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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기자 "산불 재난방송, 뻔한 소리만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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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KBS본부 노보에 반성문 올려
"제 역할 못했다는 자책감에 뼈아파"
KBS본부, 사측에 재난방송 관련 시스템 정비 등 주문

지난 4일 KBS 뉴스특보 (사진=방송화면 캡처)

 

"첫 중계 이후 12시간 동안 속초 현지 상황을 전달하고 나서야 교대를 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습니다. 그제야 각종 포털과 SNS에 재난주관방송사인 KBS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현재 교통이 차단된 도로는 어디인지 신속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비판은, 뻔한 소리를 했다는 자책감에 더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수신료의 가치를 보여드리겠다"는 포털 네임카드도 부끄러웠습니다.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린 그 순간,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자책감은 2박 3일간의 출장이 끝나고 나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KBS 박영민 사회부 기자)

지난 4일 강원도 동해안 산불 발생 당시 국가재난주관 방송사인 KBS가 늑장 특보방송으로 시청자의 질타를 받은 가운데, 당시 상황을 취재한 KBS기자가 "죄송하다"라며 반성의 글을 내놓았다.

KBS 박영민 사회부 기자는 지난 15일 발행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이경호)에 '뻔한 소리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싣고 사건 현장에서 제 역할을 못 했다며 당시를 반성했다.

박 기자는 "속초로 출발하기 전에 선배는 보이는 대로 현장 상황을 설명하면 된다고 했지만, 보이는 건 불과 연기뿐이었다. 결국 이곳이 어디인지, 주변엔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불이 시내 쪽으로 번지고 있다는 수준의 '뻔한 소리'만 하고 말았다"라며 "당초 계획과 달리 특보는 동이 뜰 때까지 계속됐고, 현장에서의 뻔한 소리는 계속 방송으로 전달됐다. 불이 난 곳을 찾아 장소만 옮겼을 뿐 정보의 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박 기자는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재난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려서 피해 최소화한다'는 재난방송 목적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저 스스로 준비도 연습도 부족했다"라며 "취재기자들을 지휘할 현장 데스크·본사와 지역국 기자와 데스크 모두가 함께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 대화방 등이 없었던 점 등 저마다 아쉬운 부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 기자는 "저 자신도 느끼고 있듯, 이번 일을 겪으면서 회사도 부족한 점에 대한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라며 "그런 의견들을 충분히 취합해서 다음번엔 재난방송의 목적에 더 가까운 방송을 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KBS 사옥 (사진=KBS 제공)

 

◇ KBS본부 "땜질식 처방만으로 슬쩍 넘겨서는 안 돼"

KBS본부도 노보를 통해 이번 부실 재난방송 논란에 대해 "재난방송의 핵심이 피해 현장의 중계가 아닌 신속한 정보의 전달과 피해 예방이라고 봤을 때, 골든타임을 놓친 뼈아픈 '실기'였다"라고 진단하며 "이번 강원도 산불의 확산 추이와 주민 대피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22:00 정도에는 최종 3단계가 시행됐어야 한다. 단계별 재난방송 절차를 따랐다는 해명은 궁색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KBS본부는 "대형 재난 시에는 사회부, 재난방송센터, 네트워크, 정치부, 세종 등으로 파편화된 취재·기사 작성체계를 보다 일원화·체계화하고, 정보 수집과 기사 작성, 영상 촬영, 데이터 정리 등 기자와 스텝들의 역할도 분명하게 지정돼야 한다"라며 "또한 뉴스특보나 재난방송 시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보도정보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KBS본부는 최소한의 필수 장비와 인력 보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에 지난 9일 사측에 긴급 공정방송위원회를 제안해 사측으로부터 △대피와 피해확산 범위 등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한 재난방송시스템의 보완 △KBS재난재해매뉴얼의 수정보완 △재난방송 훈련의 확대 시행 △KBS와 재난당국과의 재난 정보 공유체계 구축 △재난유형별 특화 기자제도의 도입 추진 △지역 총국단위 노후 MNG교체 추진 및 강릉 MNG 신규배치 △속초 등 취약지역 인력 보강 등에 대한 확약을 받았다.

KBS본부는 "재난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 경험하지 못한 어떤 수준으로 어디서 언제 또 발생할지 모를 일"이라며 "KBS가 또 땜질식 처방만으로 슬쩍 넘겨서는 안 될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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