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디지털'과 결합해 일상을 위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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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공포 '디지털 성범죄' ①] '디지털 성범죄'란 무엇인가
젠더 폭력과 과학 기술의 결합이 만든 새로운 성범죄 유형
여성의 인격권과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
"가장 큰 위험은 자신이 범죄 대상이 됐는지 모른다는 점"
피해 '확장성' '반영구적' 특성으로 생존 위협까지 느껴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왜곡된 성인식이 만든 범죄

3월 12일 SBS '8뉴스' (사진=방송화면 캡처)

 

이른바 '정준영 단톡방'부터 '언론인 단톡방', 그리고 최근 일어난 김성준 전 SBS 앵커의 불법 촬영 사건까지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그들의 유명세나 직업군에 중요성이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디지털 성범죄'가 일상화되고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디지털 성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과 법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과연 '디지털 성범죄'란 무엇이기에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지 짚어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성범죄, '디지털'과 결합해 일상을 위협하다
<계속>


가수 최종훈 "뭐야 기절이잖아."
김○○ "기절이면 어쩌라고."
최종훈 "살아있는 여자(영상)를 보내줘."
김○○ "기절이니까 플래시 켜고 찍은 거지."
정준영 "강간했네. ㅋㅋ"

- 3월 12일 SBS '8뉴스'에 방송된 '정준영 단톡방' 재현 중 일부

지난 3월 가수 정준영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이하 단톡방)에서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사실이 알려지며 파문이 일었다. 정준영은 2015년부터 약 10개월 동안 룸살롱 여성 종업원, 잠이 든 여성 사진 등을 동료 연예인들이 있는 단톡방에 수시로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불법 촬영과 불법 공유, 과연 '정준영 단톡방'만의 이야기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 되어버린 '범죄'의 일면이다.

불법 촬영, 이른바 '몰카'(몰래카메라)라고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8일 김성준 전 SBS 앵커가 지하철에서 여성의 하체를 불법 촬영해 불구속 입건된 사례에서 보듯이 '디지털 성범죄'는 지위고하와 장소를 불문하고 벌어지며, 24시간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3월 19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따르면 '몰카'에 대한 빅데이터상의 언급량은 2015년에 7만 4000여 건, 2016년도에 8만 2000여 건에서 17년부터 18년 약 14만여 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디지털 성범죄 현황 (사진=‘디지털 성범죄 알아보기’ 자료사진)

 

◇ 여성의 인격권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디지털 성범죄'

한국여성변호사회 연구결과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또는 디지털 성폭력, 이하 '디지털 성범죄'로 통일)'란 여러 양태의 젠더 폭력 중에서도 과학 기술이 악용돼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를 말한다. 즉,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여성의 인격권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디지털 성범죄'라 부른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용어는 지난 2017년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몰래카메라 등)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사회적으로 자리잡게 됐다. 디지털 성범죄 중에서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특별법)' 제14조에서 규정한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는 흔히 '몰카'로 불린다.

그러나 '몰카'라는 용어는 이벤트나 장난 등 '유희적 의미'를 담고 있어 범죄 의식 약화를 가져온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또한 대상 범죄의 중대성과 피해의 특수성을 왜곡시키는 문제점도 있다. 이에 정부에서는 '몰카' 대신 범죄의 불법성을 강조한 '불법 촬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성범죄'라는 용어가 갖는 한계도 존재한다. 지난 2017년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의 조사 분석 결과인 '디지털 성폭력의 구분과 실태 종합 분석'에서는 '디지털 성범죄'가 가진 사이버 또는 온라인의 개념은 통신 환경을 기반으로 한 정의이기 때문에 통신을 통하여 이뤄지는 유포, 참여, 소비만을 규정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회의 법익에 반하는 음란물을 포괄하는 성범죄와 구분해 개인인 피해자가 실존함을 강조하기 위해 '성폭력 범죄'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진선미 의원이 국감장에 설치한 '몰카' (사진=연합뉴스 제공)

 

◇ 성범죄, '디지털'과 결합해 여성의 일상과 삶을 위협하다

지난 2017년 10월 13일 경찰청에서 진행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이철성 경찰청장에게 "경찰청장님은 '몰카' 피해를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으며 "몰카의 가장 큰 위험은 자신이 범죄 대상이 됐는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국감장에 설치된 TV를 틀자 이 청장의 모습이 나왔다. 몰래카메라는 탁상시계에 숨겨져 있었고, 자동차 열쇠와 물병 모양 위장카메라도 나왔다. 이 청장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부가 발표한 종합대책 자료에 따르면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몰래 카메라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는 2012년 2400건에서 2016년 5185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지금도 모자, 안경, 시계, 반지 등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가장한 몰래카메라가 나오고 있다. 크기는 갈수록 작아지고 화질은 높아지는 등 몰래카메라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은 성범죄가 기술의 발달과 결합했다는 데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이자,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는지조차 인식하기 어렵다. 기술의 진보가 사회의 발전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여성에게는 폭력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 셈이다.

지난 2018년 발표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해외 주요국의 제도적 대응 실태조사'(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정책 연구개발 사업 연구결과)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바로 사이버 공간으로 인한 특징과 왜곡된 성 인식 및 성 문화로 인한 특징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기본적으로 성폭력 범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디지털 공간이 갖는 특수성이 결합돼 일반 범죄와는 다른 특성을 보인다.

인터넷은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일상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를 이용한 공연성과 전파성으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의 확장성'이라는 특징을 갖게 됐다. 여기에 불법 촬영된 영상물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P2P나 웹하드 업체 등 유통 플랫폼까지 생겨나며 불법 촬영물의 유포 속도와 범위는 오프라인 공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다.

이 같은 특징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인 '익명성' '비대면성'과 연계된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과 비대면성은 비교적 죄책감 없이 범죄를 행하게 만든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 또한 범죄를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 불법 음란물과 불법 촬영물 등을 유통해 부를 쌓은 한국미래기술 회장 양진호와 같이 영리를 취하는 범죄와 결합한다는 점과도 큰 관련성이 있다.

디지털 성범죄의 발생 과정 (사진=‘디지털 성범죄 해체하기’ 자료사진)

 

◇ 삭제해도 사라지지 않는 불법 촬영물

"사진이나 동영상 등이 인터넷 등에 유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제가 피해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제일 커요. (가해자가) 인터넷에 올리지 않기를 하느님께 기도해요."(한국여성변호사회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등 실태 및 판례 분석 중)

디지털 기록의 특성상 디지털 성범죄는 '반영구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피해가 지속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촬영물이 일단 유포되면 영구삭제가 거의 불가능해 피해 복구가 어렵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디지털 성범죄 관련 불법정보를 심의하고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나 게시판 관리자에게 정보 삭제를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콘텐츠에 URL(인터넷상에 올려진 자료들의 주소)이 수백 개가량 존재하고, 해외 사이트를 통하는 등 삭제 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위 리벤지 포르노나 몰카 등의 범죄가 증가하면서 온라인상에 남은 글, 사진, 동영상 등 디지털 흔적을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디지털 세탁소)'라는 직업까지 생겨났지만, 방대한 온라인 공간에 퍼진 불법 촬영물을 모두 삭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온라인 성폭력 피해실태 및 피해자 보호 방안'에 따르면 불법영상유포 피해자의 45.6%가 자살을 생각했고, 이 가운데 42.3%는 구체적인 자살 계획까지 세웠다. 19.2%는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

이처럼 영상이 한 번 유포되고 나면 완벽한 삭제가 거의 불가능해 인간존엄성과 인격이 훼손되고 생존까지 위협받는 등 불안과 공포가 심각해 디지털 성범죄를 '사회적 살인' '인격적 살인'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달개비 활동가는 "웹하드에서 피해자의 학교, 이름 등 신상정보를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라며 "P2P 등 개인 사업자들이 영상을 유포하는 것에 대해서 경찰이 제재해야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어디에 영상이 올라가 있는 거 같다고 경찰에 이야기해도, 수많은 웹사이트를 다 찾아가서 증거를 받을 수 없기에 수사가 어렵다는 태도를 많이 취한다. 그래서 피해자가 답답한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활동가는 "정책적으로 AI 시스템 도입 등을 이야기는 하고 있긴 한데, 그 전에 피해자가 겪는 피해의 지속성을 어떻게 중지시킬 것인지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범죄 산업구조 (사진=‘디지털 성범죄 해체하기’ 자료사진)

 

◇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소비하다

# 국노/국NO/국산맑음 : 국내에서 촬영된 촬영물이며, 노모자이크, 즉 모자이크 없이 성기 및 음모가 나온다는 의미.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임을 암시.

# ㄷㅊ : 불법도촬 촬영물을 암시하는 은어.

# 은꼴 : 은근히 꼴리는 사진의 약자. 주로 일반인 불법도촬 사진이 '은꼴사진'으로 소비됨.

디지털 성범죄 관련 실제 사용하는 은어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실제로 여성의 사진과 성적인 모욕성 글을 함께 게시하는 경우가 일상처럼 일어난다.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은 전시되고 소비되며 일종의 '오락거리'로 전락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17년에 발간한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1호'에 따르면 카메라 이용 촬영 피해자의 93.9%, 통신매체 이용 음란 피해자의 84.4%는 여성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불법 촬영'을 '국산 야동'으로 인식하는 등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왜곡된 성인식과 남성중심 성문화와 연결돼 있다. 이 같은 일그러진 남성문화 속에서 비난의 화살은 피해자, 특히 여성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왜곡이 발생한다.

특히 동의에 의한 촬영물 불법유포의 경우 동의에 의한 촬영물이기에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피해 여성에 대해 헤프다거나 평소의 행실이 가볍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이다. 성폭력 범죄의 실체나 가해행위의 불법성보다 피해자에 책임을 돌리고, 불법 촬영물이 갖는 음란성에 초점을 맞춘다.

"타인이 나의 나체를 알고 있을 거라는 불안함? 내가 물론 피해자긴 하지만 아….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어떤 벌거벗은 여성의 피해물이 돌아다닌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내가 비난받을 수 있겠다는 위협? 이런 것들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피해물이 있는 상황에서는, 아마 여성을 질타하거나 비난하기가 더 쉽겠죠."(한국여성변호사회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등 실태 및 판례 분석 중)

이 같은 왜곡된 성인식과 성문화로 인해 피해자에게 성폭력의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준다. 이러한 피해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은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신고하거나 대처하지 못하게 막는 심리적 요인이 된다.

DSO 이한기 활동가는 "불법 촬영 중에서도 특히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불법 촬영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지 인지하지 못하도록 사진을 자르는 경우도 많고, 신체 일부만 찍히는 건데 그게 뭐가 그렇게 큰일이냐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사실 불법 촬영 같은 경우는 본인들이 모르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또한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별거 아닌가 생각해서 잠깐 연락하다 사라지는 분들도 많다"라고 말했다.

민우회 달개비 활동가 역시 "피해자는 피해가 끝나지 않고 영상이 계속 돌아다닐 거라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라며 "피해는 끝날 것이고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고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 체계가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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