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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이면서 유희적인 것이 '움직임의 사전'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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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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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감독주간 초청된 정다희 감독

 

따뜻한 느낌이 나는 초록색 들판을 바오밥 나무가 천천히 걷는다. 한 여성이 그 옆을 더 빠르게 걷고, 귀여운 강아지가 등장해 그 둘을 훨씬 더 빨리 지나간다. 그러다 뒤로 걷는 사람도 등장한다.

올해 제72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정다희(37) 감독의 애니메이션 '움직임의 사전' 내용이다. 최근 칸에서 만난 정 감독은 "움직임의 속도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제가 전에 '부동과 운동'이라는 논문을 쓰면서 움직임의 속도에 관해 연구한 적이 있었어요. '느린', '빠른', '뒤로 가는' 등 각 속도를 가진 캐릭터들이 있었는데, 그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애니메이션은 기준, 반응, 역할, 가속, 인식이라는 다섯 개 챕터로 움직임의 속성을 탐구한다. 각 챕터에서는 등장인물들이 한 가지 동작을 다 함께한다. 걷고, 웃고, 일하고, 달리고, 멈춘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공간이 지구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까지 등장한다.

"앞부분에서는 다양한 속도를 가진 움직이는 존재들이 다 함께 살고 있었잖아요. 차이를 느끼고, 공감도 잘 안 되고, 불편하고요. 이런 우리가 결국에는 다 지구에 살고 있다는 것이죠. 또 멈추는 것처럼 보여도 지구가 돌고 있으니까 움직이고 있는 것이죠. 카메라를 든 사람은 이전 챕터에서 뒤로 가는 사람이었어요. 이처럼 항상 반대쪽에 있는 사람,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의 의미를 담았죠."

그는 "전작 '빈방'과는 다른 작업을 해보고 싶어 '움직임의 사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내면을 보는 것을 그만해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 당시 사람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봤거든요. 사회적으로 사람들 사이 이견이 서로 좁혀지지 않고서 미워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잖아요. 누군가는 저에게 '넌 너무 빠르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넌 너무 느려'라고 하더라고요. 속도 자체가 상대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정 감독은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ENSAD)에서 애니메이션 석사학위를 받았다. 칸 영화제 초청은 지난 2014년 '의자 위의 남자'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움직임의 사전'은 칸 영화제 외에도 애니메이션계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했다.

"혼자서 제작하고 감독하고 배급까지 했는데 칸에서 다시 초청해줘서 감사하죠. 안시 페스티벌 디렉터가 제 작품에 대해 '철학적이면서 유희적'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어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야기 구조 등이 독특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초청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정 감독은 목탄과 연필을 이용해 밑그림을 그리고 컴퓨터로 채색한다. 하루에 2초를 만든다. 10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에는 최소 10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움직임의 사전'은 2년이 걸렸다.

정 감독은 "작업은 재밌는 동시에 힘들고 어렵다"며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니까 어렵고 또 재밌다"고 말했다.

현재는 창문을 주제로 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작업 중이고, 장편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조르주 슈비츠게벨이라는 감독님이 계셨거든요. 70세이신데도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계셔서 존경스러웠어요. 40년 동안 단편만 만드셨고요. 그분처럼 평생 예술가와 작가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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