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2년] '공기처럼 다가온 남북 평화' 그리고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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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평양시민들 환호
무리한 남북관계 설정이라는 비판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돼
남북관계가 북미관계 추동하는 선순환 구조 성과
남북간 우발적 충돌가능성 제거…GP철수, DMZ 개방
하노이 결렬 이후 위기…北 무력시위 문 대통령에게 부담
올해 안에 北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켜 비핵화 협상 마무리할 지 주목

10일이면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이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끈 '평범한' 촛불시민들의 호응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반 박근혜 정부의 캐비닛 문건 수사와 적폐청산, 세월호 진상규명, 대통령 개헌안 발표, 권력기관 개편 등 각종 개혁 정책을 이끌며 순항했다. 특히 출범 1주년이었던 지난해 5월에는 '한반도 비핵화' 합의를 담은 4·27 판문점 선언을 이끌어내며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가 80%에 육박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나라다운 나라 건설'을 기치로 첫발을 내딛었던 문재인 정부는 이제 집권 중반기에 들어서며 냉혹한 칼날 위에 섰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운용정책은 뚜렷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적폐청산에 대한 피로감 호소도 부담이다. 당장이라도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없어질 듯 했던 비핵화 협상은 하노이 북미회담 이후 안갯속을 걷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얼마나 전진했을까? CBS노컷뉴스는 과거 정부와 달랐던 남북관계 개선 흐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J노믹스로 대표되는 경제정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 등을 2부작으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① '공기처럼 다가온 남북 평화' 그리고 변곡점
② 체감 싸늘한 J노믹스…경제 성과 절실한 시점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 남북정상간 신뢰로 거짓말처럼 성큼 다가온 평화

"평양 시민 여러분,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지난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그림을 내딛자고 제안합니다."(2018년 9월 19일 5·1 경기장 15만 평양시민을 대상으로 한 문재인 대통령 연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만 2년을 맞아 가장 도드라진 변화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관계 재설정이다.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거래 등 경제 체질 변화 시도와 권력기관 재편 등 각종 개혁입법, 그리고 새로운 여야관계 설정을 위한 여야정 상설협의체 신설 등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의 변화 중 한반도 지형변화가 가장 눈에 띄는 이유는 '공기처럼 다가온 평화'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 동안 반복된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북한의 무력 도발은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인 2017년 말까지 이어졌지만, 한반도 긴장완화라는 대명제 실현을 위한 문 대통령의 고단한 발걸음은 끝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선언을 이끌어 냈다.

2017년 7월 독일 쾨르버 재단에서 문 대통령이 북에 보낸 '신베를린 선언'(평창올림픽 참가, 이산가족 상봉, 남북 적대행위 중단, 남북대화와 접촉 재개)은 보수 진영으로부터 무리한 남북관계 설정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듬해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평화의 상징이 된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전세계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6·15, 10·4에 이어 남북정상회담 최고의 백미로 꼽힌다.

특히 북한 최고지도자가 판문점 선언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담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사상 처음으로 공식화됐다. 남북 정상간 신뢰는 5개월 뒤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김 위원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하고,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다는 전제 하에 북한 핵개발 핵심인 영변 핵시설을 영구폐기할 용의가 있음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이 평양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들을 상대로 '70년 적대 청산'과 '완전한 비핵화'를 자신있게 설파한 것도 남북 정상간 신뢰를 기초로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9·19 남북정상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무슨 말을 할지를 김 위원장과 북측이 사전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며 "북한으로서는 체제 특성상 굉장한 위험부담을 감수했고, 이는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사진=연합뉴스)

 

◇ 남북관계-북미관계가 밀고 당기고…선순환 구조 정착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상호신뢰는 미국을 매개로 한 한반도 지형변화에 있어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남북관계 개선 흐름이 북미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과 달리, 미국 내부 정치에서 위기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전략적 인내'를 비판하며 북미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지 한 달 보름 남짓 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렸고, 서로를 적대시하던 북미 정상은 사상 처음으로 두 손을 맞잡았다. 140분이 넘는 단독·확대정상회담을 마친 북미 정상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전쟁 포로 유골의 즉각 송환과 실종자 유해 복구' 등 4개의 신뢰 기둥(Four pillars)를 세웠다.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관계 개선을 이끌고 또 북미관계 재설정이 남북관계 개선을 추동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확하게 그려진 셈이다.

◇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만큼 중요했던 되돌릴 수 없는 남북관계 개선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힘썼다.

동해·서해 통신선이 모두 끊겨 동해상에 표류하던 북한 주민을 북송하기 위해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손마이크를 잡고 북송 의사를 알렸던 웃지 못할 헤프닝이 벌어졌던 전임 정부 때와는 달리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소됐고, 군사분계선 내 남북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현저히 줄었다. 이산가족상봉 행사와 유엔 대북 제재 해제에 대비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이 열린 것도 남북관계 개선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드는 중요 조치였다.

특히 9·19 남북 군사합의서 채택 이후 긴장 완화 조치가 현실화되면서 군사분계선 주변 사격 훈련이 중단되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GP는 완전히 철수됐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남북 군인들이 GP 철수 현장에서 만나 웃으면서 담배를 나눠피는 등 서로에 대한 적개심은 눈녹듯 사라졌다. 비무장지대(DMZ) 남북공동유해발굴 지역 내 지뢰 제거 작업을 거쳐 4·27 남북 정상회담 1주년을 맞은 지난달 DMZ 평화의 길이 마침내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됐다.

 

◇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후 찾아온 교착국면…북 대응이 관건

하지만 지난 1년간 '공기처럼 찾아왔던 남북 평화'가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기점으로 중요 변곡점을 맞았다.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대북제재 해제라는 미국식 '빅딜'과 일부 단계적 비핵화와 제재완화라는 북한식 '스몰딜'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하노이회담이 결렬됐고, 이후 결렬 책임을 서로에게 덧씌우는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북미 정상 모두 서로에 대한 원색적 비난은 자제하고 있지만, 과거 "늙은 미치광이", "꼬마 로켓맨" 등으로 말폭탄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는 점에서 북미 비핵화 대화 교착상태가 장기화되면 상황은 2017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북미 교착상태를 풀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북한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급기야 북한은 미사일로 추정되는 신형 전술유도무기를 발사하는 등 무력시위 양상을 보이면서 남북정상간 그간의 신뢰 행보가 위기를 맞았다. 특히 김 위원장이 지난달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한 정부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결국 문 대통령에게는 현재의 경색 국면을 뒤짚고 지난 1년간 숨가쁘게 달려왔던 남북·북미관계 개선 흐름을 이어가야하는 또 하나의 중책이 맡겨졌다. 지난해 5월 1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 의사를 밝혔을 때, 비밀리에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북미 정상간 첫 교두보를 만든 촉진자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밤(한국시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비핵화 대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조기에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는 방안을 심도있게 논의한 근저에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그림자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걷어내야 한다는 절박함도 묻어난다.

당장의 문제는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복귀시킬 수 있는 지렛대 확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의 국면이 계속 지속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도 올해 말까지 비핵화 협상시한을 설정한 만큼 4차 남북정상회담 제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할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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