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운동을 언급할 때 전남도청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바로 '녹두서점'이다.
15평 남짓의 조그마한 책방은 5·18 당시 고립된 시민들을 위해 수 많은 대자보와 전달을 만들며 정보를 전달해준 상황실이자, 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간이 식당이었다.
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지도부가 항쟁 방향을 두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간 회의실이기도 했다.
최근 녹두서점 가족들은 1980년 오월에 대한 증언이자 살아남은 자들이 이어간 또 다른 항쟁에 대한 기록을 '녹두서점의 오월(도서출판 한겨레 출판)'이란 책에 담았다.
녹두서점 가족인 김상윤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과 부인 정현애 오월 어머니집 이사장, 남동생 김상집 5·18 구속부상자회 광주지부장이 필자로 참여했다.
녹두서점의 세 가족은 이 책을 통해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경험한 5·18항쟁을 이야기한다.
세 가족은 5·18항쟁 열흘 동안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항쟁의 전 과정과 에피소드, 그 속에 담긴 항쟁지도부와 기층민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그려 나간다.
이 책은 평범했던 시민들이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항쟁에 나서게 됐는지 보여준다.
책 곳곳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의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생필품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매점매석이 혼란을 가중시킬 것을 경계하며 판매량을 조절하는 상인들, 부패하는 시신의 악취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죽는 자들을 돌보는 사람들, 최루탄으로 고통받는 사위대를 위해 대야에 물을 길어오는 유흥업소 여성들, 학생들을 향한 계엄군의 무차별적 폭력에 참지 못하고 항의하는 노인들.
녹두서점의 세 가족이 항쟁의 여러 변곡점마다 느꼈던 감정들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이 책은 5·18항쟁을 잔혹한 계엄군의 진압장면과 박제화된 사건 기록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월의 거리에 있던 시민들이 자신이 마주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했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왜 그렇게 느꼈는지 서술하며 일상의 고귀함을 지키려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부활시킨다.
소설가 황석영은 추천사를 통해 "녹두서점의 가족들이 피와 눈물로 얼룩진 '광주 5월'의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평화로운 삶을 소망하던 평범한 시민들이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투쟁에 나서게 됐는지 소상히 밝혀주는 기록이자, 5·18 항쟁을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다. 이들 가족이 겪었던 시대의 깊은 상흔도 이 글을 기록함으로써 치유되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고 전했다.
저자들은 말한다. "광주시민들은 여전히 마음에 큰 병을 진 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39년동안 침묵을 깨고 이 책을 집필한 이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