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복장 규제와 학생 자율권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인천 한 중학교에서 강당에 여학생을 모아놓고 치마 길이를 점검한 사실이 알려져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일 교육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27일 하교 시각인 오후 3시 10분께 인천시 남동구 A 중학교는 2∼3학년 여학생들을 대강당으로 따로 불러 생활지도 교육을 했다.
이날 교육은 최근 개정한 학교생활 규정을 학생들에게 알리는 차원에서 시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바뀐 규정에는 교복 치마 길이(무릎 덮는 길이)도 포함됐다.
학생부장과 학년 부장을 포함한 교사 5명은 '치마 길이가 45㎝가 돼야 한다'며 학생들을 번호순대로 세운 뒤 1시간가량 30㎝ 자로 치마 길이를 재고 몇몇 학생은 혼을 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는 지난해에도 남녀 합반 교실에서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를 줄자로 잰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학교는 여학생의 경우 교복 치마를 구매하도록 하고 바지를 입고 싶은 학생은 추가로 사게 하고 있다.
이에 학생들과 일부 학부모 사이에서는 규제가 적정선을 넘어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A 중학교 재학생은 "반별로 여학생을 한 줄씩 세워놓고 치마가 짧아 보이는 아이들만 먼저 일으켜 자로 전체 길이를 재고 마지막에는 1명씩 다 치마 길이를 쟀다"며 "어떤 아이는 치마가 37㎝밖에 안 된다며 선생님이 화를 냈다"고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다른 재학생도 "친구가 선생님에게 '이게 정당한 것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선생님들조차 아니라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학생들은 똑같은 일이 어차피 반복될 것 같다는 심리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재학생 학부모는 "규정이 그렇다고 해서 당연히 치마 교복을 샀는데 이럴 거면 치마를 아예 교복으로 정하지 말지 왜 아이들 치마 길이까지 일일이 재면서 모욕을 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자연 갈색 머리인 학생들에게까지 검은색으로 염색해야 한다며 압박을 주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선을 넘는 두발·복장 규제가 학생 자율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계속 제기돼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가 지난해 10월 인천 내 고등학교 80곳 가운데 설문에 응답한 39곳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2%에 달하는 학교 32곳이 아침마다 교문에서 두발과 복장을 단속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학교 25곳은 규제에 따르지 않은 학생에게 벌점을 주는 등 관련 규정을 강제하고 있었다.
올해 인천에서는 한 중학교 학생이 '학교 측의 두발 규제와 휴대전화 강제 수거가 부당하다'는 내용의 진정을 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인천시교육청에 직접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규정을 개정하라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해 9월 '두발 자유화'를 추진하기로 하고 올해 1학기 내 학생생활규정(학칙)을 개정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A 중학교 교감은 "생활 규정을 개정하면서 그 내용을 전달하는 차원에서 학년별로 지도 교육을 한 것은 맞다"면서도 "자를 가지고 치마 길이를 재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한성찬 전교조 인천지부 정책실장은 "두발이나 복장 문제가 있으면 담임 교사를 통해 개별적으로 지도를 해야지 강제로 모아놓고 교육을 하는 것 자체가 전근대적인 방식"이라며 "각 학교의 생활 규정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고 분석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