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영정(사진=김대중평화센터 제공)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소천했다. 향년 97세.
김대중평화센터는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를 보내 "이희호 이사장님이 10일 오후 11시 37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초등학교(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여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을 종종 듣고 자랐던 이 여사는 초등학교에서 상급여학교로 진학을 희망하는 유일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 여사는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상급 여학교 갈 사람 손들어보라'고 하니까, 손 든 사람이 나 하나뿐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어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램버스대와 스카릿 대학원에서 사회학 학사와 석사를 각각 취득한 뒤 국내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을 태동시켰다.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로 지식을 전파하는 한편 대한YMCA연합회 총무를 맡았고,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지내며 여성운동 불모지인 국내에서 여권신장에 기여했다.
1962년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로는 격랑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민주주의의 조용한 투사로 거듭나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을 돕는가 하면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내란음모 사건,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시절의 탄압 속에서 김 전 대통령 곁을 지켰다.
이 여사는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이 일어나기 석달 전인 1973년 5월 편지에서 "중앙정보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면서도 "꾸준히, 용감하게 싸워나가 달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네 번의 고배 끝에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에는 70세가 넘는 나이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맡았다.
이때 김 전 대통령이 여성부(현 여성가족부)를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사는 2008년 김 전 대통령 별세 이후에도 동교동계의 정신적 지주로 남았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매주 두 차례 김 전 대통령 묘소를 찾는 등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반자'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여사는 인권과 여성 문제에 기여한 공을 인정 받아 미국 교회여성연합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과 펄벅 인터내셔널로부터 '올해의 여성상' 등을 수상했다.
이 여사의 별세 소식에 유럽 순방길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안타까움과 애도의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서 "이희호 여사님께서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가셨다"며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고 했다.
이어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라며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 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과 민주평화당에서도 애도의 논평을 냈다.
가장 먼저 논평을 낸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여성 리더적인 면모는 김대중 대통령의 인생 반려자를 넘어 독재 속에서 국민과 역사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켜낸 정치적 동지로 자리하셨다"며 "정치적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김대중 대통령님의 삶에 이희호 여사님이 계셨던 것을 국민들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이 여사께서 소천하심으로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큰 별을 잃었다"며 "여성지도자로서 항상 역사의 중심에 서서 끊임없이 더 좋은 세상의 등불을 밝혔던 이 여사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퍼스트레이디였다"고 평가했다.
이 여사의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14일이고, 당일 오전 7시 고인이 장로를 지낸 신촌 창천교회에서 장례 예배가 있을 예정이다.
장지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이다.
이 여사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