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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핵심협약 비준, 정부는 왜 조항 하나는 제외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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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논의 실패한 채 비준 추진 미루면 "EU 제재 우려된다"
국내 형벌체계와 배치되는 105호 협약, 당장 비준 어려워
"전교조 문제는 관련 법 개정되야 해결 가능" 보수적 해석 유지

 

NOCUTBIZ
정부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한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준비에 실패하자,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겠다며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다만 논란이 되고 있는 전교조 법외노조화 여부는 "관련 법 개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고, '선비준 후입법'이 아닌 '동시추진'이라고 강조하며 비준 책임을 피해갔다.

◇이재갑 "EU, 전문가 패널 회부 거의 결정해…제재 가능성도 있어"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22일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아직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결사의 자유(제87호·제98호)'와 '강제노동 금지(제29호·제105호)' 등 4개 핵심협약 가운데 제105호 협약(강제노동 철폐협약)을 제외한 나머지 3개 협약에 대해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정부가 입장을 밝힌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사회적 대화'를 통한 ILO 협약 비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부터 ILO 협약 비준 문제를 논의했던 경사노위가 노사 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채 지난 20일 논의를 종료했기 때문에 이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게 됐다.

또 이처럼 경사노위를 통한 비준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EU(유럽연합)의 압박이 거세질 위기에 놓였다.

EU는 한국이 2009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ILO 협약 비준 의무조항을 어겼다며 분쟁 해결 절차에 돌입했다.

EU는 지난 달 9일까지 한국에서 ILO 협약 비준을 준비하는 성과가 충분하지 않다면 분쟁 해결 절차의 강도를 높여 전문가패널에 회부하겠다고 경고해왔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EU가) 내부적으로는 (한국을) 전문가 패널로 회부하는 것으로 거의 결정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 정부가 어떤 공식적인 계획을 갖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EU가 실제로 무역제재에 돌입할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한-EU FTA 노동의 장에 무역제재의 규정은 없다"면서도 "EU가 최근에 무역과 사회적 기준에 대한 연계를 굉장히 강화하고 있어 우려하는 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장관은 이 달 초 EU가 중국에 대해 철강 반덤핑 관세 부과기간을 연장한 사례를 제시했다.

당시 EU는 중국이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노사 단체 조직권을 침해하해 시장기반 임금 설정 체계를 발전하지 않은 바람에 덤핑이 일어났다고 지적하면서 제재조치를 연장했다는 주장이다.

 

◇105호 협약은 왜 빠졌나? "국보법·집시법 등 현행 형벌체계와 상충"

그럼에도 4개 협약 가운데 유독 제105호 협약(강제노동 철폐협약)은 비준동의안에서 제외하기로 한 이유로는 "우리나라 형벌체계,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105호 협약에서는 ①정치적 견해 표명 등에 대한 제재, ②경제개발을 위한 노동 동원, ③노동규율 수단, ④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 ⑤인종·사회·민족 또는 종교적 차별대우 수단 등 총 5가지 형태의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치적 견해 표명에 대한 강제노동을 금지한다면 노역행위가 부과되는 징역형 대신 금고형으로 대체해야 한다.

현재 한국 형벌체계에는 과실범만 금고형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이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이를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 협약 비준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반면 '모든 형태의 처벌의 위협 하에서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노동'을 금지하는 제29호 협약(강제노동협약)과 대체복무 중 하나인 보충역은 전면 배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9호 협약은 전적으로 순수한 군사적 성격의 작업은 강제노동의 예외로 보고 있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까지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줄곧 분단 현실에 따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의무 군복무'로 인해 29호 협약을 비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이 협약이 금지하고 있는 사항에 해당되지 않으려면 대체복무 대상자가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체복무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다면 협약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주요 핵심협약을 한번에 비준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며 추진 의지를 보인다면 ILO 역시 위와 같은 29호 협약에 대한 정부 해석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법외노조' 전교조, 협약 비준해도 관련 법 개정되야 해결 가능"

ILO 핵심협약 비준 여부를 놓고 논란의 중심에 선 전교조 법외노조화 문제에 대해서는 협약 비준에 관계없이 관련 법까지 개정돼야 해결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장관은 "교원노조법이 개정돼야만 전교조 법외노조화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만약 국회에서 교원노조법도 개정한다면 그 개정된 법률에 따라서 (법외노조 취소를)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이 개정돼도 자동으로 (노조 지위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개정된 법에 따라 새로운 설립신고 절차를 밟아 지위를 회복하는 절차를 밟아야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교조는 이날 논평을 내고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진정성을 보이려면 가시적 조치를 동반해야 한다"며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취소’와 법외노조화 근거조항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제 9조 2항의 폐기’를 요구했다.

이어 "이는 청와대가 결단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는 행정조치"라며 "사법부와 입법부에 법외노조 해결의 책임을 미루며 정부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행정조치조차 하지 않는다면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선비준 후입법 입장 변화? "선비준 사실상 불가능해…'동시추진'하겠다"

이날 이 장관은 노동계가 요구하는 이른바 선(先)비준 후(後)입법'으로 입장이 돌아서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정부는 지금도 선비준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선비준은 우리나라 헌법체계상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법개정안과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같이 가서 같이 논의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동안 관련 입법에 앞서 선비준한 경우는 단순하고 논란이 없는 사항이거나, 이미 국회에서 입법개정을 논의하고 있는 경우일 뿐이라는 것이 이 장관의 주장이다.

반면 ILO 핵심협약 비준처럼 산업현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다양한 법 개정을 수반하는 사례는 비준동의안 자체에 법 개정을 위한 검토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민주노총 등이 주장해온 국회 동의를 거친 선비준 후입법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정부가 국회에 ILO 협약 비준 부담을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협약 비준이 늦어지거나 경영계 요구가 반영된 채 비준된다면 노동계가, 기존 경사노위 공익위원안 수준으로 협약 비준이 성사된다면 경영계가 거세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때 정부가 앞장서서 비준안을 제시하는 대신 입법 과정과 '동시추진'하는 모양새를 취하면 비난의 화살을 국회와 나눠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 장관은 비준동의안이 국회 통과가 늦어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정기국회에 제출해서 국회에 논의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며 "국회가 논의를 시작하면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드리겠다. 그래서 적절하게 심의할 수 있도록 저희는 할 일을 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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