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웹툰 '복학왕'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방송인이자 웹툰 작가인 기안84가 자신의 웹툰에서 청각장애인을 희화화한 데 이어 외국인 노동자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작품을 재밌게 만들려고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했던 것 같다"라고 해명한 후에도 차별의 언어가 이어졌다.
'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표현은 행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웹툰과 같은 대중문화는 독자의 감수성이나 사고방식, 행동양식 등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혐오와 차별 표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에 잇따른 혐오와 차별의 발언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또 다른 대중문화인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사례를 들어 살펴봤다.
◇ 인종 차별·폄하의 언어_MBN '뉴스와이드'기안84는 지난 14일 연재한 '복학왕 249화 세미나2' 편에서 생산직에 근무하는 주인공과 함께 세미나에 참석하는 외국인노동자를 등장시켰다. 주인공은 허름한 숙소를 보고 '좋은 방 좀 잡아 주지'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는 "세미나 온 게 어디냐"며 "우리 회사 최고"라고 반응한다. 또 웹툰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캅"이란 표현을 반복하는데, '캅'은 태국어에서 쓰이는 말로 태국인의 말투를 희화화하며 비하 논란이 일고 있다.
편견은 혐오표현을 만들고, 혐오표현은 차별을 만든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다음은 방송에서 외국인에 대한 혐오적 표현을 사용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원회(2018년 4월 12일 제19차 임시회의)에서 다뤄진 내용이다.
MBN '뉴스와이드'(2017년 12월 15일 방송분)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성과에 대해 대담하는 과정에서 출연자가 중국에 대해 '떼놈'이라는 비하적인 표현을 사용해 심의에 오른 바 있다.
해당 방송에 적용된 조항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1조(문화의 다양성 존중)와 제51조(방송언어)다.
제31조(문화의 다양성 존중)에 따르면 방송은 인류보편적 가치와 인류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여 특정 인종, 민족, 국가 등에 관한 편견을 조장하여서는 안 되며, 특히 타민족이나 타문화 등을 모독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
해당 방송분은 진행자가 중국에 대한 비속어 사용을 지적하며 제지해 출연자가 사과했다는 점을 들어 '문제없음'을 받았다. 그러나 방심위 위원들은 인종 차별적 발언에 대해 방송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윤정주 위원은 "언어라는 것이 사회문화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방송에서 사용하기에 적절치 않은 단어이지만, 진행자가 바로 '비속어다. 취소하겠다'라고 이야기를 했고 출연자도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라며 "이런 점에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단은 '문제없음'으로 하되 (오늘 나온) 이런 의견들을 꼭 붙여서 (방송사에) 보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허미숙 소위원장은 "가령 우리 민족을 폄훼하는 단어 중에 '조○○'이라고 하는 게 있다. 그런 단어를 일본 방송에서 썼다고 하면 우리가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항의할 것이다. 또 미국인을 폄하하는 단어 '양○'도 마찬가지"라며 "이것이 욕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중국인을 폄하하는 뜻이 분명하기에 충분히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서 주의 환기를 겸해서 '문제없음'으로 의결하겠다"라고 설명했다.
tvN '막돼먹은 영애씨 12'(2013년 11월 14일 방송분)는 18회 방송에서 이영애와 함께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본 두 청년이 "저 시꺼먼 외노자(외국인 노동자) 봐, 한국말 X나 잘한다"라고 언급해 심의대상에 올라 법정제재를 받은 바 있다.
기안84 웹툰 '복학왕' (사진=네이버 웹툰 캡처)
◇ 장애인 희화화_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기안84는 지난 7일 게시된 '복학왕'의 284화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여성 캐릭터가 닭꼬치를 사먹는 장면에서 "닭꼬치 하나 얼마예요?"라는 대사를 "닥꼬티 하나 얼마에오?" 등으로 하는 등 청각장애인의 발음을 대사 등에 사용했다.
이 같은 웹툰이 논란이 된 것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적했듯이 해당 캐릭터의 모습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되는 사항이며,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고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은 지난 2018년 7월 7일 방송분에서 지적장애인 영화 캐릭터를 희화화해 심의에 올라 행정지도인 '권고' 조치를 받았다.
적용된 조항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1조(인권 보호) 제3항으로 ‘방송은 정신적․신체적 차이 또는 학력․재력․출신지역․방언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서는 안 되며,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당시 배우 신현준이 과거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기봉이 인사를 해달라는 요청에 신현준이 해당 캐릭터 재연을 위해 연습을 하거나 영화 속 캐릭터처럼 인사를 하자 진행자들이 즐거워하며 웃는 모습을 방송했다.
해당 방송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지난 2018년 10월 25일 심의를 열었다.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면 방심위원들은 해당 방송 속 장애인 희화화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윤정주 위원은 "그동안 방송에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개그 소재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한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장애인인데 누군가 나와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그것을 흉내 내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웃는다"라며 "그러면 당사자인 사람들은 그것이 같이 웃을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을까"라고 지적했다.
윤 위원은 장애인 희화화가 웃긴 일도 아니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해서 웃자고 하는 것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위원은 "같은 프로그램에서 한번 정말 크게 문제가 되었던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바로 몇 주 만에 방송이 재개된 상황에서도 이렇게 안이하게 방송을 제작했던 제작진에 대해서 크게 실망을 했다"라며 "교육을 그저 교육을 받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그것을 현장에 어떻게 적용을 시킬까에 대한 것들을 제작자가 굉장히 많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 위원은 "이 방송이 나간 직후에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에서는 지적장애 아동을 키우시는 부모님들이 굉장히 많은 피눈물을 흘리는 그런 블로그의 글들을 봤다"라며 "더 이상 방송에서 장애인을 이렇게 웃음의 소재로, 웃음거리로. 비장애인 즐겁자고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삼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심영섭 위원 역시 "여기에 출연하는 분들이 대부분 연예인이다. 사실은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생활하는 분들이고, 그분들은 어쨌든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인권 1.0세대에서 2.0이라는, 당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율권으로 많이 넘어가는 추세 속에 개개인의 인권을 중요시하고 있다"라며 "그런 부분을 제작진이 잡아줘야 되지 않을까? 단순히 교육받는 것을 넘어서서 제작 준칙이나 제작 가이드 안에 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희화화가 가진 혐오와 차별의 표현을 우려한 국가인권위원회는 MBC 대표이사에게 "발달장애인의 언행을 재연하며 우스개 소재로 삼아 불특정 다수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할 우려가 있으며, 당사자 및 관련자에게 불쾌감을 유발한 것은 장애인 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 권리에 관한 협약 취지에 반한다"라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차별적 표현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라고 의견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