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농업의 빈자리, 장애인 노동이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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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일본 '쿄마루엔 농장 방문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비슷한 업무 하는 것 목표
농복연계와 유니버셜 농업 도입해 비즈니스 모델 세워
근무역량에 따라 차등 급여…최저임금 제외 신청도

일본 나고야에서 남동쪽 2시간 거리의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쿄마루엔 농장. 이 곳은 장애인에 대한 복지와 농업이 결합된 '농복연계'로 유명하다.

농복연계는 일반적인 업무환경에서 작업하기 힘든 장애인들에게 보다 일하기 편한 환경을 제공해 업무효율을 높인 것을 말한다. 업무형태에 따라서 일반인과 장애인이 같은 업무를 하도록 만든 '유니버셜농업'과 비슷한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농촌의 고령화와 도시로 떠난 젊은층의 부재로 농촌의 노동력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상하면서 장애인 노동력이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쿄마루엔 농장의 스즈키 아츠시 대표는 장애인 고용을 넘어 이 노동력을 보다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유니버셜 농업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스즈키 아츠시 쿄마루엔 농장 대표(사진=최원철 기자)

 

◆ 고령화의 대안은 장애인 농복연계

아츠시 대표는 13대째 대를 물려온 농장을 운영중이다. 그는 장애인이 농업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농복연계에 대해 남다른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장애인들이 보다 더 편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고령노인들도 농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그래서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애인 고용을 넘어 '강한 농업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농업인구의 고령화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인 셈이다.

쿄마루엔 농장은 ▲매출의 99%를 차지하는 수경재배를 하는 수경부(水耕部), ▲토지를 경작하는 토경부(土耕部), ▲장애인들의 교육과 업무를 담당하는 심경부(心耕部)로 구성돼 있다.

매출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수경부가 농장의 핵심으로 보이지만 쿄마루엔 농장의 1번 부서는 심경부다.

아츠시 대표는 회사 내 어떤 부서가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그에 맞는 방향으로 업무가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심경부가 타부서에 명령을 할 때 장애인에 맞는 업무와 환경이 구축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장애인에게 맞춘 명령이 내려올 것이고 거기에 장애인들이 바뀌어야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회사의 이념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심경부->수경부·토경부' 구조는 장애인이 훈련을 통해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회사의 형태를 짜는 요체가 됐다.

◆ 장애인 근로자의 업무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아츠시 대표는 농복연계의 핵심이 업무의 단계화라고 말했다. 소수의 인원이 일을 한다는 것은 혼자서 여러단계의 일을 복합적으로 진행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이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누군가 "선반을 깨끗하게 해주세요"라고 지시하면 비장애 근로자의 경우 머릿속에서 각 단계를 생각해서 작업한다. 하지만 장애인 근로자의 경우 이런 추상적인 명령어를 해석하지 못한다. "선반을 깨끗해질때까지 씻어주세요" 보다는 "오른쪽 박스에서 쟁반을 꺼내 앞에 5번, 뒤에 5번 문지르고 측면을 손으로 두 번 쓸고 왼쪽 박스에 넣어주세요"가 올바른 명령이다. 장애인 근로자는 재량이 담긴 명령이 아닌 명확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명령어가 수반되어야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도 완전한 결과를 내기 힘들때가 있다. 그래서 아츠시 대표는 구체적인 작업지시를 위해서 업무를 보조하는 기계를 도입했다.

스즈키 아츠시 쿄마루엔 농장 대표가 보조 기계를 시연하는 모습.(사진=푸르메재단 제공)

 

이를 위해 자체 설계한 도면을 근처에 위치한 공방에 제작을 의뢰하면서 농장내 장애인들을 진료한 의사들의 소견까지 첨부했다.

한쪽팔을 사용하기 힘든 장애인을 위 해 다른쪽 팔로 조작이 가능하도록 설계했고, 허리와 다리 통증으로 일어서기 힘든 장애인을 위해 기계의 높낮이를 조절가능하게 만들었다.

아츠시 대표가 보조기계를 도입한 배경에는 복지전문가들이 만든 매뉴얼의 영향이 컸다. 과거 그는 수경재배 모종을 심을 스펀지에 얼마만큼의 수분이 스며들도록 해야할지 팔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에 의지하는 업무는 본인 이외의 다른 근로자가 할 수 없었다. 대다수 감각에 의존하는 업무를 하는 장인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이런데 있다. 장기간의 도제방식을 도입해 후임자가 제대로 할때까지 열정과 에너지를 들여 가르쳐야했다.

하지만 그는 복지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장인들이 누구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세세하게 쪼개고 여러가지 도구를 사용해서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아츠시 대표가 팔의 감각에 의존해 만들었던 스펀지 작업은 보조기계의 도움으로 장애인들도 아츠시 대표가 작업했던 결과와 비슷한 수치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쿄마루엔 농장에서 건풍작업중인 근로자들. 장애인 근로자와 비장애인 근로자가 같이 근무하고 있다.(사진=푸르메재단 제공)

 

◆ 장애인 근로자의 최저임금 제외 신청

쿄마루엔 농장의 장애인 고용비율은 약 30%로 유지되고 있다. 일본에도 우리와 같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있다. 일정 인원을 채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한다. 벌금은 우리보다 훨씬 과중하다. 이에따라 농장주는 장애인을 고용해 운영하는데, 문제는 임금이다. 업무효율성이 떨어지는 장애인에게 임금을 보전한다면 회사입장에서는 그 만큼 손해다.

따라서 쿄마루엔 농장에서는 장애인 급여는 능력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단순명료한 작업에 대한 급여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같다. 하지만 장애인은 보통 비장애인보다 작업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현재 고용중인 25명 중 7명은 최저임금 제외신청을 했다.

보통 이곳에서 근무하는 장애인들은 다른 회사의 장애인 채용전형에서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오는 편이다. 일반기업에 합격한 장애인이 보통 15만엔 정도를 받는다면 복지시설에서 머무는 장애인들은 1만5000엔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쿄마루엔 농장에서 근무하는 장애인들은 그 중간정도인 7만~10만엔 정도의 급료를 받는다.

농장에서는 처음 입사자가 비장애인의 50%정도의 작업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시즈오카현 기준 최저임금인 시급 1000엔(円)의 50%인 500엔으로 시작한다. 보통 이 장애인이 5년정도 근무하면 최저임금 제외신청을 안할 정도로 단련이 된다고 한다. 현재 쿄마루엔 농장에서 가장 많은 급료를 받는 장애인은 20만엔 정도를 받는다.

일본 정부도 우리처럼 일정규모 이상 장애인을 고용했을때 지원을 하지만 농장에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츠시 대표는 "농장에서 장애인 25명을 고용해 정부지원을 받는 금액이 연 500만엔 정도인데 직원들의 총 급료로 지급되는 액수가 연 3000만엔 정도다"고 말했다.

처음 들어온 장애인은 간단한 작업을 시작으로 농장의 여러가지 일에 도전하게 된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3개월, 정신장애인의 경우 7개월~1년 내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그 분야의 다음 단계를 도전한다.

쿄마루엔 농장의 놀라운점은 체계적인 업무관리에 있다. 일반적으로 직원이 입사하면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하지만 장애인 직원의 경우는 어떤일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장애인 직원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관심사와 행동패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아츠시 대표는 이러한 점에 주목했고 입사하는 모든 장애인 직원들과 면담하면서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파악하고 해당 위치에 배치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 다양한 일에 도전해 장애인 근로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확장시켰다.

쿄마루엔 농장 수경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회복지사 우치야마 미호씨와 장애인 근로자 코마타 하루카씨(사진=푸르메재단 제공)

 

◆ "일할 수 있음이 즐겁습니다"

쿄마루엔 농장 수경부에는 두명의 사회복지사가 근무하고 있다. 위에서 업무지시를 받아 장애인 근로자들에게 업무를 배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가운데 한명인 우치야마 미호씨(32)는 장애인 직원들에게 어떻게 일을 배분하는지에 대해 "의욕이 강하지만 자신이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며 "직접 체험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지를 판단하게 한다"고 답했다.

이어 "근로자들에게 제공된 업무 매뉴얼은 현장에서 실제로 도움이 된다"며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구분해 조절해주는 것은 빠른 업무적응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처음 들어왔을때 하루 3시간 동안 빗자루질만 할 수 있었던 장애인 직원이 8년후 건풍작업(작물사이에 미세하게 묻어있는 불순물 또는 벌레를 제거하는 작업)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를 빨리 배우고 적응했다"고도 했다.

장애인 근로자 코마타 하루카 씨(35)는 수경부에서 상자에 작물을 채워넣고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입사후 훈련을 통해 지금은 하루에 7시간 거의 풀타임을 근무중이다.

그녀는 출퇴근을 부모님과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30여분의 거리로 오갈땐 힘들지만 동료들과 같이 일하는게 즐겁다고도 했다.

서로를 어떻게 챙기느냐고 물었더니 매달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어 생일과 기념일을 서로 축하한다고 했다. 입사하고 훈련과 업무를 같이하며 생겨난 동료애가 남달라보였다.

쿄마루엔 농장 수경부에서 재배중인 작물(사진=푸르메재단 제공)

 

◆ 국내 도입의 핵심 포인트는 '근무환경'

가족단위 영농이 중심적인 한국에서 장애인 집약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쿄마루엔 농장의 사례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단순한 작업장인 아닌 중·장기 계획과 비전을 갖춘 기업으로 보인다.

아츠시 대표는 13대째 농장을 운영한 노하우를 기반으로 상당기간 준비하면서 농복연계를 실현하고 있다. 그 안에는 장인정신도 깃들여져 있다. 이익을 내면 농장이 더욱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재투자와 개량을 거듭한 흔적이 농장 곳곳에 스며 있다.

농장의 지속가능성을 따져보면 장애인이라는 노동력은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단순히 헐값의 노동력을 이용한다는 측면이 아닌 누구나 비슷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유니버셜 농업을 통한 업무의 평준화를 실현한 모델이야말로 인구 고령화에 대한 현명한 대응이 아닐까. 단기적인 업무 성과보다 장기적인 업무환경을 먼저 바라보는 쿄마루엔 농장의 롱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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