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이른바 '정준영 단톡방'부터 '언론인 단톡방', 그리고 최근 일어난 김성준 전 SBS 앵커의 불법 촬영 사건까지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그들의 유명세나 직업군에 중요성이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디지털 성범죄'가 일상화되고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과 법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과연 '디지털 성범죄'란 무엇이기에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지 짚어봤다. [편집자 주]# 범죄 발생과 1심 양형_올리브TV의 예능프로그램 '국경없는 포차' 해외 촬영 당시 여자 연예인 숙소에서 몰래카메라가 발견돼 파문이 일었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건 장비업체 직원 김모 씨.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 권영혜 판사는 10일 선고공판에서 방실침입,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위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김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진='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해외 주요국의 제도적 대응 실태조사' 자료화면 캡처)
◇ 범죄 발생 건수 2012년→2016년 2배 넘게 증가…기소율은 감소세불법 촬영 범죄가 나날이 증가하고 이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지만, 낮은 처벌 수위를 비웃기라고 하는 듯 온라인을 통해 불법 촬영물이 재유포되며 2차 범죄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가해자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가며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의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에서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경찰통계연보를 연도별로 분석한 결과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의 발생 건수는 2012년 2412건에서 2016년 5170건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경찰통계에서 특히 불법 콘텐츠 범죄로 분류되는 '사이버명예훼손·모욕' 범죄의 발생 건수 추이에 대해 주목했다. 지난 2012년 5684건이었던 수치가 2016년에는 1만 4908건으로 급격히 늘어났는데, 디지털 성폭력 범죄 유형이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는 결과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의 발생 건수는 급속도로 늘었지만 검찰의 기소율은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의 '2017 범죄분석' 통계를 보면 지난 2010년 총 666건 중 484건이 기소되어 기소율이 72.6%였는데 반해 2016년 31.5%로 감소했다. 범죄 건수 총 5852건 중 1846건만 기소된 것이다. 2016년 한 해 동안의 기소 비율만 살펴보면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는 41.7%, 통신매체이용음란죄는 36.9%, 음란물 제작 배포죄는 15.0%에 불과했다.
(사진='온라인 성폭력 심포지엄' 자료화면 캡처)
◇ 1심 형벌 종류 벌금형 > 집행유예 > 선고유예 > 징역형 순"전 남자친구가 졸라서 성관계 영상을 억지로 찍었었는데, 그걸 전 남친이 유포했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성폭력 처벌법'으로 고소했는데 징역도 아니고 벌금만 받고 끝났습니다. 그런데 재판 이후에 이 사람은 제가 자신을 고소했다는 걸 괘씸하게 생각한다며 복수하겠다고 퍼붓고는 영상을 다시 유포했어요. 저는 그래도 재판이 끝나고 그 사람이 처벌되면 사건이 일단락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유포할 줄은 몰랐어요. 이 사람은 처벌을 받아도 유포하는 사람이라면 만약에 이번에 다시 고소해서 더 큰 처벌을 받더라도 사회로 나와서 영상을 또 유포해서 어떻게든 제 인생을 망칠 것 같아요."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 중-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로 접수된 사례를 각색한 것)
'디지털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 마련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해당 사례는 오프라인상의 도촬, 협박, 강간 등으로 제작되는 '제작형 가해'로, 이는 곧 '유포형 가해'로 이어지고 이에 참여, 소비하는 각 개인으로 인해 가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제작형 가해는 피해자를 구속·협박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유포된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가 촬영물이 유포되었거나 유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매우 크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불법 촬영은 물론 촬영물 유포 등 2차 피해가 매우 심각하며, 대법원 양형위원회 '디지털 성범죄와 양형'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의 23%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성범죄와 양형'에 따르면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의 처벌과 양형에 대하여 2018년 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164건의 판결문을 전수조사한 결과 징역형 선고 사건이 2014년 197건에서 2018년 546건으로 증가했다. 반면에 벌금형 선고비율은 2014년 73.1%에서 2018년 48.5%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온라인 성폭력 실태 및 피해자 지원을 위한 심포지엄'에서도 판결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 지역을 관할로 두고 있는 각급 법원에서 2011년 1월 1일부터 2016년 4월 30일까지 선고된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1심, 상소심 포함 총 2398건 중 1심을 기준으로 2016년 6월 30일까지 선고돼 확정된 1540건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1심에서 선고된 형벌의 종류는 △벌금형 71.97% △집행유예 14.67% △선고유예 7.46% △징역형 5.32% 순으로 나타났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11건(전부 무죄 9건, 일부 무죄 2건)이 있었다.
1심 분석대상 1540건 중 무죄가 선고된 9건을 제외한 1531건에 대하여 판결문에 설시된 양형 이유 중 감경요소를 분류해보면 △미기재 42.85% △형사 처벌 전력 없음+기타 19.99% △반성 등 기타 19.01% 순으로 나타났다. 감경요소에 '합의' 또는 '처벌불원'을 포함한 경우는 133건이고, '형사 처벌 전력 없음'을 포함한 경우는 538건에 이른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 1심의 경우에도 벌금형이 63.96%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집행유예 16.22% △선고유예 6.76% △징역형 5.86% 순으로 나타났다. 항소심의 경우도 벌금형이 53.85%로 가장 많았다.
(사진='디지털 성범죄 해체하기' 자료화면 캡처)
◇ 현행법상 재유포·촬영물 편집 합성 등 처벌 공백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①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② 제1항에 따른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 또는 제1항의 촬영이 촬영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사후에 그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포 등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③ 영리를 목적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제2항의 죄를 범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불법 촬영 자체로도 심각한 사회적 범죄지만 촬영물을 유포하는 범죄 역시 피해자를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갈 정도로 2차 피해가 상당하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과학기술의 발달, 그리고 왜곡된 성인식을 바탕으로 한 남성중심 '강간문화'의 결합으로 불법 촬영물은 유포되고 전시된다. 불법 촬영물이 유포되면 완전한 삭제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또한 영리 목적을 위한 행위로 번질 수까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가 중대 범죄라는 인식의 부족은 물론 현행법상 흠결로 인해 유포행위를 포섭해 처벌할 수 없거나, 촬영 주체가 본인인 자기 촬영물 등에 대해 처벌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에서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지인 능욕'(여성 지인의 사진에 사정한 이미지를 합성하거나 실제로 사정한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 '페이크 포르노(fake porn)' 등 '촬영물 편집 합성' 처벌에 공백이 존재하는 점 역시 현행법의 문제로 지적했다.
지난 2017년 영화 '원더우먼'의 주인공인 할리우드 배우 갤 가돗의 포르노 동영상이 유포됐다. 그러나 해당 영상은 인공지능(AI) 기술로 만든 합성 영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개발자 포럼 레딧의 '딥페이크(Deepfakes)'라는 회원이 구글의 AI 도구 '텐서플로우(TensorFlow)'를 백엔드(시스템의 후면에서 시스템을 지원하는 부문)로 하는 딥러닝 라이브러리 '케라스(Keras)' 등 공개된 오픈 소스 라이브러리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합성음란물 관련 범죄는 단독 범행이 아닌 다수의 가해자가 참여한 집단 성폭력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현행법상 가해자를 성폭력 관련 혐의로 처벌할 규정이 없다. 직접 촬영이 아닌 SNS 사진을 합성한 경우는 '성폭력 처벌법'에 따라 처벌하기 어렵다.
또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의 해석 문제도 발생한다.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타인의 신체'의 개념에 해 현행법이 규정하지 않고 형법 등 타 법률에도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이에 범죄 성립 여부는 법원의 해석에 맡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서울북부지방법원의 판결을 살펴보면 피고인들은 자신이 촬영한 치마 속 촬영 부분에 관해 "다리 부분을 촬영할 의도로 뒤따라가 촬영하였으나, 의도와 달리 치마 속 부분도 촬영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피해자의 피해 맥락보다 남성 가해자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는 여성의 신체가 어디인지가 판단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에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함부로 촬영 당하지 않을 자유를 침해했는지 여부가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앞서 사례에서 보았듯이 디지털 성폭력의 특성상 최초 불법 영상물 유포자가 처벌을 받은 후에도 촬영 파일을 계속 소지하고 있다가 다시 재유포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재유포 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진='디지털 성범죄 해체하기' 자료화면 캡처)
◇ 낮은 처벌 수위 문제 지적도…현행법 개정 필요성 목소리 높아이처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이 경미하고,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한 점, 심지어 불법 촬영물을 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라는 인식마저도 사회에 만연해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범죄가 갖는 특수성과 2차 피해 문제점 등을 고려해 처벌 수위를 높이고, 현실에 맞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달개비 활동가는 "불법 촬영물을 촬영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가해자가 촬영물을 커뮤니티 등에 올리면 남성 집단의 커뮤니티 안에서 이것이 희화화하는 소재로 사용된다"라며 "뿌리 깊은 강간문화 속에서 그런 행위가 제재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허용되고 지지받는 문화가 한국 사회에 있다"라고 비판했다.
달개비 활동가는 낮은 처벌 수위에 앞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고 '보는' 행위가 용인되는 잘못된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불법 촬영물이 공유되었을 때 보지 않아야 하는데, 오히려 어디서 볼 수 있냐고 묻고 촬영물 공유한다. 촬영되고 유포돼도 아무도 보지 않으면 영상은 의미 없는데, 범죄라고 인식을 안 하고 촬영물을 보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신세경-윤보미 씨의 몰래카메라 설치·촬영 사건이 유죄이긴 하지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라며 "실형을 내린다는 건 범죄에 대해 봐주지 않는다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법에서는 이런 행위가 다른 피해에 비해 사안의 심각성을 낮게 보고, 초범이니까 집행유예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실형을 내리는 법에 문제가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영국 양형위원회는 지난 2018년 '사적인 성적 영상 공개에 대한 양형기준'을 제정했다. 정신적인 고통 또는 피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한 행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무제한으로 유포, 유포한 이미지를 지속적인 검색이 가능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반복한 행위를 가중인자로 규정하고 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해외 촬영을 간 신세경-윤보미 씨 숙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파문을 일으켰던 장비업체 직원이 집행유예를 받았다"라며 "이건 김성준 전 SBS 앵커의 불법 촬영과는 수준이 다르다. 엄벌에 처해야 하는데 중대 범죄인지 아닌지조차 아직 기준이 분명하게 형성이 안 되다 보니 실제로 중한 범죄까지 놓치고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규범이 아직 제대로 형성이 안 되며 혼동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다"라며 "양형 기준이 재정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