까지 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의원은 16명으로, 모두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소속이다. 다음주 초 출석 예정인 민주당 서영교 의원까지 하면 17명이다.
한국당 의원은 한 명도 없다. 특히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감금 혐의를 받고 있는 의원 4명(엄용수·여상규·이양수·정갑윤)은 세 차례에 걸친 경찰의 출석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경찰에 출석한 의원들은 한국당 의원들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한국당을 '노쇼 호날두'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민주당의 경찰 출석을 '견학'에 비유한 것을 두고는 "수준이 낮다"고 꼬집었다.
한국당의 출석 거부가 계속되면서 경찰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경찰 수뇌부는 한국당이 계속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회기 중에는 불체포특권, 기습 체포도 어려워... 경찰 시간끌며 보강수사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국당 의원들이 소환에 계속 불응해도 경찰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제한적이다.
현역 의원은 회기 중 불체포특권이 보장되는데 국회는 계속 가동중이다. 8월 임시국회가 이달 말까지 이어지고 9월부터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회기 중에 국회의원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체포영장을 신청해 검찰, 법원, 법무부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표결에 붙여지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된다. 이중 한 단계에서라도 불발된다면 경찰 수사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8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 사이에 잠시 쉬는 기간에 기습적으로 체포영장 카드를 쓸 수 있겠지만, 야당 탄압이라는 정치적 반발이 거세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한국당에서 '국회 탄압' 등을 외치는 순간 수사 논리는 사라지고 정치 공세에 휘말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경찰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여론을 살피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체포(영장 신청)는 필요성과 상당서 요건을 갖춰야 한다"며 강제 수사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현재 경찰은 현재 세 차례 소환 요구에 불응한 한국당 의원들을 개별 접촉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다. 동시에 보강수사도 계속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 사실에 관한 상당성을 구체화하고 명확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 서면 조사나 방문 조사 등 다른 형식의 조사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대상인 의원들이 경찰에 출석해 조사받는 게 원칙"이라며 "서면 조사는 고려한 적이 없고, 방문 조사도 다른 의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말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수사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 패스트트랙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남부지검 공공수사부(옛 공안부)에 검사 3명이 충원됐다. 검찰은 "패스트트랙과 무관한 인사 배치"라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서는 패스트트랙 수사에 대해 검찰이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적잖다.
검찰이 총대를 메고 패스트트랙 수사를 적극적으로 이어간다면 또다른 국면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