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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오는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새로운 길’을 제시할지 여부가 비상한 관심이다.
북한은 이날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를 열어 주요 대내외 정책과 예결산 등을 추인하게 된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는 대의원의 50%가 물갈이 되는 등 ‘김정은 2기 체제’ 출범이란 상징성을 띠는데다 ‘하노이 노딜’ 이후 대미 전략노선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앞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15일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해 ‘미국의 강도적 요구’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우리 최고지도부가 곧 결심을 명백히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이 됐든 무엇이 됐든 북한 입장이 나올 시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최고인민회의와 같은 날짜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이 적잖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북한으로선 한미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자신들의 입장을 내는 게 유리하지만 워싱턴과의 13시간 시차를 감안하면 오히려 자신들이 먼저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 판이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지난 4일 통일한국포럼 토론회에서 “(한미 당국이) 알박기 식으로 정상회담 날짜를 그날 정한 것은 아니고 여러 요소가 있었겠지만, 큰 차원에서 보면 북한은 수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원론적 수준에서 입장을 밝히고 이후 노동당 회의 등을 통해 대미 메시지를 발신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최고인민회의 때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버리고 경제 총력노선을 채택한 것은 열흘 뒤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였다.
뿐만 아니라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이나 이를 전후해 열릴 수 있는 ‘원 포인트’ 남북회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등도 계기로 활용될 수 있다.
이럴 경우 현 북미 교착국면과 관련한 관심은 오히려 시간상 뒤에 열리는 한미정상회담 결과에 더 쏠리게 된다.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한미 간 공조균열 우려를 불식하고 북미대화를 재개하는 것을 절실한 목표로 삼고 있지만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 내 대북 정서가 ‘핵 원리주의’라 할 만큼 강경해졌기 때문에 한미 간 조율조차 장담하기 힘든 것이다.
존 볼턴 백악관 보좌관 등 강경파는 북한이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완화에 집착하는 것을 결정적 약점으로 삼아 오히려 제재강화를 시도하기도 했고,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일괄타결’ 수준을 넘어 아예 ‘리비아식’ 선(先) 비핵화 해법을 밀어붙이려는 태세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선공단 재개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 미국이 받아줄 가능성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우리 정부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와의 공조 의지에 대해 의심을 키우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고위당국자는 지난달 초 우리 측의 개성공단 등 재개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부했고 이런 입장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지금까지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우 센터장은 또 이번 회담에서 방위비 분담금이나 한일관계 등 물밑조율이 덜 된 껄끄러운 문제까지 함께 제기돼 도리어 한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부 고위당국자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영변) 그 이상의 포괄적 논의를 통해 접근한다면 제재완화 문제도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은 어느 정도 사전 공감대가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정부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 원칙이 미국의 ‘일괄타결’ 해법과 별로 상충되지 않는 점도 미 측을 설득할 논리적 근거가 된다.
이 당국자는 정부가 최근 제시한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 개념에 대한 미국 측 반응에 대해 “미국도 일괄타결 보다는 ‘포괄적 합의’(Comprehensive Agreement)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도 지난 4일 국제 심포지엄에서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한 사찰을 수용한다면 “당연히 제재완화가 있을 것”이라고 미국의 반응을 전망해 눈길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회담이 미국 측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강경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며 대화 공간을 열어둔 점도 긍정적 기대를 하게 하는 대목이다.