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 전 SBS 앵커 (사진=방송화면 캡처)
지하철에서 여성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SBS 김성준 전 앵커에 대한 신속한 사표 수리와 그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폐지 등 SBS가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매체비평우리스스로·문화연대·서울YMCA시청자시민운동본부·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인권센터·진보네트워크센터·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등 8개 언론·시민단체는 지난 9일 연대 성명을 내고 김성준 전 앵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사표를 그대로 수리한 SBS를 비판했다.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김성준 전 앵커를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전 앵커는 지난 3일 오후 11시 55분쯤 지하철 영등포구청역에서 여성의 하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김 전 앵커는 이를 목격한 시민들에 쫓겼고, 이내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SBS는 8일자로 김성준 전 앵커의 사표를 수리했고, 같은 날 김 전 앵커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김성준의 시사전망대'도 폐지했다. 또 메인뉴스인 '8뉴스'에서는 방송 말미에 "구성원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것에 대해 시청자 여러분께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린다고 간단히 보도했다.
일련의 신속한 처리에 대해 언론·시민단체는 "성폭력 사건을 비판적으로 보도해온 뉴스 앵커의 인식이 이 수준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라며 "이처럼 조직에서 메인뉴스 앵커, 보도본부장을 역임하고, 최근까지 자신의 이름을 건 시사프로그램 진행과 논설위원을 맡을 정도의 인물이 문제를 일으키자 바로 선 긋기를 하고 퇴사를 공식화하는 것은 말 그대로 '꼬리 자르기'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 단체는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언론보도의 신뢰를 깍아 내린 책임을 묻고, 응당한 징계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이는 그동안 성폭력사건 해결을 고민해왔던 SBS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SBS는 지난 2017년 성희롱·성폭력 징계 내규를 만들고, 2017년 12월부터 이를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언론·시민단체는 SBS가 '단순히 처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장 내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양성평등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해당 내규 제정 및 구조를 정비했다고 한 만큼 이번 김성준 전 앵커의 사건을 처리하는 SBS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언론·시민단체는 "우리는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가해자가 손쉽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회하며 살겠다'던 무의미한 사과문 뒤에 숨어 있던 조직과 공동체의 침묵을 봐왔다"라며 "SBS는 김성준의 사직서 수리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그간 성희롱·성폭력을 용인하거나 침묵해왔던 SBS는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나아가 언론계 내의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성평등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