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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받아쓰기'…"혐오와 차별에 대한 암묵적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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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 혐오와 차별 이대로 괜찮을까? ①]
'언론은 왜 혐오와 갈등 기사를 쓰는가'
"혐오기사…독자는 소비 아닌 '비판'해야 한다"
"모든 시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언론을 갖는다"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소재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 '홀로코스트'는 혐오표현 단계에서 가장 상위에 위치한다. 혐오표현이 누적되어 증오범죄가 탄생하고, 집단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 (사진=UPI코리아 제공)

 

"내 옆에는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 / "'시체 장사'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 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 / "여성은 매일 씻고 다듬고 피트니스도 해서 자신을 다듬어야 한다" / "장애인이 무슨 애를 키워"

이와 같은 발언이 대표적인 혐오와 차별의 '표현'이다. 싫어하는 생각은 '혐오'지만 그것을 공표하면 '혐오표현'이 된다. '성희롱'의 개념을 처음 정립한 법여성학자 캐서린 맥키넌 미국 미시간대 법학교수는 "Speech acts", 다시 말해 '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혐오와 차별의 표현은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의미다. 왜 우리가 '혐오표현'에 주목해야 하며 언론의 '혐오표현'에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 중요성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24일 서울 마포구 나라살림연구소 강당에서 열린 '미디어 속 혐오와 차별 이대로 괜찮을까?'의 첫 번째 강좌 '언론은 왜 혐오와 갈등 기사를 쓰는가'에서는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의 위험성을 짚었다.

글 싣는 순서
① 언론은 왜 혐오와 갈등 기사를 쓰는가
② 미디어 속 혐오-예방과 규제라는 두 개의 날개
③ 온라인 모바일 게임 안에서의 언어-혐오표현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24일 서울 마포구 나라살림연구소 강당에서 열린 '미디어 속 혐오와 차별 이대로 괜찮을까?'의 첫 번째 강좌 '언론은 왜 혐오와 갈등 기사를 쓰는가'에서 이선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 '혐오표현'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인가

강연자로 나선 이선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소수자와 혐오표현의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소수자'란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 왔고 현재도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는 집단으로서, 성·인종·민족·성적지향·장애 등 고유의 특성을 함께 갖고 있는 집단이다. 장애인, 여성, 이주민, 북한이탈주민, 노인, 청소년, 성적소수자 등이 모두 '소수자'다. 소수자는 소수자라는 이유로 멸시나 모욕,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 바로 '혐오표현'이다.

이선민 연구원은 "'혐오표현'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건 '소수자'다. 소수자는 과거에도 차별받고, 현재도 사회에서 불평등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표현은 우리의 환경을 구성하게 된다. 표현된 것이 누적되고 진실이 되는 경우가 있다"라며 혐오표현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단순히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말을 한 번 하게 되고 반복되면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것으로 고착화된다"라며 "이런 고착화는 관용과 존엄을 지키는 환경을 망가뜨릴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모든 것의 기초에는 '편견'이 있다. 편견에서 시작한 혐오표현은 차별행위로 나타나고, 이는 '강남역 살인사건'과 같은 증오범죄로 발전하고 최종적으로는 집단학살까지 나아갈 수 있다.

나치가 벌인 홀로코스트, 제주 4·3사건,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어떤 인종·종교·정치·민족 집단을 고의적·조직적으로 말살하는 것)도 혐오차별로 인해 생겨난 범죄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여성 정치인을 '안철수의 여자', '문재인의 여자' 등으로 표현한 TV조선 '이슈 해결사 박대장'(2016년 1월 14일 방송)에 대한 심의를 진행한 결과 해당 방송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양성평등) 제1항 '방송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하며, 성차별적인 표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와 동조 제2항 '방송은 특정 성(性)을 부정적,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해서는 아니 된다'를 위반했다며 전원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했다. (사진=방송화면 캡처)

 

◇ 언론의 혐오기사는 왜 위험할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혐오표현 중 언론을 통해 나타나는 혐오 표현은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언론이 갖는 공적인 지위와 사람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영화 '청년경찰'은 중국 동포와 그들의 거주지역인 대림동을 범죄자 소굴처럼 묘사해 큰 반발을 샀다. 우리 사회에서 중국 동포에 대한 이미지가 열악한 노동과 폭력으로 각인된 상황에서, 영화가 부정적인 이미지와 편견을 더 강화할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연구원은 "감독이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말한다 해서 면책될 수 없다"라며 "공적으로 시민을 대변하는 미디어나 언론이라면 그런 것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성찰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미디어가 표현하는 환경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미디어가 표현하는 것이 누적되면 우리는 그것을 진실이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편견이 자리잡을 수 없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러한 역할의 중심에 있는 게 '언론'이다. 그러나 언론은 사회에서 나오는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보다 그대로 '받아쓰기'를 하면서 혐오와 차별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연구원은 "누군가의 발언이 SNS를 통해 퍼지면 언론은 분석하지 않고 대부분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이건 동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며 "언론은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지적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최근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씨가 마약 투약 혐의 소식을 전하며 "몰몬교 신자가 마약까지, 로버트 할리 부끄러운 민낯"(뉴시스, 2019년 4월 9일자 보도)과 같이 불필요한 정보까지 전달하며 2차 가해를 하는 것은 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언론의 태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해당 보도는 누리꾼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결국 삭제됐다.

난민 관련 보도를 하며 "재앙이 오고 있다"는 난민 수용 반대 입장을 그대로 옮기거나,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을 '가짜 난민'으로 표현하는 것도 언론의 소수자 혐오보도 사례라 할 수 있다.

살인 피해자에게 '○○女'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SBS '모닝와이드'(2016년 1월 18일 방송)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한 바 있다. (사진=방송화면 캡처)

 

여성을 향한 우리 사회의 혐오는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이른바 '○○女'가 단적인 예다. 된장녀, 김치녀, 고소녀, 무죄녀, 유죄녀 등 다양한 '○○女'가 존재한다. 그리고 언론은 아무렇지 않게 기사 제목에 '○○女'를 넣는다. 심지어 성폭행을 당하거나 살인 피해자에게도 언론은 '노래방 살인녀', '화장실녀' 등 '○○女'를 아무렇지 않게 붙인다.

언뜻 보면 그럴싸한 '개념녀'라는 표현 안에도 '여성혐오'와 차별이 담겨 있다. 이 연구원은 "'개념녀'라는 말이 얼핏 보면 칭찬 같지만, 원래 여자는 개념이 없으니 개념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로 구분하겠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소수자 담론에 대한 혐오뿐 아니라, 혐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에는 여성혐오 문제를 '여혐 vs 남혐'과 같이 남녀 성 대결로 변질시킬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언론은 있어 보이고 논리적으로 보이면서 효과적으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라며 "표현이 문제가 아니라 표현의 맥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전체 맥락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혐오표현 단계(홍성수, 2018 일부 수정)

 

◇ 비판적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이 혐오를 혐오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혐오기사가 쏟아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혐오표현 예방·가이드라인 마련 실태조사(2018)' 결과 기자의 93.2%가 혐오표현 판단 기준이나 처리 절차 관련 규정이 없다거나 잘 모른다고 답했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함께 마련한 '인권보도준칙'에는 △민주주의와 인권 △인격권 △장애인 인권 △성 평등 △이주민과 외국인 인권 △노인 인권 △어린이와 청소년 인권 △성적 소수자 인권 △북한이탈주민 및 북한 주민 인권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 연구원은 언론이 해당 준칙만 잘 지켜도 '혐오기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기사가 생산되는 또 다른 원인은 언론의 주요 고객인 독자의 '관심'이다. 뉴스란 생산자와 이용자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구성하는 집단적 산물이라고 한다. 뉴스가 독자를 부르고, 독자가 뉴스를 만들어내는 상호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언론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있지만, 독자가 원하는 걸 쓰는 게 있다. 아무리 좋은 기사라도 독자가 안 보면 상품으로서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갈등과 혐오 요소를 상당 부분 담고 있는 이른바 '일탈적인 뉴스'에 많은 독자가 관심을 갖는다. 독자의 관심은 기사에 반영된다. 혐오기사를 생산하는 언론도 문제지만 독자가 선호하는 걸 언론사로서는 무시할 수 없다. 뉴스 이용자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모든 시민은 자기 수준만큼의 언론을 갖는다"라는 말처럼 시민이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에 따라 언론의 태도도 달라진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법적으로 언론을 제재하는 건 쉽지 않다. 실질적으로 혐오표현이 담긴 기사가 생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민의 문제제기와 비판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사진=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 캡처)

 

지난 2018년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는 성별표기 방식 개선안을 통해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표기하던 방식을 버리고 기사 작성시 별도의 성별 표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 연합뉴스는 "'남성이 표준'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시민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언론의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 연구원은 "사람들이 나 하나쯤이야 하고 갈등, 혐오, 선정적 기사를 클릭하는데 나 하나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클릭하면 언론사에는 독려 행위가 된다"라며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는 게 중요하다. 뉴스를 많이 읽으면 어떤 정보가 나에게 필요하고, 어떤 정보가 유의미한지, 어떤 정보가 가짜인지 등을 잘 구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연구원은 "언론을 욕하기만 할 게 아니라 좋은 기사를 찾고, 괜찮은 언론이 잘되도록, 좋은 기자들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하는 것도 시민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우리도 이제 기자만 욕할 게 아니라 변화를 같이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혐오표현'에 더 알고자 한다면?]

'혐오표현'과 관련해 더 많은 내용을 알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이선민 연구원이 다음 두 권의 책을 추천했다.

# '말이 칼이 될 때'(홍성수 지음/어크로스)

#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제러미 월드론 지음/홍성수·이소영 옮김/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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