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오전 첫 공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첫 공판에 나와 검찰의 공소사실과 공소장 기재, 신문 방식 등에 대해 날선 언어로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기소된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도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양 전 대법원장과 고·박 전 대법관에 대한 1심 첫 공판기일에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 상태지만 양복을 입고 출석해 약 25분간 검찰을 향해 작심 비판을 이어갔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관 생활을 42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 봤다"며 "80명이 넘는 검사가 동원돼 8개월 넘게 수사한 끝에 약 300페이지의 공소장을 창작했다. 한 편의 소설이다"라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용두사미도 이런 용두사미가 없다. 용을 그리려다가 뱀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며 "재판거래를 했다고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더니 실제 조사해서 개입 흔적이 없으니까 '문건을 작성했다'는 식으로 끝을 냈다"고 말했다.
검찰의 공소장에 복수를 지칭하는 '~등'이라는 표현이 남발하는 것도 문제 삼았다. '~등'은 둘 이상을 나타내는 불확정적인 단어인데 피고인들의 방어권은 물론 재판부도 심리에도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추측성 진술로 온 조서가 뒤덮여있다"며 "교묘한 질문을 통해 전혀 답변과는 다른 내용으로 기재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수사가 정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법관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 조서가 얼마나 경계해야할 신빙성이 적은 것인지 직접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선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꼬집었다.
박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보다는 다소 누그러진 톤이었지만 "많은 법관들이 훈계와 질책을 듣는 그 (검찰) 조서의 행간을 읽자니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라며 심경을 토로했다.
박 전 대법관은 "삼권분립의 이념이 있긴 하지만 사법 행정이 어느 정도까지 선비처럼 고고해야하는지, 검찰 말대로 사법행정이 법관을 옥죄려고 했는지, 정말로 법원의 이기주의 때문이었는지 이 재판을 통해 밝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고 전 대법관도 "이 재판을 통해 그간 잘못 알려진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져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재판부에 "선입견을 걷어낸 상태에서 신중하고 냉철하게 판단해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